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조달 ‘빨간불’…대부분 ‘삐거덕’

국내 마천루 프로젝트 잘돼 가나

지난 1월 4일 전 세계의 이목은 세계 최고층 빌딩이 들어선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로 향했다. 세계 최고층 건물의 역사가 다시 쓰였다는 소식에 중동 전체가 들썩였지만 환호는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두바이의 자랑거리였던 이 건물의 이름이 버즈 두바이에서 하루 만에 아부다비의 통치자 이름을 딴 ‘버즈 칼리파’로 바뀐 것이다. 이와 관련해 두바이 당국은 공식 입장을 내지는 않고 있지만 아부다비의 지원으로 금융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두바이가 아부다비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어찌됐건 이번에 들어선 버즈 칼리파는 ‘마천루의 저주’가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국내에도 상당수 빌딩이 초고층으로 지어지고 있다. 100층 이상 초고층으로 계획된 곳은 현재 10채에 이르고 80층 이상 건물을 포함하면 그 숫자는 20여 채가 넘는다.롯데그룹의 숙원 사업인 잠실 제2롯데월드는 투자되는 금액만 1조7000억 원으로 메가톤급 개발 프로젝트다. 당초 112층으로 계획됐지만 추진 과정에서 현재 125층으로 층수가 높아졌다. 현재 상업 기능 시설 비중이 늘어나면서 교통 영향 평가, 환경 영향 평가 등을 다시 받고 있다.상암동 랜드마크타워(서울 라이트빌딩)는 지난해 특수목적법인(SPC)이 구성됐으며 오는 5월 착공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133층 규모로 호텔·아파트·오피스·컨벤션센터·백화점·전망대 등으로 꾸며지는 상암동 랜드마크타워는 공사비만 3조3000억 원이 들어가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교원공제회·대우건설·대림산업·산업은행·우리은행·한국토지신탁 등이 공동으로 서울랜드마크컨소시엄이라는 SPC를 설립했다. 오는 5월 서울시로부터 토지를 완전 매입한 뒤 2015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에 들어간다.용산 드림타워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내에 들어선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주도가 돼 용산드림허브프로젝트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사업 부지는 서부이촌동 일대 30만4500㎡(구 9만2110평)다. 공사비만 28조 원이다. 서부이촌동 일부 주민이 통합 개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진통을 겪었지만 주거 부문 면적이 당초 계획보다 늘어나고 토지비 규정도 분할 납부와 대물변제가 가능하도록 완화돼 사업 추진에 청신호가 켜졌다. 지역 주민들과의 의견 차도 상당 부분 좁혀졌다. 용산역세권개발(주) 김병주 팀장은 “2월 구역 지정과 4월 사업자 지정을 받는 것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면서 “계획대로라면 내년 착공에 들어가 2016년 완공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회사 측은 당초 665m 106층으로 건립될 계획이었지만 현재는 500m 100층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인천 송도에서는 151층 규모의 인천타워가 한창 건립 중이다. 쌍둥이 빌딩으로 지어지는 인천타워는 송도국제도시 6, 8공구에 들어서는 랜드마크 센터로 지난 2008년 6월 착공에 들어갔다. 미국 애틀랜타에 본사를 둔 부동산 개발사 포트만홀딩스와 현대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공동으로 송도랜드마크시티유한회사를 설립,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청라지구 국제업무단지 구역에는 103층 규모 빌딩이 들어설 예정이다. 네덜란드 투자 펀드 팬지아와 포스코건설·롯데건설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난 2007년 개발권을 따냈다.부산에서는 솔로몬그룹의 주도로 해운대구 센텀시티 내에 111층 규모로 월드비즈니스센터(WBC)를 건립 중이며 해운대해수욕장 근처에도 지상 118층 규모의 해운대관광리조트가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 중구 중앙동 공유수면 매립지에 130층 규모로 건립 중인 부산 롯데타운까지 합치면 부산에만 3곳이 초고층으로 지어진다.이 밖에 현대차그룹도 뚝섬 부지 내에 110층짜리 건물을 짓는 것을 골자로 한 초고층 프로젝트를 서울시에 제안할 계획이며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부지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 추진 후 지상 114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현재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다.문제는 버즈 칼리파에서 보듯 공사비다. 상암동 DMC와 잠실 롯데월드, 용산 드림타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금 조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 드림타워도 사업 초기 자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토지 대금 납부 시기를 분양이 시작되는 중반 이후로 늦췄다. 여기에 현 토지 소유주인 코레일이 지분을 현물로 가져갈 수 있도록 개발 계획도 바꿨다. 인천 드림타워도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착공에 들어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에 맞춰 공사를 완료할 계획이었지만 추가로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사업이 지연되는 모습이다.청라지구 국제업무단지 프로젝트 역시 금융 허브로 개발하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서 투자자 물색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건물을 예정대로 짓는다고 하더라도 입주 기업이나 임차인들을 구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상당수 건물들이 비슷한 시기에 완공되기 때문에 공급과잉에 따른 문제도 우려된다”며 초고층 빌딩 건립 사업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이 때문에 일부 건물은 당초 오피스·리테일 시설에서 변경, 주거 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있다. 솔로몬그룹은 부산 월드비즈니스센터를 업무용 시설에서 주거용 시설이 40% 들어서는 복합 건물로 변경하는 지구단위계획 변경안을 부산시에 제출해 지난해 12월 23일 승인을 받았다. 이에 앞서 부산시는 해운대관광리조트에 대해서도 일부 시설을 주거 시설로 이용하는 개발계획 변경안을 허용했다. 중구 중앙동 공유수면 매립지에 130층 규모로 들어서는 부산 롯데타운도 고급 주거 시설 마련을 위해 국토해양부에 공유수면 매립 목적 변경을 신청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관련 업계에서는 이 같은 용도 변경 이면에는 업무 시설로 건물을 지을 경우 금융권의 자금 지원이 줄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업이 장기간 표류할 바에야 고급 주택 분양으로 전환해 수익성을 맞추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부산 월드비즈니스센터 프로젝트는 지난 2008년 2월 부산시로부터 건축 허가 승인을 받았지만 2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부산경실련 관계자는 “민간 업체가 건립 중이거나 건립을 추진 중인 초고층 빌딩에 당초 계획에 없던 주거 시설을 부산시가 잇달아 허용해 주는 것은 민간 업체의 사업성만 높여주는 특혜”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이런 가운데 잠실 제2롯데월드도 지난 1월 26일 서울시로부터 교통·환경 영향 평가에 대해 ‘재심의’ 결정을 받았다. 서울시는 “교통 영향 평가에서 제2롯데월드 주변 교통 여건에 대한 계획이 미흡했고 환경 부문에서는 녹지 면적 추가 확보 등의 필요성이 제기돼 재심이 결정됐다”며 녹지 면적 추가 확보 등을 조건으로 이같이 결정했다.한국건설산업연구원 이복남 선임연구위원은 “100층이 넘는 건물에 주거 시설을 넣을 경우 어떤 문제가 불거질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체들이 수익성만을 고려해 용도를 변경하고 있다”면서 “두바이에서 보듯 높이의 경쟁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인근 지역과의 연계성, 해당 건물에 들어서는 시설의 콘텐츠 등을 차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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