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고 달리는 두 열차의 종착역

청와대 통신

“이모셔널(감정적인)한 문제여서 분위기 전환이 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세종시 수정안 문제와 관련해 던진 말이다. 지난 1월 11일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청와대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반대는 짐작했지만 그렇게 즉각적이고, 강한 톤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낼지는 다소 예상하지 못했다. 세종시 문제를 두고 친이-친박 전면전 양상이 벌어지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그 해법을 놓고 내부적으로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몇 가지 원칙도 세워두고 있다. 청와대는 일단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모습은 피하고 있다. 당초 청와대는 2월 임시국회에서 세종시 수정법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었으나 무리하지 않는다는 스탠스다.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의 반발에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고 있다. 자칫 국민들에게 싸움질하는 모습을 보이면 세종시 수정안의 본질이 희석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 대통령은 수정안 발표 직후 대국민 입장 표명을 하고 세종시 건설 현장을 직접 방문하려고 했지만 미뤘다. 세종시 수정 추진 의지를 다시 한 번 확고히 밝히게 되면 박 전 대표 측의 반발 목소리를 높이게 될 것이고 그러면 갈등의 상승작용을 불러올게 뻔하다. 이 대통령이 1월 8일 정몽준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와 조찬 회동을 가진 자리에서 “서두르는 쪽이 지게 돼 있다. 의연하고 당당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대신 차별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세종시 언급을 피하고 국정 운영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의 신뢰를 얻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여론전에 올인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 인사, 한나라당 의원들이 릴레이로 충청 지역에 내려가 지역 여론을 돌려놓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이 같은 여권의 움직임은 초반 여론의 흐름이 세종시 수정안 관철 여부를 좌우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관들은 역할을 분담했다. 대전·충남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충북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대구·경북은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경기는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각각 맡았다. 청와대는 세종시 승부의 분수령을 설 연휴(2월 13~15일)로 잡고 있다. 왜 그럴까.세종시 수정안 내용을 발표하고 여론이 긍정적으로 바뀌기 위해선 적어도 한 달 정도 걸린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세종시 원안보다 수정안이 좋다는 ‘구전(口傳)’ 여론이 설을 계기로 확산되면 충청 민심도 움직일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기대다. 적어도 설 연휴 때까지 여론을 완전히 돌려놓지 않으면 세종시 수정안 추진이 힘을 잃을 수 있다는 긴박함도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초 계획했던 세종시 수정법안의 2월 국회 처리는 힘들어졌다. 그렇더라도 마냥 늦출 수 없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은 “예단하기 어렵지만 1, 2년을 무작정 보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현 정부 임기 내에 본격 착공에 들어가고 일부 완공까지 하려면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서두르지 않되 오래 끌지 않도록 적절하게 절충하겠다”고 했다.청와대 내에선 지방선거 이전에 매듭지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4월 임시국회 처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 설 연휴까지 여론이 수정안에 대해 우호적이 않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설도 나돈다.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그럴 경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최선을 다해 설득하되 안 되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뉘앙스다. 하지만 절충은 하지 않겠다는 게 이 대통령의 확고한 입장이다. 정치권에서는 3~5개 부처 이전이라는 타협안도 거론됐지만 청와대는 “그렇게 할 바에는 왜 이 대통령이 머리를 숙이고, 욕을 먹으면서까지 수정안을 추진하겠느냐.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지”라며 선을 분명히 긋고 있다.수정안 추진의 당위성에 대해 청와대는 국가 경영이란 점을 내세운다. 이 대통령이 ‘폴리티션’이 아닌 ‘스테이츠맨’ 입장에서 세종시 수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권을 뛰어넘는 국민과의 약속, 신뢰를 저버리면 안 된다는 박 전 대표의 원칙과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마주 달리는 열차와 같다. 어느 원칙이 국민들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설 것인가, 종착역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홍영식 한국경제 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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