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자수에 매료된 점까지 닮았죠’

자수장 무형문화재 신상순 전수자·임희영 고부

모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많이 닮았다. 단아하지만 전통을 지켜나가는 이 특유의 강직함과 새로운 것에의 창조를 열망하는 예술가의 열정까지 꼭 빼다박았다. 전통 자수의 맥을 이어가는 자수장 무형문화재 신상순 선생과 며느리이자 전수자인 임희영 씨 이야기다.

사람의 손이 가진 힘은 참으로 묘하다. 제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기계가 사람의 손을 대신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손으로 직접 만든 것에서 풍기는 그 ‘무엇’은 대체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컴퓨터 자수, 기계 자수가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직접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놓은 전통 자수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도 오랫동안 그 빛이 바래지 않는 모양이다.

“특히 자수는 천 위에 아로새긴 예술이기 때문에 다른 공예들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죠. 그 때문인지 우리 작품을 집에 들인 분들 중에는 집안 분위기가 훨씬 좋아지고 그 덕분에 좋은 일도 많이 생긴 것 같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 분들도 많아요.(웃음)” (임희영)

전통 자수라고 하면 활옷과 같은 대례복이나 한복 치마폭에 아로새겨진 문양만을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실제로 이들 고부의 작업실 겸 갤러리를 찾아가보면 경대·반짇고리·예물함 등의 전통 생활 소품에서부터 대형 병풍이나 약장·서랍장 등의 가구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부분에 아로새겨진 자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작은 작품은 하루에 여덟 시간씩 한 3주면 만들지만 병풍이나 가구처럼 덩치가 큰 작품인 경우는 몇 개월을 꼬박 매달려 완성하곤 해요.” (신상순)

올해로 여든이라는 사실이 전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운 자태를 자랑하는 신상순 선생은 아직도 여전히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현역 작가’다.

몇 시간이고 꼬박 수틀 앞에 앉아 수를 놓는 일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선생은 아직도 수를 놓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 전혀 힘든지도 모른단다. “처음 배울 때부터 그랬어요. 왜냐고 물어도 그 이유를 대지 못할 만큼 그저 무작정 자수가 좋았죠.” (신상순)

고부지간이자 사제지간, 그리고 동반자로

신상순 선생이 자수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반세기도 훨씬 전인 1945년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웬만하면 여성들은 모두 자수를 할 줄 알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학교에서 자수를 배웠는데, 내 손으로 직접 고운 색실로 수를 놓아가는 그 과정이 너무 좋아 학교를 마친 후에도 계속 혼자 취미 생활로 자수를 놓곤 했던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신상순)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남다른 솜씨로 주위의 이목을 한 몸에 모았다.

하지만 그녀가 본격적으로 자수에 몰입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평범한 주부로 살아 왔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집에만 있어야 하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부터다. “집안에만 있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자수에 좀 더 집중하게 됐죠.” (신상순)

1971년께부터는 보다 본격적으로 작은 작품들로부터 시작해 한두 작품씩 만들고 몇몇 전시회에 출품하고 몇 년 후부터는 공예전에도 출품하게 됐다.

그리고 1976년 동아공예대전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세간에 ‘신상순’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됐다. 따로 미술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취미 삼아 자수를 놓던 평범한 주부가 내로라하는 미술가들이 참여한 공예대전에서 당당히 그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신상순 선생은 여러 공모전에서 실력을 인정받음은 물론 국내를 비롯해 자수에 유난히 큰 관심을 보이는 일본 등지에서 여러 차례 자수 전시회를 가지며 출중한 기량을 선보여 왔다. 지난 1998년에는 그 실력과 경험을 인정받아 경기도 무형문화재 25호 민속 자수장에 지정됐다. “특별히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위해서 작품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에요. 그저 제가 좋아서 한 것뿐이죠.”

자수가 좋아 그저 자수에 매료된 것은 며느리인 임희영 씨도 마찬가지다. “원래 대학에서는 염색 공예를 전공했었거든요. 자수를 시작하게 된 건 어머님한테 영향을 받아서죠.”(임희영) 언제나 단아한 풍모로 수를 놓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고와서, 시어머니가 만들어내는 그 화려하면서도 우아하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자신도 자수를 해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시어머니에게서 자수를 배워보고 싶다는 그녀의 뜻에 가장 먼저 쌍수를 들며 반긴 것은 바로 그녀의 남편이다. 하지만 가장 반가워한 이는 따로 있다. 바로 신상순 선생이다. “다른 제자들도 많이 가르쳐봤지만 확실히 재능을 타고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며느리를 가르치면서 저도 많이 놀랐어요. 염색 공예를 공부해서 색에 대한 감각도 탁월하고 전통 자수 문양을 해석하는 방법이나 디자인하는 능력도 뛰어나더라고요.” (신상순)

“누구보다 어머님께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게 가장 기쁘지만, 사실 가르치실 때는 정말 무서웠던 적도 많았어요.”(임희영) 시어머니로서도, 스승으로서도 단 한 번도 잘못을 질책하거나 큰소리로 꾸짖는 적이 없었지만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몸소 가르치는 모습은 그 어떤 엄한 스승보다도 깊은 가르침을 남기곤 했다.

“조금이도 수를 잘못 놓은 것 같다 싶으면 혼내시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자리에서 쪽가위로 수를 뜯어버리시니까 다른 어떤 호통보다 더 무서웠었죠. (웃음)” “자수야말로 실과 바늘로 만들어내는 아주 정교하고 세밀한 작업이기 때문에 아주 작은 실수라고 하더라도 그냥 지나치면 안 되거든요.” (신상순)

모르는 사람들은 자수라고 하면 그저 색실로 바느질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자수는 디자인도 고안해야 하고 그에 맞춰 아름답게 색을 배합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바느질만 잘한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자수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서는 옛 문헌들도 많이 살펴보며 공부해야 하죠. 그렇다고 옛것에만 치중하면 안 돼요. 옛것을 살리되 현대적인 감각도 잘 살려야 하죠. 그래서 어머님과 자주 여러 문화, 미술 전시회들을 보러 다니는 편이에요.” (임희영)



함께하기에 더욱 아름답다

이제는 고부지간과 사제지간을 넘어 함께 같은 일을 하는 동반자로서도 두 사람은 최상의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상순 선생의 자수 솜씨에 임희영 씨의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디자인 솜씨를 합쳐 어디서도 쉬이 보기 어려운 자수 작품들을 만들고 있다.

특히 우리 전통 양식의 가구에 자수를 접목해 전통적이면서도 너무나 세련된 아름다움을 뽐내는 가구들은 최고의 혼수품으로, 혹은 최상의 인테리어 예술품으로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완성된 작품들을 보면 그야말로 뿌듯하죠. 아무것도 아닌 천 조각이지만 한 땀 한 땀의 자수가 곁들여져 아름다운 작품이 된 것이잖아요.”(임희영) 앞으로도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한국 전통 자수의 명맥을 이어가게 될 이들 고부는 조만간 규방 문화 박물관인 ‘여인박물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오랜 준비를 거쳐 올해 안에 문을 열게 될 박물관에서는 신상순 선생이 평생 동안 모아온 고가구들과 그동안 만들어 온 자수 작품들이 전시될 예정이다.

“단순히 전시를 위한 공간만은 아니에요. 다양한 전통 문화를 체험하게 할 뿐만 아니라 문화학교를 열어 자수 강의도 진행할 예정이에요. 오랫동안 꿈꿔 온 박물관인 만큼 이 박물관으로 한국 전통 예술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신상순·임희영)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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