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교 속속 개설…‘배워볼까’ 열기 후끈

세계 명문 요리학교 한국 상륙작전

미식은 이제 사치가 아니라 문화다. 정갈하고 맛있는 레스토랑을 찾아 탐방하고 직접 고급 요리를 배우는 것이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고 있다. 요리 문화를 꽃피운 프랑스, 피자와 파스타의 나라 이탈리아, 미식이 발달한 일본, 세계 요리의 트렌드를 볼 수 있는 미국에서 이러한 식문화는 일찍이 발달됐다.이들 나라에서 세계적 명문 요리학교가 생겨난 것도 식문화의 발달이 토대가 됐다.최근 국내에도 세계 유명 요리학교가 분교를 속속 개설하고 있고, 한식의 세계화와 맞물려 한국 전통 음식을 배우려는 열기도 뜨겁다. 최고의 셰프를 꿈꾸는 이들과 취미지만 전문적으로 배우려는 일반인들의 수요가 커지며 주요 요리학교의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다.지난 1월 27일 오전 서울 논현동의 나카무라아카데미의 실습실은 조리 기구의 열기뿐만 아니라 수강생들의 열정으로 뜨거웠다. 이날 배우는 요리는 바닷가재 구소쿠니(具足煮:껍데기째 요리한 음식), 버섯 영양밥, 각종 야채 안카케(설탕·간장 등으로 간을 맞춰 걸쭉하게 끓인 음식을 얹은 요리), 숙주나물 소스를 곁들인 감자 샐러드 스프링롤 등 총 4가지. 일본 나카무라조리제과전문학교에서 파견된 야마가타 료 강사가 요리법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시연하면 수강생들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필기와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통역을 맡은 김승희 선생은 일본 본교 출신이어서 재료와 조리법에 대해 자세하게 강사의 설명을 전한다.“일본에서는 단체 도시락 등을 만들 때 밥에서 고소한 맛이 나도록 식용유를 조금 넣습니다.”“참기름은 넣지 않습니까?”“한국인은 참기름을 좋아하지만 일본에서는 밥에 참기름을 넣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강한 참기름 향보다 밥 자체의 맛을 중시하기 때문이죠.”그리고 야마가타 강사는 버섯 영양밥에 유기 성분을 주기 위해 유부를 잘게 썰어 넣는다. 어느 정도로 유부를 잘게 썰어야 가장 이상적으로 고소한 맛이 나는지도 설명한다.수강생들은 취업과 창업에 대비해 일식을 처음 배우는 젊은이에서부터 일식 요리사 경력 15년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현재 일식집 사장이지만 직접 요리를 배우려고 이곳을 찾은 이도 있다. 일식 요리사 배영기(38) 씨는 만만치 않은 수강료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식을 배우려고 하는 이유에 대해 “일본 요리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지만 유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며 “일본 요리학교 의 분교가 국내에 생긴다는 소식에 바로 등록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새롭게 배운 일본 요리를 응용해 메뉴를 계속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강사의 시연이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된 후 수강생들은 각자 방금 보고 배운 요리를 실습한다. 그리고 시험을 대비해 맛뿐만 아니라 장식에도 정성을 기울인다.나카무라조리제과전문학교는 일본의 대표적 요리학교 중 하나로 해외에 분교를 설립한 것은 처음이다. 다른 해외 요리학교의 한국 분교는 국내 파트너가 있는 것과 달리 나카무라아카데미는 일본 본교가 100% 투자했다. 서울 분교는 일본 본교와 동일한 수준의 조리 설비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일본에서 파견돼 상주하는 강사진이 있고 커리큘럼에 맞춰 본교 교수진이 서울에 방문해 강의하기도 한다. 지난해 9월에 설립된 나카무라아카데미는 2월이면 1기 수료생 30여 명이 배출된다.최근 문을 연 나카무라아카데미를 포함해 현재 서울에는 프랑스의 르코르동블루, 이탈리아의 ICIF, 일본의 츠지조의 한국 분교가 있다. 또한 미국의 CIA조리학교와 일본 핫토리영양전문학교가 한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세계 3대 요리학교 와 일본 3대 요리학교 가 모두 한국에 진출하게 되는 셈이다.세계 명문 요리학교가 속속 진출하며 한국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수요가 크기 때문이다.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요리 유학이 시작됐다. 프랑스·이탈리아·일본의 명문 요리학교에서 수학하고 국내로 돌아온 이들이 국내 유명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대우받으며 해외 요리 문화를 국내에 도입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요리 유학이 전성기를 맞았고 해외 명문 요리학교에 한국인 유학생들이 크게 몰렸다. 이러한 요리 유학의 붐에 따라 해외 요리학교들도 한국 요리사 교육 시장을 주목하게 됐고 속속 분교 진출을 진행하게 된 것. 해외 요리학교의 한국 분교는 각자 본교의 선진화된 교육 시스템을 바탕으로 국내 파트너와 제휴, 분교 등 다양한 형태로 한국에 정착했다.한국에 가장 먼저 진출한 요리학교는 르코르동블루로 숙명여대와 조인트 벤처 형식으로 지난 2002년 설립됐다. 르코르동블루는 1895년 파리에서 처음 설립돼 현재 15개 나라에 30개 이상의 국제 학교를 운영하며 연간 2만5000명 이상의 요리 전문가를 배출하는 명문이다. 한국 분교인 르코르동블루 숙명아카데미에서는 프랑스인 셰프가 학급당 12~14명의 소수정예를 직접 지도하며 현재까지 약 2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전 과정을 수료하면 파리학교와 동등한 자격이 주어지며 전 세계 다른 르코르동블루 학교에 편입할 수 있다.그리고 이탈리아의 ICIF는 외국인을 위한 요리 교육기관으로 지난 2004년 한국 분교를 설립했다. 한국·중국·독일·브라질·일본 등 28개국에 진출해 있는 ICIF는 1999년 한국요리사협회 소속 요리사들이 이탈리아 본교에서 연수를 받은 것이 계기가 돼 진출이 이뤄졌다. 마스터 코스는 ICIF코리아 예비학교에서 3개월간 기초 조리법과 이탈리아어를 배운 뒤 2개월간 이탈리아로 가서 집중적으로 이론·실습·견학한다. 그리고 4개월간 직접 레스토랑에서 현장 경험을 쌓는다. 그리고 브레베(breve) 코스는 12주 단기 코스로 파스타에서부터 디저트까지 심도 있게 이탈리아 요리를 배울 수 있다. 직장인과 주부 등 일반인을 위한 스페셜 테마 코스는 지중해 요리, 와인, 피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4~8주 동안 배운다.최근 한국 진출에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곳은 일본의 요리학교들이다. 요리 유학생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향했었고 일식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아 해외 교포들도 일식을 배우기 위해 국내에 유학을 올 정도이기 때문이다. 국내 운산그룹 계열 PDP와인주식회사와 손잡고 지난 2008년 설립된 츠지원은 최근 인기가 높다.학급당 8명의 소수정예이기 때문에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3개월, 즉 1기수가 1개월인 점을 감안하면 2~3기수를 기다려야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수강생들은 기존 셰프뿐만 아니라 건축가·의사·의상디자이너 등 다양한 커리어를 갖고 있다. 츠지원 관계자는 방송인 정은아·최유라·박경림 등도 최근 츠지원에서 요리를 배웠다고 귀띔했다. 츠지원은 단순히 요리법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최고의 식기로 고급 다이닝을 연출하고 와인을 매칭하는 것까지 교육한다. 그리고 세계 최고 권위의 요리 잡지 미슐랭 가이드의 최신 트렌드도 교육에 즉시 반영한다.한편 한국 분원을 코앞에 둔 명문 요리학교 들도 있다. 400년 전통의 일본 핫토리영양전문학교는 인천 영종도 운북복합단지 안에 2012년까지 2만6420㎡ 부지에 요리학교와 기숙사를 짓는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지난 2007년부터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미국 CIA요리학교가 온·오프라인 에듀테인먼트사인 (주)시너전스와 제휴, 한국에 진출한다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다. 한편 CIA와 우위를 다투는 미국의 존슨앤드웨일스대학교도 교류할만한 한국의 파트너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해외 요리학교의 맹공 속에서 전통 한식이나 궁중요리를 가르치는 토종 요리 교육기관의 선전도 눈여겨볼만하다. 한식의 대표 교육기관으로는 궁중음식연구원, 숙대 한국음식연구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3곳이 있다.궁중음식연구원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두 왕인 고종과 순종을 모셨던 고 한희순(제1대 기능 보유자, 1889~1971년) 주방상궁으로부터 황혜성(제2대 기능 보유자) 씨가 전수받아 계승한 기관이다. 궁중음식 과정은 입문에서부터 중급Ⅰ,Ⅱ 등 단계별로 궁중의 일상식과 연회식을 재현하며 이론과 실기를 습득할 수 있다. 한편 궁중음식 외에도 향토 음식, 계절 김치, 계절 밑반찬 요리법을 배울 수 있으며 호텔 한정식 과정도 개설해 놓고 있다.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은 한국 음식의 과학화·산업화·세계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국내 유일의 대학 부설 음식연구원이다. 한희순 상궁이 1955년부터 1967년까지 학교에 출강해 직접 요리 실습을 지도했고 요리법을 전수받은 교수들이 우리 음식의 맥을 잇고 있다. 교육 시설과 규모는 호텔 요리실 못지않으며 전통 한식 교육과정부터 푸드 코디네이터 및 티 컨설턴트 과정까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한식을 배우려는 재미 교포 및 일본인들이 한 학기당 3~5명 정도 이곳으로 요리 유학을 오고 있다. 한편 숙대 한국음식연구원은 2020년까지 20개 나라에 한국 음식 교육기관을 진출시킬 계획도 있다.한국전통음식연구소는 지난해 10월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 부인 미유키 여사와 김윤옥 여사가 함께 김치를 담근 곳으로 최근 더 유명해졌다. 떡·한과, 폐백·이바지, 전통 민속주, 궁중음식, 전통음식, 장·장아찌, 약선 음식, 보양죽차림, 김치, 차와 음청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일반인 및 외국인을 위한 단기 과정은 인기가 높다. 특히 전문가를 위한 최고지도자반과 명인반이 있으며 2008년에는 해외 한국 공관에 파견할 요리사의 교육을 담당했다.한편 직장인·가족·커플·어린이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요리 강습을 열고 있는 라퀴진은 요리사들을 넘어 일반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라퀴진에는 푸드 코디네이터 전문가과정 외에도 한식·일식·이탈리아요리·케이크·에스닉푸드·초콜릿 등 강좌가 야간 및 주말에도 많이 개설돼 있어 부부나 연인 단위로 강습을 받기도 한다.한희순 상궁의 전수자로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전희정(73)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 교수는 최근 요리 강습 붐에 대해 “세계 요리를 알고 우리 요리를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한식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젊은 사람들이 의욕적으로 세계 요리를 배워나 간다면 한식의 세계화도 곧 실현될 것”이라고 전했다.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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