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패션 코드로 진화한 ‘아이폰’

컬처 아이템 따라잡기

회의실에서 남들과 똑같은 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드는가.남성들은 그래도 이런 경우 여성들보다 자괴감이 덜 든다고 한다. 여성들은 같은 구두나 백을 들고 있다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면 거의 불꽃이 튄다. 하지만 최근에는 같은 아이템을 착용하거나 소유하고도 이러한 기분이 들지 않는 아이템들이 점점 우리 일상에서 늘어나고 있다. 같은 것을 소유하고도 소유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보일 수 있도록 제품의 소프트웨어를 소비자가 완성하는 방식의 디자인 혹은 기능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 대세이기 때문이다.요즘같이 저마다의 개성이 존중되어야만 하고 차별화하지 못하면 덜 떨어진 것 같이 취급하는 시대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획일적으로 공유하고 소유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바로 그 아이템이 단순한 상품이 아닌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일 것이다. 시공을 초월해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그 문화의 중심에 있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을, 그리고 그 문화를 통해 커다란 즐거움을 얻게 해 주는 마법 같은 아이템 몇 가지를 이번 주에 소개한다. 이미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러한 컬처 아이템들은 우리의 주위에 서서히 그 존재감을 높이고 있고 어떤 것들은 아주 오랫동안 그 생명력이 지속돼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최근 필자가 ‘득템(획득한 아이템이라는 인터넷 은어)’한 새로운 아이템들 중에 가장 큰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온 아이템이 있다면 바로 아이폰(i-Phone: 애플사의 휴대전화)일 것이다. 그 이유가 단순히 기존에 사용해 왔던 휴대전화기보다 더 많은 기능이 있고 새롭게 선보이는 터치폰이라서일까. 아니다. 그저 기술적 진보라는 이유만으로는 문화적 아이템이라 칭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손바닥 만한 전자기기에 문화적 충격까지 느꼈단 말인가. 필자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아이폰은 휴대전화가 아니다. ‘컬처 토이(Culture toy: 문화 장난감)’다.아이폰은 기술적인 측면이나 디자인 면, 즉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나라의 스마트폰들과 별반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하지만 아이폰은 단순한 휴대전화가 아니다. 그전까지의 휴대전화는 수신자와 발신자 간의 일대일 소통 형태였다. 하지만 아이폰은 통화 시에는 일대일 방식의 형태이지만 모바일 인터넷 세계에서는 다자간의 연결과 무한대의 콘텐츠 제공으로 사용자에게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 세계를 만들어 주고 있다.포인트는 바로 아이폰의 콘텐츠와 이 콘텐츠를 공유하는 방식에서 생성되는 신종 문화다. 이미 10만 개 이상의 콘텐츠들이 앱스토어에 올라와 있으며 이를 다운받아 즐기기 위해 휴대전화를 바꾸는 사람조차 생겨나고 있으며 이러한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기 위한 고용 창출이 일어나고 있다. 메이저 브랜드에서는 이미 이 콘텐츠를 활용해 마케팅이 시작되고 있으며 ‘나이키’ 같은 브랜드는 이미 아이폰에 장착돼 출시될 정도로 이 문화를 선점하고 있다.아이폰은 새로운 디지털 문화를 만들어 가며 진화하고 있다. 아이폰은 사회적 현상이지만 아주 원초적인 면에서는 하나의 쿨하고 멋진 패션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젊은 트렌드 세터들은 열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폰 역시 스마트폰으로 구분되어지지만 우리는 이미 아이폰과 그 나머지 스마트 폰으로 구분 짓고 있다. 아이폰은 이미 스마트폰이라는 장르를 넘어 하나의 고유명사로 그 브랜드 가치를 문화적으로 대우받고 있을 정도다. 아이폰 소유자가 새로운 디지털 문화의 선구자로서, 혹은 패션 리더로서 느껴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휴대전화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보호 속에서 안일하게 스마트폰을 단순한 전화기로 소통하고 개발해 온 한국의 브랜드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속수무책으로 보인다. 기술적인 진보는 노력해 따라갈 수 있지만 문화적인 진보는 마인드를 바꿔야 하는 분야이므로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사우나에 가면 탈의실에서 당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의 속옷이 어떤 브랜드인지 신경 쓰이는가. 물론 모두가 공감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요즘 세대들은 그렇다. 쉽게 말해 속옷은 기능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디자인·브랜드가 그 선택에서 더 중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속에 입어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아 무관심에 그저 면 100%의 편안하기만 하면 되었던 남성 속옷이 어느새 입는 사람의 자존심이 되고, 하나의 자랑거리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속옷의 문화를 리드해 온 브랜드는 바로 ‘캘빈 클라인’이다. 1980년대 초 ‘캘빈과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요(There is nothing between me and my Calvin Klein jeans)’라는 도발적인 카피로 유명해진 브룩실즈의 캘빈 클라인 청바지 광고를 기억하는가. 이 청바지 문화를 선도해 온 미국의 세계적 디자이너 캘빈은 연이어 속옷을 론칭하는데 이를 통해 무명의 말라깽이 모델 케이트 모스를 전 세계 속옷 아이콘으로 만든다.캘빈 클라인 언더웨어의 고무줄 아웃밴드(속옷의 고무줄 부분)에는 언제나 캘빈 클라인이라는 멋진 영자 로고가 있다. 언제나 아슬아슬할 정도로 건강하게 섹시하고 선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로 항상 감추기에 바빴던, 이 부끄러웠던 속옷이 캘빈 클라인을 통해 비로소 굳이 다 가릴 필요 없는, 살짝은 보여 주어도 섹시할 수 있고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입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속옷의 아웃 밴드를 다른 이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줌으로 써 자기만족을 느끼고, 심지어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는 겉에 입는 바지의 밑위길이(허리선부터 엉덩이 부위 아래선까지의 길이)가 내려가게까지 하는 패션 트렌드의 주역이 될 정도로 그 파급효과는 대단했다.또 다른 예를 한번 들어보자. 만년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브랜드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필자는 어릴 적 중고등학교 졸업 때 부모님으로부터 몽블랑 만년필과 CASIO 시계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몽블랑이 마치 인생의 커다란 포상과 같은 앞날을 축복하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것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30, 40대들에게는 아마도 나와 같은 이미지로 존재할 것이다. 비단 만년필뿐만 아니라 필기구의 한 종류인 마커(매직펜 같은 컬러 필기구)인 코픽도 마커 분야에서 몽블랑이라고 불리고 있다. ‘코픽’ 마커라는 것을 처음 듣는 이들도 물론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마커는 이미 사용하고 있는 많은 국내외 전문인들에게는 명품 마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코픽’ 마커는 스케치를 위한 단순한 필기구가 아니다. 이 마커는 실제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와 산업 디자이너, 건축가 등 많은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필기구여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멘토를 동경하며 자신의 작업대에 이 비싼 ‘코픽’ 마커를 굳이 올려놓고 싶어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부족한 2%를 브랜드 가치가 대신 채워줄 것 같은 일종의 판타지 소비 심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펜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이면 되는 것인데’라고 말이다. 겉으로 보기엔 비슷한 제품도 많고 써보면 일반인은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성공한 많은 사람들은 ‘몽블랑’ 만년필을 지니고 다니고 ‘코픽’ 마커를 최고의 전문가들이 선택하고 사용하려고 한다는 브랜드 이미지는 일종의 필기구 소비문화의 본질인 것이다.아이폰,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 코픽 마커, 몽블랑, 나이키…. 이들 브랜드에서는 다른 것에서 느낄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제품 자체에서부터 느껴지는 강한 문화적 코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컬트(cult)’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 앞서가는 소비자들에게 상품은 단순히 기능과 질이 아니다. 그보다 자신을 표현하는 디자인적 수단이고 심리적 사회적 표상이다. 문화 자체를 상품에 녹여 세일즈하는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 상품 자체의 속성만으로는 차별화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에 상품도 단순한 생산품(product)이 아닌 문화 융합 상품, 즉 ‘컬덕(cult-duct:culture 또는 cult+product)으로 거듭나게 되고 이것이 바로 2010년에 주목해야 할 상품의 트렌드다.황의건 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1994년 호주 매쿼리대 졸업. 95~96년 닥터마틴 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 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보그, 바자, 엘르, 지큐, 아레나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 버블 by 샴페인맨’ ‘행복한 마이너’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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