목표 달성 후 경쟁력 유지에 ‘필수’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

경영 전략 가운데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이라는 게 있다. 국내에는 주로 ‘비상사태 대책’으로 번역되며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이머전시 플랜(emergency plan)’으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컨틴전시 플랜은 위기 상황에만 마련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적으로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 앞으로 기업이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를 수립하는 것도 포함한다. 기업의 생존 전략도 마찬가지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 이를 발판으로 새로운 도약을 하려면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금의환향했다. 선수 본인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가슴 졸이며 학수고대했던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모두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 것처럼 기뻐했다. 김연아는 선수로서 가장 큰 목표를 성취한 감격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YONHAP PHOTO-2485> South Korea's Kim Yu-Na poses on the podium after winning the gold medal in the women's figure skating competition at the Vancouver 2010 Olympics in Vancouver, British Columbia, Thursday, Feb. 25, 2010. (AP Photo/Mark Baker)/2010-02-26 14:28:01/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금메달의 환희에 이어 단연 화제가 된 것은 향후 김연아 선수의 진로였다. 그러나 김연아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미래는 불투명했다. 김연아는 “올림픽 금메달로 선수로서는 최고의 자리를 얻었다.

솔직히 몇 년 전부터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경험을 쌓으면서 더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지금은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려 300여 개 기업이 김연아와 스폰서십 계약을 하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김연아의 가치는 ‘국보급’이다. 이쯤 되면 한 종목의 스포츠 산업을 육성할만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김연아의 뒤를 이어 피겨스케이팅을 하겠다고 나선 어린 선수들이 상당히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연아를 관리하는 수준은 기대에 못 미친다. 김연아 선수를 매니지먼트하는 측은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했을 경우와 획득했을 경우로 나눠 선수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주도면밀한 ‘컨틴전시 플랜’이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에 대한 계획을 밝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목표 성취’가 위험 요인이 되기도

예전에 국내 골프 산업을 부흥시킨 박세리가 ‘골프 명예의 전당 가입’이라는 자신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 이유도 모를 슬럼프에 빠진 뒤 결국 예전의 실력을 되찾지 못하고 팬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에서 한 시즌에 두 차례나 5승을 거둔 적도 있는 박세리는 요즘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을 정도다.

당시 박세리는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골프를 할 줄만 알았지, 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서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수영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던 박태환이 지난해 열린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같은 종목에 출전해 예선 탈락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연아도 올림픽 금메달 획득으로 ‘목표 상실’이라는 예기치 못한 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 그래서 ‘목표 성취’가 ‘목표 달성 실패’보다 더 큰 위험이 될 소지가 있다.‘컨틴전시 플랜’은 최악의 상황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다. ‘목표 달성 이후’에도 초점을 맞춰 수립돼야 한다. 김연아는 앞으로 4년 후에도 올림픽에서 충분히 활약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김연아 선수에게 다시 한 번 목표에 도전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치밀한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 최선의 결과를 얻은 다음에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기업들에도 매우 중요하고 유익하다.

‘현재 목표도 어떻게 달성할지 모르는데 그 다음 계획까지 어떻게 짜느냐’고 한다면 성공 이후를 보장할 수 없다. 기업은 운동선수처럼 금메달을 한 개 획득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위기관리’ 못지않게 ‘성공 관리’가 앞으로 핵심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마이애미(미 플로리다 주)= 한은구 한국경제 기자 tohan@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