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 살리라’…엘리트들 귀농 늘어

귀농·귀촌으로 ‘인생 2모작’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임성호(42) 씨에게 지난해는 인생에서 큰 도전을 시도한 한 해였다. 기존에 개인 사업으로 월 600만~700만 원씩 소득이 있었지만 경기 침체로 빚이 늘어나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고 귀농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2009년 사업을 정리하면서 ‘경기귀농·귀촌학교’에 등록해 주말마다 6시간 정도 강의와 실습을 통해 귀농을 준비했다. 임 씨는 성공적인 두 번째 인생을 꿈꾸며 꽤 열심히 귀농 수업을 들은 덕분에 약용작물 재배와 관련한 자격증도 땄다.그리고 지난해 10월 기존 사업을 완전히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 진목리에서 오이 등 밭작물 재배를 위한 비닐하우스 설치에 들어갔다. 임 씨는 다행히 고향인 용인에 부모님의 3305㎡ 규모의 땅이 있어 경작지를 확보했지만 실제로 비닐하우스 설치는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귀농자를 지원하기 위한 농림수산식품부 등 정부 지원책과 달리 실제로 은행에서 대출 조건이 까다로워 힘들었다.”임 씨는 각고의 노력 끝에 총 2억3000만 원을 투자해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최근 오이 재배를 시작했다. 아직은 농사에 서툴고 어려움도 많지만 임 씨는 가족들과 힘을 합쳐 성공 귀농을 꿈꾸며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임 씨는 “밭작물 재배를 통해 올해 8000만 원 매출에 4000만 원의 순이익을 기대한다”고 말한다. 농작물은 가격 변동이 심해 예상대로 수익을 거둘지 아직 불투명하지만 그는 귀농을 결심하고 지금까지 진행해 온 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농산물 재배에서 더 나아가 2차 가공업까지 계획하고 있고 친형과 함께 앞으로 과수원도 만들 꿈을 갖고 있다.임 씨가 귀농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도록 교육받았던 경기귀농·귀촌학교에는 최근 임 씨와 같이 귀농으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려는 이들의 문의 전화가 많다. 이 프로그램을 관장하는 경기농림진흥재단의 귀농·귀촌 담당 노지윤 주임은 “올해 두 번째 모집을 앞두고 벌써부터 하루에 3~5통씩 입학 자격을 묻는 전화가 온다”며 “서울·경기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도 귀농에 대한 관심을 많이 보인다”고 말한다.경기농림진흥재단이 지난해 처음 개교한 경기귀농·귀촌학교는 150명 모집에 451명이 몰렸고 약용작물학과의 경우 6.7 대 1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경기귀농·귀촌학교는 서울에서 가까운 지리적 장점과 주말을 이용해 귀농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한국농수산대학(화성)·농협대학(고양)·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 3개 대학에 개설된 경기귀농·귀촌학교는 다른 귀농학교가 중·단기 합숙 교육인 데 비해 주말 교육과정이어서 생업을 가진 도시 직장인이 쉽게 귀농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했다. 경기농림진흥재단 측은 “교육생의 70% 이상이 대졸 학력자, 대기업 직원, 공직자, 40~50대 연령으로 다양하다”고 설명했다.이 학교는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이론 교육뿐만 아니라 모종에서부터 수확까지 전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현장 실습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3개 대학에 약용작물반·밭작물반·시설채소반·화훼반·원예반·과수반 등 분야별로 나눠져 있으며 한 반에 25명씩 총 150명을 교육한다. 수강료는 6개월간 30만 원으로 매우 저렴하다.지난해 수료생 149명에 대한 만족도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93%가 ‘만족한다’고 답했고 ‘추천 의향 여부’를 묻는 질문에 96%가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 수업을 통해 귀농에 필요한 실질적인 농업 기술인 작목별·품종별 파종 및 예방법 등을 배울 수 있었고 귀농에 성공한 멘토를 직접 방문해 귀농·귀촌 시 겪을 수 있는 어려움과 시행착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수강생들은 말했다. 또한 개인별로 귀농 설계 계획안을 스스로 작성하고 발표하면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귀농 마인드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했다.경기귀농·귀촌학교는 올해 두 번째로 오는 3월부터 수강생을 모집하는데 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조기 퇴직자의 증가로 신청자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0년 과정은 지난해 6개월 과정에서 7개월(4월~10월) 과정으로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한편 귀농귀촌종합센터(www.returnfarm.com)에 가면 귀농과 관련한 창업 지원, 컨설팅·멘토링 등 정보를 구할 수 있으며 전국 지자체의 지원 센터 정보를 구할 수 있다. 한편 서울에서도 귀농을 돕는 농업인 실용 교육을 시작했다.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에는 생계형 귀농이 대세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기 명예퇴직자가 늘면서 고학력자나 전문직 종사자, 대기업 출신들 중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원생활을 영위하며 혁신적 농업을 꾀하는 엘리트 귀농자들이 크게 늘었다. 또한 30~40대의 젊은 엘리트의 귀농도 크게 늘어 농업의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귀농 인구를 살펴보면 50대가 18.9%, 60대 이상은 9.8%인데 비해 40대는 28.3%, 30대는 무려 36.5%로 나타나 30대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지난해 4월 정부가 ‘귀농귀촌종합대책’을 발표한 이후 귀농·귀촌도 새로운 경향을 맞이했다. 먼저 귀농인과 현지 농민 간 조화가 어려워 아예 귀농인들이 형성한 공동체도 생겨났다. 전북 장수의 ‘하늘소 마을’, 경북 봉화의 ‘비나리 마을’. 전북 진안의 ‘새울터 마을’은 귀농인들이 모여 형성한 귀농 공동체다. 귀농에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기술적인 부족함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교류하고 함께 지자체의 귀농 지원책의 수혜 방안을 연구하곤 한다. 그리고 농산물 유통의 틈새를 찾아 인터넷 등으로 직접 판로를 개척하거나 농산물의 이차가공을 통해 상품화에 주력하기도 한다. 최근 웰빙 추세에 맞춰 고급 농산물 재배로 세계시장을 넘보는 귀농자들도 있다.또한 귀농자들은 농사 외에도 귀농 전의 경력을 살려 해당 지역에서 사회복지사나 교사 등 지역 발전에 일조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도 한다. 귀농 부부의 경우 남편은 농사를 짓고 부인은 지역사회에서 일하는 일명 ‘귀농 맞벌이’인 셈이다.한편 서울을 꼭 떠나지 않고도 농사를 짓는 도시농업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빌딩의 옥상이나 인근 텃밭을 이용해 취미가 아닌 전업 도시 농부인 것이다. 도시 녹화의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급자족으로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최근 서울 내 지자체들은 ‘그린 트러스트’란 이름으로 도시농업을 권장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해외에서는 건물 옥상을 밭으로 개조하고 신선한 채소를 재배해 인근 레스토랑에 직접 납품하는 사례도 있다.서울에 사는 농업인과 귀농을 준비하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서울특별시농업기술센터는 ‘농업인실용화교육과정’ 사업을 시작했다. 1월 18일부터 연간 1000명을 교육할 예정이다. 2010년 새롭게 바뀐 농정 시책과 농약 안전 사용 요령, 농기계 안전 사용 등으로 구성된 공동 과목과 친환경 농업 실천을 위한 토양 관리 방법, 과수원의 토양 관리 방법, 고객 가치 마케팅 전략 등을 교육한다.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