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超)지식 탈(脫)정보사회’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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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밀려온 외신을 보면 지식에 대한 현대인들의 경외심은 여전한 것 같다. 매년 연초면 열리는 이 행사 자체가 현대의 경제 트렌드라는 ‘최신 실용’ 지식을 교환하고 판매도 하겠다는 전략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지식이란 이 막연한 개념이 현대사회를 넘어 미래에도 최고의 가치가 될 것인가. 지식에 이인삼각의 개념처럼 늘 함께 붙어 다니는 가치와 정보는 또 어떨까.따지고 보면 지식과 정보가 부의 원천이라고 손꼽힌 것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긴 인류 역사로 보자. 강한 체력과 같은 물리력이야말로 굶주림과 추위를 막아주고 남보다 윤택한 생활을 담보해 주는 기본 동력이었다. 약육강식이라는 말도 이 같은 완력에서 출발했을 것 같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거치고 시장경제의 본질을 깨달으면서, ‘제3의 물결’이라는 정보화 시대를 거치며 지식의 가치가 재발견됐다. 어디까지가 지식이고, 또 어디까지가 정보인지 구별 자체가 모호하지만 정보도 마찬가지다. 최근까지도 부의 창출 근원으로 지식과 정보의 중요성이 계속 강조돼 왔다. 다보스포럼 외에도 수많은 국내외의 각종 미래 포럼을 보면 실제 이상으로 지식과 정보는 우대받고 있는 것 같다.도대체 지식이란 무엇인가. 생활에서부터 보자. 무엇보다 경제나 경영과 연결하면 생산성을 높이는 힘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투입 요소에 더 많은 결과를 내는 방법이라면, 동일한 결과물을 생산하는데 보다 적은 비용을 들일 수 있다면 이게 실용적 의미의 지식이다. 그것이 공학적 기술이든, 경영의 방법론이든 상관없다. 생산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도 우회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면 당연히 중요한 지식이다. 요즘 새로 각광받고 있는 인문학이나 고전 연구가 그렇다.그렇다면 정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보는 그 효용성 때문에 주목받는데, 미래 예측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된다. 증권·부동산 같은 자산 가치가 향후 어떻게 움직일까, 특정 기업의 경영 결과는, 한 나라의 상황 변화는, 나아가 지구촌의 경제·사회적 트렌드는, 우리가 정보라고 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이런 것에서 미래 전망이다. 물론 단기 정보도 있고 장기 전망도 있을 수 있다. 정보라고 불리는 이 예측 능력도 부를 좌우해 왔다. 이렇게 보면 지식과 정보는 영역이 겹치는 개념이고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속성을 지녔다는 것을 거듭 인식하게 된다. 문제는 앞으로 미래 사회에도 이렇듯 지식과 정보가 부의 원천일까 하는 점이다. 지식은 여전히 생산성을 좌우하고 정보는 직업의 우열과 선호도까지 정하는 요소가 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지금 당장 그 가치가 사그라지지 않겠지만 그 위력은 분명히 급속도로 약해지고 있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지식이 너무 흔해져 버렸다. 각종 포털 사이트를 필두로 인터넷에 쌓여가는 것을 보면 지식은 가히 유비궈터스화되고 있다.특정 계층, 소수집단이 정보를 누리던 시대가 끝나가고, 내가 아는 정보는 더 이상 정보가 아니다. 정보의 유포나 확산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니 약간의 시간차로 정보를 가졌다고 해서 위세도 부리기 어렵게 됐다.‘초(超)지식 탈(脫)정보사회’가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재미(감동)와 멋(아름다움)이다. 영화 ‘아바타’를 보자. 성공의 키워드는 무엇인가. 지식과 정보인가, 재미와 멋인가. 정부가 새로운 성장 동력 지대로 보는 서비스·3차산업, 문화·콘텐츠·스토리 육성 사업 역시 한결같이 재밋거리를 만들고 감동을 창조하는 쪽이다. 미래의 부가가치 창출 영역이 바로 이곳이니, 일자리가 따라오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 존재를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고 규정한 요한 호이징어의 말이 딱 맞는 시대가 됐다. 이 분야에 해당되는 여행·레포츠·영화가 좋은 예다. 재미있어서 하고, 재미있어야 한다. 방송도 그렇고, 온갖 서비스업이 그렇다. 교육도 이 범주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오로지 법률 공부만 한 변호사보다, 500년 전의 낡은 고문 의학서를 교과서로 외우기만 한 한의사보다, 문학·역사·철학도가 돈을 더 벌 것이라는 내 생각은 이래서 나온다. ‘엣지’있게 라는 유행어처럼 멋있게, 예쁘게도 한 시대 대중문화 코드 이상의 가치가 됐다. 첨단 신산업이라는 디자인의 본질도 이것이다.허원순 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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