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당 가격 최대 800만 원 차이나

아파트 브랜드와 가격 프리미엄

우리가 명품을 찾게 되는 이유는 품질과 디자인이 월등히 좋은 것도 있겠지만 명품을 소비함으로써 그 브랜드가 주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를 통해 우월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브랜드 프리미엄이다. 지난 2000년부터 국내 아파트 시장에도 브랜드 개념이 본격 도입됐고 중상류층 수요자들은 이미 이러한 브랜드 아파트의 프리미엄 가치를 소비하고 있다. 실제 브랜드 아파트는 거주 공간, 단지 조경, 마감재 등 제품 경쟁력 이상의 프리미엄 가치를 창출한다. 유명 브랜드 아파트는 지역을 대표하는 단지로 부각되기도 한다.관악구 봉천동의 비슷한 규모의 두 아파트를 비교해 보면 브랜드 프리미엄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관악현대아파트(1000번지, 2134가구)와 관악푸르지오(1717번지, 2496가구)는 서로 인접해 있지만 3.3㎡당 가격은 1월 15일 시세 기준으로 약 100만 원의 차이를 보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관악현대의 경우 3.3㎡당 가격은 1363만 원인데 비해 관악푸르지오는 1468만 원이다.마찬가지로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의 우미린 아파트(620번지, 166가구)와 래미안에버하임(630번지, 696가구)는 입주 연도가 모두 2009년 4월과 9월로 불과 5개월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3.3㎡당 가격은 200만 원 이상 차이가 있다. 우미린 아파트는 3.3㎡당 1414만 원인데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래미안에버하임의 경우 1652만 원이다.아파트의 가격은 그 자체의 제품적 특성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 등 다양한 외부 요인에 의해서도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주거의 효용 가치는 아파트의 내부 공간과 함께 주변의 생활환경 및 자연환경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되는 것이다. 두 단지 간 규모와 건설시기가 비슷한 봉천동과 내손동의 사례에서 우리나라 아파트의 외관이나 내부 구조가 매우 획일적인 형태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격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변수는 브랜드 프리미엄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브랜드가 실제로 어느 정도 가격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주택은 일반 제품과 달리 제품적 특성이 같고 동일한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어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그 효용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주택산업연구원이 실시한 ‘주택 브랜드 전략 수립방안’ 연구를 살펴보면 서울의 각 구별로 상위 10개 브랜드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일반 아파트와의 가격 차이는 관악구가 3.3㎡당 100만 원으로 가장 작고 강남구가 800만 원으로 가장 크다. 한편 주택 구입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는 투자 가치(29.2%), 주변 입지(22.6%), 브랜드(16.3%), 주택 특성(16.1%), 단지 특성(15.7%) 순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후반의 같은 설문 조사 때 브랜드는 단지 특성이나 주택 특성보다 낮은 순위였지만 2000년대 들어 브랜드가 주택 구입에 있어 주요 요인으로 등장했다고 주택산업연구원은 분석했다. 브랜드에서 연상되는 고급 이미지는 품질에 대한 신뢰성과 고급성 등 더욱 질 좋은 주택에서 살고자 하는 소비자의 요구와 잘 부합한다. 이런 까닭에 브랜드가 주택 구입의 결정 요인에서 매우 높은 순위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그러면 사람들은 입지 조건이나 규모가 같은 데도 불구하고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서까지 특정 브랜드의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소비자들은 ‘품질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는 브랜드를 단지 다른 아파트와 구별하는 이름이나 로고의 기능뿐만 아니라 ‘신뢰성’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믿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가격 상승 기대가 높아서’, ‘디자인·인테리어가 뛰어나서’, ‘주변의 평이 좋아서’ 등이 그 뒤를 이었다.브랜드를 중심으로 아파트에 대한 마케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배경은 과거 아파트는 양적 부족으로 인해 판매자 주도의 시장(sellers’ market)이었지만 주택 보급률이 향상되고 소비자의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구매자 주도의 시장(buyers’ market)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품질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지면서 아파트를 단순한 건축물로 보던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다양한 기능적 요소를 갖춘 주거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이제 주택은 단순히 휴식이나 안전을 위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사회 활동과 연계된 생활 영역으로 진화하면서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이 주택에 적용되기를 바라는 욕구가 늘었다고 할 수 있다.아파트의 브랜드는 공급자와 소비자의 상호작용을 중요시하는 관계 마케팅(interactive marketing)의 매개체라고 볼 수 있다.브랜드 프리미엄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건설사들이 해피콜 제도를 시행하는 등 소비자 만족도 향상에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소비자들에게 평판이나 입소문이 돌면 브랜드 이미지를 쉽게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아이파크는 국내 최대의 13개 전국 애프터서비스 네트워크와 고객의 불만 사항을 즉시 처리해 주는 해피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연간 2만여 가구를 수시로 순회 점검하고 있다. SK뷰는 아파트 1∼4층 외벽 점토 벽돌 시공, 경비실, 주차장 등의 단지 내 시설물 디자인 차별화와 남향 일색의 단지 배치에서 탈피해 전망을 고려한 배치로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래미안은 ‘래미안 아카데미’를 단지 내에 개설해 인터넷 강의, 노래교실, 건강·인테리어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수시로 음악회와 전시회를 열고 있다. 자이는 단지 내에 ‘자이서비스’를 만들어 입주민들이 애프터서비스 상담도 하고 휴게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한편 소비자의 선호 브랜드가 몇몇 주요 대형 건설사 브랜드에 집중되는 경향이 높아 중견 건설사들도 뒤늦게 브랜드를 도입하고 홍보하고 있지만 고전 중이다. 중견 업체들은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와 비교해 분양가나 평면 구성 등에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호도가 저조한 실정이다. 업체들은 이를 낮은 브랜드 인지도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대대적인 브랜드 개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솔레시티’라는 브랜드로 아파트를 공급해 온 동아건설은 1월 중에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할 계획이다. ‘센트레빌’로 알려진 동부건설도 브랜드 이미지 교체에 나섰다. 향후 아파트 시장 경쟁 구도가 심화되고 브랜드에 대한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경우 대형 건설사와 중소업체 간의 시장 지배력 격차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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