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분쟁 ‘연장’…정치 리스크 ‘부각’

구글·차이나 전쟁의 관전 포인트

새해 벽두 세계 최대 인터넷 시장인 중국에서 구글이 선전포고를 했다. 지난 1월 12일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 업체 구글이 중국의 검열과 해킹, 그리고 지식재산권 침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이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중국 사업 철수까지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 1월 19일엔 자사의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사용한 스마트폰의 중국 출시를 미루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다시 구글이 철수설을 번복하며 중국 사업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지만 구글·차이나 전쟁은 세계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다는 분석이다.구글의 불만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 기업이라면 흔히 겪는 리스크라는 점에서 차이나 리스크가 또다시 부각되고 있다. 또 구글 사태의 뒷면에는 미국과 중국 간에 벌여 온 해묵은 패권 경쟁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구글과 중국의 분쟁은 사이버 세상의 빅브라더 간 충돌이라는 측면도 있다. 미래 인터넷의 판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구글 차이나 전쟁이 주는 메시지를 차이나 리스크와 G2(주요2개국) 분쟁으로 나눠 짚어본다. = 구글이 선전포고한 직접적인 발단은 지난해 12월 중국 해커들이 중국 내 인권 운동가들의 G메일(구글의 e메일)을 해킹하고 구글의 지식재산권 일부를 침해하면서 시작됐다. 구글은 자사뿐만 아니라 금융 화학 등 다른 업종의 대형 외국 기업 30여 곳도 중국에 해킹을 당했다고 주장해 중국에서의 해킹 리스크가 또다시 부각됐다. 이와 관련, 야후·어도비·시만텍·다우케미칼 등이 지난해 여름부터 해킹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해킹뿐만 아니라 중국의 검열 정책은 일렉트로닉아츠(EA)와 같은 온라인 게임 업체 등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문화 산업 부문의 외국 기업들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리스크라는 지적이다. 중국은 올해 한국을 제치고 아시아 2위 영화 시장으로 부상하고 5년 내 일본까지 제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월스트리트저널). 지난해 중국 영화 시장은 전년보다 42% 성장한 9억1100만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중국산 영화의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다. 한 해 수입할 수 있는 외국 영화를 20편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최근엔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아바타’의 상영을 전격 축소하기도 했다. 중국 시장에서 아바타를 배급하고 있는 차이나스텔라필름은 최근 국영 영화 배급 업체인 차이나필름그룹으로부터 아바타 평면판(2D) 영화 상영을 중단하라는 긴급 통지를 받았다. 이에 따라 4500개 영화관에 내걸렸던 2D판은 내리게 됐다. 약 800개 영화관에 올려진 3D 및 아이맥스 영화는 계속 상영된다. 아바타의 상영 축소 결정은 영화가 자국의 부동산 개발에 따른 철거 상황을 연상시킨다는 정치적 이유 외에도 곧 개봉될 중국 영화 ‘공자’의 상영관 확보 등 자국 영화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지적이다.중국의 검열 정책 강화는 서방식 가치관이 밀려들 경우 사회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중국 당국이 막대한 시장을 내세우고 있어 외국 기업으로선 맞불을 놓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구글이 철수설에서 한발 물러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미국 인구보다 많은 3억8400만 명의 네티즌이 있는 세계 최대 인터넷 시장을 외면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서다. 중국에선 휴대전화로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바일 누리꾼도 지난해 말 현재 2억3300만 명으로 전년(1억1300만 명)보다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휴렛팩커드(HP)가 구글 지지를 거부한 것도 이 같은 시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스티브 발머 MS 최고경영자(CEO)와 마크 허드 HP CEO는 구글·차이나 전쟁을 “구글의 문제”라고 격하하고 “중국은 엄청난 성장을 하는 놀라운 시장”이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전했다.중국 특유의 모호한 정책 집행이 불투명성이라는 리스크를 제공한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 당국은 구글이 음란물 유포의 온상이 되고 있다며 수시로 접속을 차단해 왔다. 경쟁사인 중국 업체 바이두는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아 불공정 게임이라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 구글의 중국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31%(매출 220억 달러)로 1위인 중국 토종 업체 바이두(64%)의 절반 수준이다. 구글·차이나 전쟁으로 점화된 미·중 간 분쟁 격화가 중국이 시장 개방의 폭을 줄이거나 되돌리는 개혁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은 산업 정책의 정부 개입을 늘리고 외국 기업의 투자를 제한하면서 주중국 유럽연합(EU)상의가 이를 문제 삼은 연례 보고서를 내기도 했었다. = 구글·차이나 전쟁은 통상은 물론 군사 외교 등에서 번번이 마찰을 빚어 온 미·중 분쟁의 연장선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중국 인권 운동가의 G메일 해킹으로 문제가 커진 구글 사태는 중국의 인권 문제를 놓고 벌이는 미·중 분쟁의 한 사례라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중국이 11년간의 징역형을 선고한 인권 운동가 류사오보의 석방을 요구한 미국은 “의사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건 국제 인권 규범에 어긋난다”며 비판했었다. 이번에도 로버트 깁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는 인터넷 자유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인권 문제뿐만이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구글 사태는 잇따르고 있는 미·중 간 분쟁의 최신 사례일 뿐으로 G2(주요 2개국)가 국제 분쟁의 해결사가 될 것이라는 희망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구글의 중국 사업 철수 위협은 새해 초부터 불거진 △중국산 철강 제품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관세 부과와 △대만에 무기 판매를 결정한 미국에 항의하기 위한 중국의 첫 미사일 요격 실험 등에 이은 것이다.미국은 중국이 지난 1월 11일 지상에서 사상 처음 미사일 요격 실험을 한 것과 관련,중국 측에 관련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번 실험은 미 국방부가 지난 1월 6일 대만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등 무기 판매를 승인한데 따른 중국 측의 경고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이다.구글 사태는 미국이 중국발 사이버 테러에 대한 경계를 또다시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G메일 해킹은 구글의 철통 보안 시스템이 심각하게 무너진 첫 번째 사건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1997년 군 총참모부가 “컴퓨터 바이러스 침투가 원자폭탄보다 효율적”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고, 중앙군사위원회 직속으로 컴퓨터 바이러스 부대를 창설했다. 2003년부터는 베이징 광저우 등 4대 군구 산하에 미국 유학생 등 2000여 명의 해커로 구성된 ‘전자전 부대’를 창설해 운영 중이다. 특히 맹목적인 애국심으로 무장한 ‘훙커(레드 해커)’로 불리는 100만여 명의 민간 해커들은 2001년 백악관 사이트를 완전히 다운시키기도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요지부동이다.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다른 국가처럼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방식으로 법에 근거해 인터넷을 관리한다”고 반박했다. 또 “해킹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중국 정부의 해킹 연루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미국의 인터넷 보안 회사인 베리사인아이디펜스랩은 구글에 대한 해킹을 추적한 결과 중국 정부와 관련이 있는 징후가 있다고 밝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레 중국에선 미국이 정치적 목적으로 인권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구글을 내세웠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칭화대 중·미관계연구센터의 자오커진 부소장은 오바마 행정부는 올해 중간선거를 겨냥해 인권 문제로 중국을 비판하고 무역 문제에서 중국 기업을 겨냥해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로 군수 에너지 기업의 지지를 끌어들이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첫 방중 때 “강대국이 협력하면 충돌할 때보다 얻을 게 많다”고 했지만 양보하지 않는 양국 간 잇단 분쟁이 그의 희망을 퇴색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올해 가장 큰 세계 정치 리스크(유라시아그룹)”라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안 블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세계경제가 점차 회복되면서 자국의 금융 안정에 집중했던 미국이 새로운 국제 질서에 대한 개입을 강화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중국과의 갈등이 고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오광진 한국경제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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