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하와이 노리는 하이난의 꿈
‘중국의 하와이’ 하이난섬에 부동산 투기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하이난섬을 세계의 하와이로 만들겠다는 중국 정부의 육성책 발표에 투기 자금이 몰린데다 가격 급등을 기대한 부동산 개발 업체들이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부동산 가격이 100% 가까이 급등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부동산 거품 붕괴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중국 언론들을 통해 흘러나온다. 넘치는 유동성으로 자산 버블 경고음이 울려 퍼지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하지만 부동산 거품 여부만 따져서는 하이난 육성 계획이 만들어낼 비즈니스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부동산 투기 실태와 함께 하이난의 미래 청사진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하이난은 개혁 개방 초기 5대 경제특구의 하나다. 덩샤오핑은 1980년 8월 제5기 전국인민대표자회의 상임위 15차회의에서 ‘광둥성 경제특별구역 조례’를 통해 선전과 주하이를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했다.이후 같은 해 10월 광둥성의 산터우와 푸젠성의 샤먼 등 2개 지역이 경제특구로 추가 지정되고 섬 전체를 특구로 조성한 하이난이 1988년 4월 막차로 합류함으로써 중국의 5대 특구 조성 계획이 일단락됐다. 하지만 하이난은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뎌 가장 낙후한 경제특구 중 하나로 꼽혀 왔다. 이번 육성 계획은 하이난을 다시 중국 경제의 고성장 열차에 타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매일 200명 이상의 국내외 부동산 투자자들이 하이난을 찾고 있고 일부 부동산은 가격이 매일 ㎡당 1000위안(17만 원)씩 오른다. 지난 1월 4일 하이난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정책이 발표된 후 변화된 모습을 관영 신화통신은 이렇게 전했다. ‘하이난 하이커우의 산후완 단지에 있는 아파트 600여 채는 가격이 50% 올랐는데도 2주 만에 모두 팔렸다. 하이커우에선 부동산 가격이 하루 만에 ㎡당 5000위안이 뛴 사례도 속출했다.’하이커우의 부동산 가격은 이미 작년보다 50∼100% 올랐다. 싼야도 상황은 비슷하다. 싼야에서 지난 11일부터 20일까지 거래된 부동산은 1625채로 1월 1일부터 10일까지 872채의 2배 수준이다. 이곳에 있는 산후완 단지 아파트는 가격이 작년 11월 말 ㎡당 1만3000위안에서 최근 2만8000위안까지 치솟았지만 대부분 팔렸다.한 부동산 분양 담당자는 대출을 끼고 사려는 투자자는 받지 말라는 지침까지 받았다. 이 때문에 현금을 싸들고 오는 투자자들이 줄을 이었다고 중국 언론들은 전했다. 투자자 가운데에는 이른바 중국의 대표적 민영 기업가인 저장 상인이 주류를 이뤘다.저장에서 온 한 투자자는 하이난 딩안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와서 50채를 한 번에 사가기도 했다. 중국의 유태인으로 불리는 저장성의 원저우 상인 한 명은 하이커우에서 100채의 아파트를 매입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하이난은 지난해에도 중국 내 다른 지역과 함께 부동산 거품이 이미 형성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하이난에서 거래된 부동산 면적은 전년 대비 50.5% 증가한 560만3400㎡에 달했다. 거래액도 351억 위안으로 73.2% 급증했다. 이 같은 상황에 터져 나온 하이난 국제 관광지 개발 계획이 부동산 투기에 불을 지핀 것이다.부동산 투기가 위험수위로 치닫자 하이난성 정부는 부동산 투기에 급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지난 1월 15일 토지 임대와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승인을 일제히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웨이류청 하이난성 당서기는 부동산 시장을 심각하게 어지럽히는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신규 토지 구매 승인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3일간의 시정 기한을 주고 고치지 않으면 블랙리스트에 올려 하이난의 부동산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는 방침이다.하이난성 정부가 이처럼 강도 높은 투기 규제에 나서는 것은 1990년대의 부동산 거품 붕괴의 재연을 막기 위해서다. 1990년대 초부터 하이난에 500억 위안의 자본이 몰리면서 1991년부터 1993년 사이에 4830개의 부동산 업체들이 설립됐다. 당시 중국 전체 부동산 전체의 15%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 기간 부동산 가격은 5배 올랐다. 1991년 평균 ㎡당 1400위안이던 부동산 가격이 1992년에 5000위안으로,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하지만 1994년 중앙정부의 부동산 긴축이 시행되면서 하이난의 부동산 거품은 한순간에 꺼지게 된다. 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들은 앞 다퉈 하이난을 탈출했다. 하이난에 있는 20여 개 신용사(소규모 금융사)는 문을 닫아야 했다. 그 악몽이 다시 떠올려지고 있다는 게 현지의 분위기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을 억제 일변도로 규제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부동산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웨이 당서기가 향후 30년간 부동산은 여전히 하이난의 지주 산업이라고 말한 데서 그 고민을 엿볼 수 있다. = 부동산 거품 붕괴 우려에도 불구하고 하이난 개발은 중국 기업은 물론 외국 기업에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가져다줄 전망이다. 우선 여행 시장이 크게 개방된다. 국내외의 실력 있는 대형 여행사를 유치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사를 키운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현재 외국 여행사에 아웃바운드 시장을 열어주지 않고 있지만 하이난에 진출하는 여행사의 경우 하이난과 묶어서 해외 패키지 상품을 내는 것을 허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하이난 출입국 관리의 편의도 높이기로 했다. 비자 면제 대상 국가에 현재 21개국에 핀란드·덴마크·노르웨이·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 등을 추가하기로 했다. 특히 한국·러시아·독일에서 오는 단체 여행객의 경우 2명 이상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체류 기간도 21일로 늘렸다.면세점을 세우고 복권을 허용하는 것도 허용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하이난이 중국 갑부들의 쇼핑 1번지인 홍콩은 물론 도박의 도시인 마카오의 위상까지 위협할 것이라는 섣부른 관측도 나온다. 하이난에 면세점이 생기면 홍콩과 마카오를 제외한 중국에서 세워지는 첫 면세점이 된다. 웨이 당서기는 홍콩 수준의 쇼핑 환경을 만드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하이난이 홍콩을 위협할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을 달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이난은 도박을 금지하고 있는 룰을 깨고 국내 스포츠 경기에 대해 베팅하는 등의 복권을 허용하기로 했다. 중국에서 복권 시장이 형성된 건 이미 22년이 됐다. 하지만 외국의 농구나 축구 경기에 대한 결과를 베팅할 수 있을 뿐이다. 국내 경기에 대한 베팅은 불법이다. 하이난에 한해서는 이를 깨겠다는 것이다. 조건이 있다. 하이난에서 열리는 경기여야 한다는 것. 대형 요트 경기와 자전거 경주 및 골프대회 등도 적극 유치하기로 했다.하이난은 이와 함께 불법 관광이나 등록되지 않은 차량 운행 또는 미등록 관광 가이드 등에 철퇴를 가하는 등 여행 질서에 물을 흐리는 행위를 엄단하기로 했다. 대형 레저센터 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계획도 세웠다. 이와 관련, 하이난에 있는 국영기업 소유의 호텔 매물이 쏟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중국 정부가 국영기업에 비주력 사업인 호텔 사업을 5년 내 분리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현재 국영기업이 보유한 호텔(모텔급 포함)은 2000여 개로 자산 규모도 1000억 위안이 넘는다. 이 가운데 중국의 대표적 휴양지 하이난에 있는 호텔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중국 정부는 하이난 경제에서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2015년까지 8%, 2020년까지 12%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관광업뿐만 아니다. 세계적 사교 무대로 만들기 위해 아시아 지역 경제 포럼인 보아오포럼(BFA)의 브랜드를 이용해 우선 올해 국제 관광 보아오포럼을 열기로 했다. 각종 문화 전시회와 예술 활동 유치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통해 관광업을 비롯한 서비스업 위주의 3차산업이 하이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까지 47%, 2020년까지 60%로 높이기로 했다. 하이난은 지난해에만 전년보다 9.2% 증가한 2250만 명의 관광객이 찾을 만큼 유명 휴양지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을 통해 벌어들인 관광 수입만 전년 대비 10.1% 증가한 211억7000만 위안에 달했다.오광진 한국경제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