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펑크’…폭스바겐 신바람 ‘질주’

지각변동 막 오른 글로벌 자동차 시장

도요타가 대표 중형 차종인 캠리와 코로나에 이어 고급 세단인 렉서스, 친환경 첨단 하이브리드 차종인 프리우스까지 모두 리콜하기로 발표한 지난 2월 9일, 도요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미국인 이웃 10명에게 물어봤다. “이제 차를 바꾸게 된다면 어떤 차를 사겠습니까. 다시 도요타 자동차를 사겠습니까.”

전직 보험사 사장인 존 리버스(70) 씨는 “도요타 자동차 일부에 결함이 있지만 다른 자동차에서도 발견될 수 있는 수준이다. 결함은 곧 해결될 것이다. 다시 자동차를 산다면 나는 도요타를 살 것”이라고 단언했다.

리버스 씨는 자신의 이웃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며 이웃 로빈 베일린(45) 씨를 소개해 줬다. 대답은 의외였다. 베일린 씨는 “이번에 도요타가 보여준 사태 해결 과정을 보면서 매우 실망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은폐하고 고객을 속이려고 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차를 바꿀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UNC)에서 만난 교직원 주디 마티아스(48) 씨는 이미 도요타 고객이 아니었다. 그는 2002년형 캠리를 타다가 지난 1월 말 차를 바꿨다. 마티아스 씨는 “현대자동차가 10만 마일, 10년 품질 보증(Warrant)을 하고 있고 주변의 평가도 좋아 이번에 쏘나타로 바꿨다”고 말했다.


◇ 절반이 ‘도요타 바꾸겠다’ 대답 = 이 대학 주변 채플힐에서 회계사로 일하는 스테판 노블리스(31) 씨는 한참을 생각한 뒤 “차를 바꾸게 된다면 혼다를 살 생각이다. 혼다는 도요타와 품질이나 애프터서비스 면에서 거의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 비키 포터(31) 씨는 “도요타 미니밴을 타는데 정말 고장 없이 잘 쓰고 있다. 이번 문제는 사실 큰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도요타를 또 탈 것”이라고 다른 의견을 냈다.

도요타에 대한 고객들의 충성도는 정확하게 절반으로 갈렸다. 절반은 계속 도요타를 사겠다고 했고, 나머지 절반은 혼다나 닛산, 현대차 등을 사겠다고 말했다. 미국 차를 사겠다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지난 1월 터진 리콜 사태 이후 고객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약식으로 진행된 인터뷰였지만 이번 사태가 도요타 고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채복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반적으로 도요타자동차에 대한 충성도(royalty)는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타던 차를 바꾸겠다는 답이 절반이나 나왔다는 것은 이번 사태가 도요타의 평판에 큰 타격을 줬다는 것을 보여 준다”며 “도요타가 그동안 강조해 왔던 안전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된 만큼 이를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 리콜 사태로 시장 판도 ‘출렁’ = 이런 예상은 미국 시장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들은 도요타의 지난 1월 북미 시장 판매량이 리콜 사태 등의 여파로 지난해 1월보다 16% 떨어진 9만8796대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도요타의 월 판매량이 10만 대 이하로 떨어지기는 1999년 이후 처음이다. 시장점유율은 17%에서 14.2%로 떨어졌다. 시장에서 3위다. 북미 점유율이 3위로 떨어진 것은 2006년 이후 처음이다(도요타의 북미 시장점유율은 3위였지만 세계 시장점유율은 1위를 유지했다).

시장에서 도요타가 흔들거리는 사이 포드가 선전하고 있다. 포드는 지난 1월 11만6277대를 팔았다. 작년 동기 대비 25% 늘었다. 시장점유율도 16%로 뛰어올라 도요타를 제치고 2위(1위는 제너럴모터스)가 됐다. 연간 베이스로 보면 포드는 지난해 3위(16.1%)였다. 2위인 도요타(17.0%)에 근소한 차이로 뒤졌다. 그러나 미 언론들은 올해엔 두 회사 간 역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닛산은 16% 늘어난 6만2572대를 판매해 도요타 부진의 반사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는 품질관리와 적극적인 마케팅 등에 힘입어 북미 시장에서 작년 동기 대비 24% 늘어난 3만503대를 팔았다. 기아차는 0.1%의 판매 신장률을 기록했다.

크라이슬러는 5만7143대를 팔아 미국 업체 중 유일하게 지난해보다 판매량(마이너스 8%)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혼다도 창문 스위치 결함에 따른 리콜 등의 영향으로 북미에서 판매량이 5% 감소했다.

◇ 도요타 이탈자 잡기 마케팅 분주 = 미국 및 외산 자동차 업체들은 이번 사태를 도요타 독주 시대를 마감할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GM·포드·크라이슬러·현대차 등은 가격 할인과 저금리 할부 등의 인센티브를 내세우며 베일린 씨나 마티아스 씨 같은 도요타 ‘이탈자’들을 잡기 위한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다.

GM은 지난 1월 27일부터 도요타 고객 중 세 가지 GM 모델(시보레·뷰익·캐딜락)로 차를 바꾸는 고객에 대해서는 1000달러의 가격 할인과 함께 최고 60일간 무이자 할부를 지원하는 판촉 행사를 시작했다. 이 행사는 지난 1월 21일 시작된 230만 대에 달하는 도요타 리콜 대상 차량 소유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행사는 2월 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포드는 1000달러 가격 할인 대상을 도요타 차량 소유자뿐만 아니라 혼다 차량 소유자로 확대해 실시하고 있다. 도요타의 대체 차량으로 혼다 차를 검토하는 고객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 조치다. 크라이슬러와 현대도 지난 1월 말부터 1000달러 가격 할인 판촉 행사에 동참했다. 혼다를 비롯한 일본 회사들은 별도의 판촉 행사를 실시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에 있는 버킹엄 리서치그룹은 이번 리콜 사태로 도요타의 시장점유율이 앞으로 2%포인트에서 4%포인트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미 업체 기대는 헛물? = 주간 경제지인 타임(TIME)은 최근호에서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도요타 리콜 사태와 관련해 헛물을 켜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객층을 비교했을 때 미국차 소비자층과 일본차 소비자층이 현격히 다르기 때문에 도요타에서 이탈한 고객층이 1000달러 가격 할인 때문에 미국 차로 옮겨가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타임은 포드와 GM의 판매 신장은 경기 회복 여파와 크라이슬러 고객 이탈에 따른 반사이익이지, 도요타 고객 유입에 따른 효과는 아니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최근 포드의 기술력과 품질관리 등이 도요타에 버금갈 정도로 향상됐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번 사태로 포드가 상당 부분 반사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언론들은 유럽 자동차 업체들도 주목하고 있다. 특히 2018년까지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로 등극하겠다고 공언한 폭스바겐이 관심이다. 폭스바겐은 세계시장에서 도요타와 GM에 이어 3위다. 또 지난해 말엔 일본 회사 스즈키의 지분을 20% 인수하면서 도요타의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이 회사의 자동차 판매량은 지난해 630만여 대로, 스즈키(230만여 대)를 합칠 경우 이미 도요타(780만여 대)를 앞지른 상황이다. 이 회사는 향후 전 세계 판매량을 중기적으로 800만 대, 2018년까지 1000만 대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밝히고 있다. 도요타의 위기 상황을 감안할 때 폭스바겐의 10년 내 1위 등극 시나리오가 결코 공언(空言)으로만 들리지 않는 대목이다.

◇ 폭스바겐·포드에 관심 = 일부 언론에서는 도요타가 포드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포드는 2001년 익스플로러 차량의 타이어 결함으로 전 세계적인 리콜을 단행했다. 포드는 당시 최고 경영자를 교체하고 익스플로러 가격을 1000달러 인하하는 한편 문제 타이어를 생산하는 공장을 폐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건을 계기로 포드는 추락의 길을 걸었다. 포드의 북미 시장점유율은 2000년 22.8%에서 2005년 17.4%로 미끄러졌다. 포드가 휘청대고 있을 때 도요타와 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북미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이며 약진했다.

애널리스트와 업계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자동차 산업이 회복될 시점에 도요타가 리콜 사태를 맞은 것이 도요타에 더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꾸는 ‘포드’와 세계 1위를 공언한 ‘폭스바겐’이 도요타의 위기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쏠리고 있다.

채플힐(미 노스캐롤라이나 주)= 박수진 한국경제 기자 notwom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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