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문화 투자가 필요한 이유

프랑스의 문화 비평가이자 세계적 석학인 기 소르망 전 파리대 교수는 한국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원인을 문화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아 한국 상품의 국제 경쟁력이 약화된 탓이라고 진단했다. 경제문제로만 인식돼 왔던 한국의 IMF 위기를 문화적 투자 부족에서 원인을 찾은 기 소르망 전 교수의 의견은 문화적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가늠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일깨워 준다.

실례로 많은 외국계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 유치를 계획하면서 중요한 조건으로 꼽는 것이 세율이나 경제적 혜택이 아니라 주말에 산책할 곳이 있는지, 서울에 오페라하우스가 있는지 등 문화 시설에 대한 것이다.

이처럼 문화적 가치가 국가 경쟁력이 되고 있는 요즘,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한 투자는 더 이상 정부와 관련 업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이미 많은 기업들이 사회 공헌 활동으로 문화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광화문 일대의 문화 거리를 들 수 있다. 대형 서점과 공연장, 고궁과 미술관이 청계천 산책로 등과 어우러진 외부 환경과 함께 광화문 일대 기업들이 문화 거리 조성에 적극 동참하고 있어 자칫 삭막해질 수 있는 도시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올림푸스한국도 최근 사옥을 새롭게 건립하면서 300석 규모의 클래식 음악 전용관을 포함한 복합 문화센터를 오픈했다. 그러나 처음 아트홀 개관 계획을 이야기했을 때 대부분의 지인들이 걱정 어린 조언들을 쏟아냈다. 외국계 기업이 국내에 사옥을 짓는다는 것 자체에도 의문을 가졌지만,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클래식 전용관 건립은 무리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소수만이 경험할 수 있었던 클래식 문화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인프라와 시설 투자는 보다 가치 있는 문화 공헌이며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다. 흔히 외국계 기업의 핵심 경쟁력은 창조적인 현지화 정책(localization)이라는 말을 한다. 현지화의 핵심 경쟁력은 해당 국가와의 문화를 통한 소통이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많은 외국계 기업은 국내에서 창출한 수익의 대부분을 본사에 반납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국내에 투자할 수 없다. 그러나 올림푸스한국은 국내에서 벌어들인 수익의 거의 대부분을 국내에 재투자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 이는 문화를 통해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고 외국계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아 결과적으로 국내 문화 산업 인프라의 탄탄한 자산이 된다.

그렇다고 문화 공헌을 단순히 공연장을 만들고 유명한 작품들을 소개하는 물질적인 지원에 국한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화와 예술을 통해 감동과 행복을 나누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함으로써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과거 개발도상국 시대만 하더라도 불우 아동을 돕거나 저소득 가정을 지원하는 등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의 핵심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지금, 저소득 지원 등의 복지 문제는 이제 정부가 정책적 측면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대신 기업의 문화에 대한 투자, 문화 공헌이 진정한 사회 공헌 활동으로 평가받아야 할 때가 됐다.

기업은 문화 예술에 투자하고, 문화 예술 종사자는 기업 이미지 발전을 돕고, 국민은 문화 예술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선순환 구조야말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국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나눌수록 커지는 문화 공헌에 대한 투자에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동참함으로써 우리 사회 곳곳에 행복한 웃음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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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일석 올림푸스한국 대표

약력 : 1963년생. 중앙대 전기공학과 졸업. 2000년 올림푸스한국(주) 설립. 2003년 올림푸스 영상시스템 사업부 아시아 헤드쿼터 총괄사장. 2004년 올림푸스홍콩 및 중국(OHC) 부회장. 2008년 한국외국기업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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