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신섬유로 ‘섬유강국’ 되살린다

‘한류’ 날개 단 섬유산업

바느질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손재주만큼이나 섬유산업은 한국과 밀접한 산업이다.

섬유산업은 전후방 파급효과가 높은 국내 최대 고용 사업으로 생산·고용·업체 수 비중이 큰 핵심 기간산업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국내 전체 업체의 10.3%, 고용의 7.1%, 생산액의 3.2%를 차지하고 있다(한국섬유산업연합회). 현재 한국은 국제적으로 중국·유럽연합(EU)·터키·인도·미국에 이은 세계 6위의 섬유 수출국이다.

한국 섬유산업이 근대 공업의 형태를 갖춘 것은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 1917년 일본의 거대 재벌 미쓰이가 부산에 조선방직 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부터다. 이어 1919년 민족자본으로는 최초로 인촌 김성수가 경성방직 주식회사(현 경방)를 세우면서 면방직 공업이 시작됐다.

당시 일본은 한국을 농업 원료의 공급 기지로 삼고 농산물 증식 계획에 따라 누에고치·면화 등의 증산을 적극 추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일본의 노동력 부족과 미군의 폭격을 방지하기 위해 일본 방직 공장들이 한국으로 공장 이전을 추진해 8·15 광복 당시 한국에는 상당 규모의 방직 시설(직기 9000대)을 보유하게 됐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됐다.

전후 복구 사업 기간에 섬유산업은 미국과 유엔의 원조 자금으로 생산 시설과 원자재를 공급받아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자급도를 높여 나갔다. 이른바 ‘삼백(三白)산업’으로 불리는 밀가루·면방직·제당은 전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산업이었다.

1960년대 초 경제개발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부터 한국의 섬유산업은 아크릴스웨터 수출을 시작으로 내수산업에서 수출산업으로 전환, 급성장하게 됐다. 1968년부터는 폴리에스터 등 화학섬유 생산이 본격화됨에 따라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급성장했다.

1970년대의 10년 동안 섬유산업은 부가가치 생산액(최종 생산물에서 원료 수입액을 뺀 금액)이 6.5배 증가했다. 수출액은 13배 증가했으며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0% 이상을 유지해 왔다. 한국은 홍콩·대만과 함께 섬유 수출의 ‘빅3’로 불리게 됐다.

섬유 수출, 8년간 점유율 절반으로 떨어져

그러나 1970년대 말 한국의 섬유산업은 양적인 성장의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선진국은 자국의 섬유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다자간섬유협정(MFA)’을 중심으로 개도국에 대한 섬유 수입 규제를 강화했고 후발국은 섬유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었다. 또 국내에서는 임금과 원자재, 원료 가격이 상승하며 국제 경쟁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의류 등 봉제 업종을 중심으로 와이셔츠 등 저가 대량생산 품목은 인건비가 싼 지역에서 생산하고 국내에서는 중·고가품만을 생산하는 등 업종별·품목별 글로벌 생산구조의 고도화가 촉진됐다.

1990년대 들어 섬유산업은 고가품 시장에서는 선진국의 명품 브랜드에 밀리고 중저가품 시장에서는 후발 개도국에 밀리는 샌드위치 현상으로 입지가 크게 좁아져 수출 시장점유율이 감소했다.

현재 섬유산업은 저임금을 무기로 하는 중국이 세계시장의 선두 주자로 앞장서고 있다. 섬유산업에서 중국의 세계 수출 시장점유율은 2000년 10.3%에서 2008년 26.1%로 꾸준히 성장해 세계 1위다. 같은 기간 한국은 8.1%에서 4.1%로 반 토막 났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도 7%에서 5%로, 일본도 4.5%에서 2.9%로, 영국도 3%에서 1.9%로 낮아졌다. 현재 섬유산업의 주요 수출국은 중국·미국·베트남·홍콩·인도네시아·일본 순이다.

산업 환경의 변화를 극복하기 위해 섬유산업은 세 가지 길을 개척하고 있다. 첫째, 브랜드의 고급화. 둘째, 신소재 개발. 셋째, 개성공단 진출이다.

사업부문이 의류 제조업 100%인 (주)신원은 지난해 12월 20일 중국 항저우따샤(杭州大厦) 백화점에 ‘지이크 파렌하이트(Sieg Fahrenheit)’ 매장을 오픈했다. 자체 브랜드의 첫 해외 진출이다. 지이크 파렌하이트는 오픈한 첫날 35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해 이 백화점의 기존 남성복 오픈 매출인 2500만 원을 갈아치우는 진기록을 세웠다. 또 1개월 영업일 기준 매출 3억1000만 원으로 이 백화점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

중국 저장성에 있는 항저우따샤 백화점은 약 14만㎡ 규모로 연간 8000억 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며 6년 연속 중국 내 백화점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신원은 “패션 업종이 가망이 없다고들 하는데 브랜드를 키우면 상당히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지이크 파렌하이트의 경우 중국에서 고가 정책을 쓰고 있는데도 반응이 상당히 좋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브랜드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져 중국에서 소비력을 갖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신원은 올해 10개, 내년 30개, 2015년 50개의 중국 명품 백화점에 입점시킬 계획으로 중국 매출액은 2010년 50억 원, 2011년 300억 원, 2015년 800억 원을 목표로 잡고 있다.

LG패션은 2007년 중국에 ‘해지스(Hazzys)’ 브랜드를 진출시켜 현재 35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는 상류층이 선호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LG패션은 “중국에는 타미힐피거(Tommy Hilfiger)의 인기가 절대적인데, 상하이 일부 매장에서는 타미힐피거를 넘어설 정도”라고 얘기하고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섬산련)에 따르면 국내 섬유 업계는 중국 고급 시장 공략을 위해 2003년부터 매년 ‘프리뷰 인 상하이(Preview in Sanghai)’ 전시회를 개최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주)보끄레 머천다이징, (주)신원, (주)EXR 등 내수 의류 업체들이 활발하게 중국에 진출하고 있다. 또 신흥시장인 브릭스(BRICs) 국가에 대한 해외 마케팅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모스크바·상하이·뭄바이·상파울루에 마케팅 거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류 더불어 한국 패션 ‘명품 대접’ 받아

의류용 섬유 외에 기능성 및 친환경 소재, 필터, 타이어코드, 철을 대신하는 건설 자재 등 신소재 개발도 활발하다. 특히 산업용 섬유는 산업 자재의 경량화·고기능화·다양화·패션화 추세에 따른 용도의 확대로 금속·플라스틱·종이 등의 대체 소재로 활용이 가능해 용도 확대 및 수요 증가로 발전 가능성이 무한해 섬유 업계의 블루오션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를 ‘신섬유’라고 일컫는데 크게 슈퍼 섬유, 스마트 섬유, 나노 섬유, 친환경 섬유로 나뉜다. 슈퍼 섬유는 철보다 강하고 알루미늄보다 강한 금속 대체용 소재를 말하고 스마트 섬유는 MP3플레이어가 달린 옷과 인공심장, 전자 재료(필터) 등 전자 제품용 소재를 말한다.

나노 섬유는 투습·방수 기능이 뛰어난 기능성 의류나 고성능 필터를 만드는 데 쓰이고 친환경 섬유는 옥수수나 닥(한지)·콩·우유로 만드는 섬유를 말한다. 효성·웅진케미칼·코오롱·휴비스·제일모직 등 기존의 원사 제조업체들이 대거 뛰어들고 있다.

내수용 제품의 경우도 섬유 업체들은 개성공단에 대거 진출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주)신원은 시범단지에서 대지 3만㎡에 1200명 직원 규모로 생산하다 현재 본단지에 대지 4배 규모, 직원 3배 규모로 공장을 확장·이전할 계획이다. 건물은 완공 단계로 올해 상반기에 이전을 마칠 계획이다.

신원은 “가격 경쟁력이 필요한 베이직 캐주얼 제품은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유행에 민감하고 모방 제품이 빨리 쏟아지는 여성복은 국내 생산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중국 생산과 국내 생산이 6 대 4였다면 지금은 국내 3, 개성 4, 중국 3의 비중이다. 개성공단은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이 있고 국내와 마찬가지로 가깝다는 것이 장점”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제품은 ‘메이드 인 코리아’로 인정받지 못해 수출이 불가능해 대부분 내수용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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