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게임에 ‘올인’…한국 따라잡자

무르익는 문화 콘텐츠 강국의 꿈

중국이 문화 콘텐츠 강국을 향한 행보를 서두르고 있다. 영화·게임·미디어 등 소프트 산업이 급팽창하고 있는 데다 대대적인 육성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제조업 대국으로 세계시장에서 확보한 영향력을 소프트 파워로 이어가겠다는 전략이 탄력을 받고 있다. 한국과 일본도 최근 문화 산업 육성에 발 벗고 나서면서 한·중·일 간에 문화 콘텐츠 삼국지가 벌어지는 형국이다. 중국의 문화 산업 육성은 한국에 위협이자 협력의 모멘텀을 제공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영화·게임 2개 부문으로 중국의 시장 상황과 육성 정책을 짚어본다. = 중국 영화 시장은 개혁개방이 본격화된 1990년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TV가 가정마다 보급되면서 엔터테인먼트 제공처의 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길거리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10위안(약 1700원)도 안 되는 복제판 DVD도 영화 산업의 걸림돌이 돼 왔다. 하지만 관영 신화통신이 “지난해 영화 산업이 황금기에 진입했다”고 평가할 정도로 최근 들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월지가 최근 전한 베이징의 유타운쇼핑센터의 풍경이 이를 보여준다. 복제판 DVD가 버젓이 팔리는 데도 6개 상영관을 갖춘 영화관의 총 1200석은 꽉 차 인파로 넘쳐났다.수치도 이를 확인해 준다. 중국에서 지난해 영화 수입은 전년보다 42.96% 증가한 62억 위안에 달했다. 중국에서만 전년보다 50편 늘어난 456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생긴 수입만 30억 위안으로 7년 연속 중국산이 중국 내 전체 영화 매출의 절반을 넘긴 것이다. 건국대업이 4억 위안의 수입을 올린 것을 비롯해 중국산 영화 가운데 1억 위안 이상의 수입을 기록한 영화만도 12편에 이른다.지난해에만 142개 새로운 극장과 626개의 스크린이 새로 추가돼 전체 스크린 수가 4723개로 늘어났다. 2002년만 하더라도 1834개였던 걸 감안하면 폭발적인 성장이다. 캐나다 회사 아이맥스 관계자는 “미국은 3억 명이 3만5000개의 스크린을 갖고 있다”며 “중국 인구 13억 명을 감안하면 잠재력이 크다”고 말했다. 아이맥스는 현재 중국 내 영화관 수를 현재 20개에서 2013년까지 30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아이맥스 영화관의 티켓 가격이 다른 영화관에 비해 50% 정도 비싸지만 구매력이 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속도라면 올해 중국이 한국을 제치고 아시아 2위 영화 시장으로 부상하고 5년 내 일본까지 제칠 것이라는 게 월지의 전망이다.중국산 영화의 해외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에만 48편의 중국 영화가 해외에 팔려 올린 수입이 27억7000만 위안에 달했다. 전년 대비 2억4200만 위안 늘어난 것으로 2004년(11억 위안)의 2배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지난해 315편의 중국 영화가 해외 119개 국제영화제에 참가해 이 가운데 68편이 26개 영화제에서 80개의 상을 수상하는 등 대외 홍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중국 정부는 영화 산업 발전의 주안점을 양에서 질로 전환하기로 하고 최근 국무원(중앙정부)이 영화 산업 번영 발전 촉진 지침을 지난 1월 내놓았다. 2015년까지 영화 산업 성장 속도를 연평균 20% 이상으로 유지하고 세계적인 영화사를 몇 곳 육성한다는 계획을 비롯해 영화사 설립 때 대기업 참여를 유도하고 영화 기업의 상장을 유도한다는 정책들이 들어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판 나스닥인 창업판(차스닥) 출범 때 상장한 화의슝디와 같은 사례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또 대출·세제혜택·보조금 등 여러 수단을 동원해 현급 도시에까지 디지털 영화관을 건설하고 중국 영화의 해외 진출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문제는 이 같은 육성책이 보호주의로 흐를 조짐이 있다는 데 있다. 이번 육성책에서는 극장에서 연간 영화 상영 시간의 3분의 2 이상을 중국 영화로 방영해야 한다는 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못박았다. 2001년 국무원 영화관리조례에 나온 조항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중국이 외국 영화 20편까지만 수입하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 당국이 자국 영화인 ‘공자’를 띄우기 위해 아바타 평면판(2D) 영화 상영을 중단하라고 지침을 내린 것도 보호주의의 사례다. 상영관 수를 85% 줄이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아바타’를 찾는 시민들이 줄을 잇자 이 같은 지침은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최근 외국 영화를 국영 독점기업을 통해서만 배급하도록 한 규제를 시정하도록 판결을 내렸지만 큰 변화는 기대되지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중국의 영화 산업 보호는 서방식 가치관이 밀려들 경우 사회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중국 정부가 5년 내 한국 온라인 게임을 따라잡자고 선언했다. 내수시장 성장을 발판으로 온라인 게임 종주국 한국에까지 속속 진출해 온 중국 게임 업계의 해외시장 공략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국가신문출판총서의 쑨소우샨 부국장은 최근 중국 온라인 게임 산업 연례 포럼에 참석, “한국의 게임 산업 수출은 15억 달러로 중국이 한국 수준(15억 달러)이 되려면 가야 할 길이 멀다”면서도 “게임 업계가 함께 노력해 5년 내 한국을 따라잡자”고 말했다.중국 문화부가 최근 펴낸 ‘2009 온라인 게임 시장 백서’에 따르면 온라인 게임 수출은 지난해 1억6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47.2% 늘어나며 사상 첫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수출 증가 폭이 2008년(30.9%)에 비해 16.3%포인트 확대된 것. 완메이스콩·진샨·왕룽 등 29개사의 64개 온라인 게임이 미국·영국·프랑스·한국·일본·베트남 등 50여 개 국가에 수출됐다.중국 온라인 게임 최대 수출 업체인 완메이스콩의 츠위펑 회장은 이날 포럼에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츠 회장은 “완메이스콩이 지난해 5000만 달러를 수출한데 이어 올해 1억 달러 수출을 예상하고 있다”며 “중국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겪으면서 갈수록 좋은 제품을 내놓고 이에 따라 전 세계에서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2007년 완메이스제(完美世界)를 들여와 큰 인기를 누린 완메이스콩은 CJ인터넷을 통해 올해에도 게임 주셴(誅仙) 등을 한국에 선보일 예정이다.중국 온라인 게임 업계의 약진엔 폭발하는 내수시장이 있다. 지난해 중국 온라인 게임 시장은 258억 위안(4조386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전년 대비 39.5% 늘어난 것이다. 2003년만 해도 연간 20억 위안(3400억 원)에 그치던 시장이 6년 만에 10배가 넘는 규모로 팽창한 것이다. 특히 2003년만 해도 중국 온라인 게임 시장의 80%를 한국 게임이 차지했지만 지난해엔 중국 토종 게임이 61.2%를 점유한 것으로 나타났다.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자금 지원으로 토종 게임을 키운 데다 외국산 게임에 대해 심의를 까다롭게 하는 보호주의 정책을 편 게 토종 게임의 약진에 기여했다. 한국 게임의 대리상으로 돈을 번 샨다가 나스닥에 상장한 것을 비롯해 중국 게임 업체들이 잇단 해외 증시 상장으로 자본력을 확충한 것도 약진의 발판이 됐다. 중국에선 인기 게임에 300∼1000명이 넘는 개발자들이 포진한 것도 자본력 덕분이다. 이 같은 인해전술에다 중국에서 매주 단행하는 게임 업데이트는 한국의 월간 업데이트 분량과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부터 온라인 게임 업계와 영화·드라마·소설 등 다른 문화 산업과의 융합이 가시화되면서 수준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6억 위안의 자본금으로 설립된 새로운 영화사 성스영화유한공사가 대표적이다. 상하이에 세워진 이 회사는 중국의 유명 온라인 게임 업체 샨다와 국영 영화사인 후난광보영화그룹이 합작한 것이다. 영화 제작 업체들의 온라인 게임 투자도 새로운 패턴으로 나타나고 있다.중국 온라인 게임 시장은 급증하는 네티즌과 중국 정부의 내수 진작책과 맞물려 고성장을 지속할 전망이다.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지난해 말 3억8400만 명에 달했다. 문화부는 백서를 통해 온라인 게임이 중요한 문화 소비라며 이를 진작시키는 게 중앙 정부의 내수 확대 목표와 일치한다고 강조했다.오광진 한국경제 기자 kjoh@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