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 ‘팍’ 낮추고 눈총 받는 공정위

경제부처 24시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무줄식 과징금 부과 행태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2월 3일 열린 전원회의에서 지난해 초부터 조사에 들어간 11개 소주 업체들의 담합 혐의에 대해 총 27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4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11월 작성한 심사 보고서에서 밝힌 총 2263억 원의 과징금의 1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공정위는 최근 6개 액화석유가스(LPG) 공급 회사를 가격 담합 혐의로 제재하는 과정에서 1조3000억 원대의 과징금 산정액을 통보했지만 최종적으로는 6689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공정위의 이번 결정은 급한 불은 껐지만 불씨는 남겨 놓은 형태다. 과징금 액수는 심사 보고서상의 2263억 원에서 10분의 1 수준을 약간 웃도는 272억 원으로 낮춰 과대 산정이라는 비판을 피했지만 이로 인한 고무줄식 과징금 산정이라는 논란이 일게 됐다. 소주 업체들의 담합행위는 단속했지만 국세청의 행정지도에 따른 것이라는 업체들의 주장과 관련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소주 업계는 여전히 공정위의 담합 결정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과징금 액수가 줄었긴 하지만 담합한 적이 없는 이상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 이에 따라 업체들은 이의신청이나 행정소송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이날 1위 업체인 진로에 대해 166억7800만원을 부과한 것을 비롯해 무학(26억2700만 원), 대선주조(23억8000만 원), 보해양조(18억7700만 원) 등 11개 소주 업체에 과징금을 개별 산정했다.업계 1위인 진로는 공식 입장을 담은 자료를 통해 “담합한 사실이 없으므로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에 승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밖에 대부분의 소주 업체도 가격 인상은 국세청의 행정지도에 따라 이뤄졌으므로 공정위의 담합 결정에는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이다.하지만 김석호 공정위 카르텔국장은 “가격 인상을 국세청의 행정지도와 결부하는 것은 그것을 핑계로 면책하려는 의도”라며 “공정위가 문제 삼는 것은 행정기관의 행정지도를 빌미로 사전 또는 사후에 사업자들이 별도로 합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그는 또한 “국세청과 협의하기 이전부터 소주 업체들이 사장단 모임인 ‘천우회’를 통해 가격 인상에 대해 논의하는 등 국세청의 행정지도와 별개로 담합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실제 11개 소주 업체들은 2007년 5월과 2008년 12월 두 차례 소주 출고 가격 인상을 앞두고 ‘천우회’를 통해 가격 인상 여부, 시기, 인상률에 대해 협의했다. 천우회는 월례 모임으로 1985년부터 2009년 4월 현재까지 총 212회 개최됐다. 이들은 가격 인상에 대한 공감대 형성 후 시장 1위인 진로가 먼저 가격을 인상하면 나머지 업체들이 비슷한 비율로 값을 올렸다.공정위가 국세청의 행정지와 관련된 적정성에 대한 언급을 피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국세청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징계 수위를 대폭 낮춘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애당초 2200억 원이라는 과징금이 현실성이 없는 수치였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실제 공정위는 소주 업체에 대한 심사 과정에서 담합에 따른 부당 매출액이 2조 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봤다. 현재 과징금 부과율은 부당 매출액의 최고 10%까지 매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과징금도 2000여억 원으로 산정된 것. 하지만 전원회의에선 부당 매출 규모를 1조2000억 원으로 판단했다.이와 함께 공정위는 심사 과정에선 과징금 부과율을 최대치인 매출액의 10%로 상정한 반면 전원회의에선 과징금 부과율을 5.9%로 낮춰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들어 소주 업체들이 정부의 물가안정책에 부응한 점도 ‘정상참작’이 됐다. 이에 대해 한 공정법 전문 변호사는 “공정위는 심사보고서와 전원회의의 결정을 구분하려고 하지만 심사 보고서 또한 공정위 바깥으로 나가는 ‘공문’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작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공정위의 성과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징금 자체가 부당한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어떻게 10분의 1로 줄어버릴 수가 있느냐”며 “공정위 내부적으로 과징금 규모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박신영 한국경제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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