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지역 중 1곳만 확정…갈 길 멀어

‘자율 통합’ 어디까지 왔나

정부가 지난해 8월부터 추진한 행정구역 자율 통합이 6개월여 만인 2월 22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애초에 18개 지역 46개 지방자치단체가 통합 건의서를 제출했지만 실제로 통합에 합의한 곳은 2개 지역 6개 지자체로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 그나마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곳은 경남 창원·마산·진해시 1개 지역 뿐이다.

경기 성남·광주·하남시는 지방의회를 통과했지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법안 통과가 보류됐다. 충북 청주시·청원군은 지방의회(청원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행정안전부가 주민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통합을 강행할 예정이다.

<YONHAP PHOTO-1520> "통합안 처리 안돼". (성남=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경기도 성남시의회 민주당, 민노당, 국민참여당 등 야당 의원 10명이 21일 통합의견 제시안 처리를 막겠다며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묶고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다. 2010.1.21 hedgehog@yna.co.kr/2010-01-21 14:30:36/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성남·하남·광주 ‘논란의 핵’으로 떠올라

성남·광주·하남은 지자체 자율 통합과 관련해 진통이 가장 큰 곳이다. 지난 1월 21일 성남시의회 본회의장에는 지방의회 사상 최초로 쇠사슬이 등장했다. 통합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하며 자신들을 쇠사슬로 묶은 것.

그러나 이날 밤 12시 직후 의장과 여당 의원들이 들어와 몸싸움이 벌어지며 우여곡절 끝에 통합안이 가결됐다. 야당 의원들은 “당시 의장이 의사봉을 의장석이 아닌 벽에 대고 두드렸고 CCTV 분석 결과 거수한 의원도 과반수에 못 미치는 16명(35명 중)이었다”며 무효 소송을 낸 상태다.

이 지역은 성남시 분당구 주민과 야당 의원들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분당 주민은 ‘분당 프리미엄’ 때문에, 야당 의원들은 지자체 선거구가 줄어드는 것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 2월 22일 지역 통합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문학진 의원(민주당·경기도 광주시)이 행정안전위원회로 상임위원회를 맞바꾼 뒤 성남·광주·하남 통합 내용을 뺀 채 경남 창원·마산·진해 통합법만 통과되도록 하기도 했다.

성남·광주·하남시 통합준비위원회 측은 “부결된 것이 아니라 보류된 것일 뿐이다. 창원·마산·진해와 달리 아직 통합시 명칭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안다. 곧 명칭이 정해지면 4월 국회에서는 통과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성남·광주·하남의 통합시 명칭은 ‘한성시’ ‘한주시’ ‘광주시’가 논의되고 있는데, 한성시, 한주시 중에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4월 국회에서도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야당은 6월 2일 지방선거 전까지는 최대한 이를 저지한다는 입장이다. 새롭게 지자체장과 의회가 구성되면 통합 논의는 물 건너갈 것이 뻔한 상황이다.

또 하나 논란이 된 지역은 충북 청주시·청원군이다. 청주가 청원군의 한가운데 섬처럼 위치한 형태다. 청주시는 찬성 입장이지만 청원군에서는 지방의회에서 부결됐다.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주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통합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청원군의회는 “여론조사 결과 찬성률은 46.9%로 과반에 이르지 못했지만 무응답과 무효표를 빼고 다시 계산해 찬성 50.2%라는 억지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행안부의 통합 강행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현행 ‘지방자치법’ 제4조는 ‘지방자치단체를 폐지하거나 구역을 변경할 때는 지방의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만 되어 있을 뿐 찬성 의결 규정은 없다.


헌법재판소의 판례도 마찬가지다. 1994년 충북 충주시와 통합된 중원군은 의회 의원들이 중심이 돼 헌법소원을 냈다. 당시 중원군의회는 통합과 관련해 찬성 5명, 반대 7명, 무효 1명으로 반대한다고 의결됐으나 당시 내무부(현 행안부)가 강제로 두 지역을 합쳤다는 내용이었다. 헌재는 “법률상 하자가 없고 행정구역 통합이 주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도 없다”며 기각했다.

그러나 행안부에 의해 청주시·청원군이 강제 통합될 경우 정부가 누누이 강조했던 ‘자율 통합’이 아니라 사실상 ‘타율’ 통합이라는 점에서 비판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 통합 논의와 관련해 이처럼 논란이 가열되는 이유에 대해 야당 측은 “정부의 무원칙한 기준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행안부가 지난해 8월 ‘자치단체 자율 통합 지원 계획’을 발표하며 ‘지방의회의 의견을 청취하거나 주민 투표를 실시, 통합 여부를 결정(그림 참조)’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통합안이 지방의회를 통과하더라도 주민 투표 실시를 두고 공방이 벌어질 수 있다.

야당은 논란이 가열되는 성남·광주·하남시와 청주시·청원군 통합과 관련해 주민 투표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남·광주·하남통합추진위는 “주민 투표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할 때 6월 2일 이전 실시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상 통합을 무산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야당은 ‘원칙이 없다’고 주장하고, 정부는 ‘경로를 다양하게 열어 놓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부분 지역 여론조사에서 무산

대부분의 행정구역 통합 지역은 주민 의견 조사 과정에서 무산됐다. 18개 지역 중 11곳의 여론조사에서 반대 의견으로 무산됐다(표 참조). 통합 대상 중 인구가 많고 소득이 높은 지역의 주민들이 주로 반대 의견을 냈다. 안양·의왕·군포·과천시와 진주시·산청군은 주민 의견 조사에서 찬성이었으나 선거구가 인접 지역과 겹친 일부 지역의 선거구를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무산됐다. 수원·화성·오산시는 화성과 오산의 의회에서 부결됐다.


행안부는 군청 소재지가 다른 시에 위치하는 기형적인 행정구역인 전남 목포·무안·신안과 전북 전주·완주 등이 반대 여론으로 탈락한데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완주군은 도넛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전주시에 군청을 두고 있다. 신안군청도 목포시에 있다.

이번 자치단체 자율 통합 추진은 지난 1980년대부터 제기된 행정구역 개편의 가장 큰 걸림돌이 정치적 계산과 이기주의라는 것을 다시 확인해 줬다. 결국 정치색을 얼마나 극복하느냐에 행정구역 개편의 성공 여부가 달린 셈이다.

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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