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독립 보장 뒤에 숨은 열석발언권

경제부처 24시

한파로 전국이 얼어붙었던 지난 1월 5일 아침,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경제신문과 신년 대담을 가졌다. 여러 가지 정책 의지를 보이던 윤 장관은 한국은행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지나가는 말을 하듯이 “할 말은 해야죠”라고 답했다.그로부터 4일 뒤인 7일 오후 재정부는 다음날(8일) 열리는 금통위 회의부터 허경욱 재정부 1차관이 정례적으로 참석해 발언권을 행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은행법 91조에 근거해 금통위 위원이 아닌 재정부 차관도 회의에 열석(列席)해 발언할 권한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8일 열린 금통위 회의는 그 어느 때보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다. 허 차관의 사진은 각 신문의 1면을 차지했다.재정부가 열석발언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정부의 출구전략(유동성 회수),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단계인 금리 인상에 대한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전문가들과 시장 참가자들은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1월엔 기준금리가 동결되더라도 2월이나 3월엔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5% 경제성장 전망에 연 2% 기준금리는 매우 낮은 것이며 우리는 조금씩 출구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처럼 열석발언권을 구태여 들고 나오면 현실적으로 한은이 상반기 중 기준금리를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열석발언권이 단순히 정부가 금리 인상이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정책 의지에서 더 나아가 한은의 독립성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각에선 정부가 열석발언권에 이어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재의요구권이란 ‘재정부 장관은 금통위 의결이 정부 경제정책과 상충된다고 판단하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으로 한은법 제92조에 명시돼 있다. 재의 요구가 있는 경우 금통위는 다시 의결해야 하며 위원 5인 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한 때에는 대통령이 이를 최종 결정하도록 돼 있다. 물론 재정부 관계자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의견”이라고 일축했다.이성태 한은 총재도 이날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열석발언권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금통위의 의사 결정은 결국 금통위원 7명이 하는 것”이라며 독립성과 중립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물론 재정부 차관의 열석발언권은 1999년 6월 이후로는 한 번도 사용된 적은 없지만 엄연히 법적으로 규정돼 있다. 재정부가 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합법적이라는 뜻이다. 윤종원 재정부 경제정책 국장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이를 관행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과거 네 차례를 제외하곤 금통위에 참석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이번 경제 위기를 계기로 정부와 중앙은행 간 정책 공조 필요성이 강조돼 참석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은이 독립성을 운운하는 것은 왜일까.1997년 말 외환위기에 따른 금융 개혁은 한은에 두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한은은 기존에 갖고 있던 은행에 대한 감독 기능을 신설되는 금융감독위원회로 이관하는 대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 받았다. 그 결과 금융통화운영위원회가 금융통화위원회로 복권되고 그 자율성이 강화됐다. 가장 상징적인 의미를 둘 수 있는 변화는 이전에 재무부 장관이 당연직 위원으로 금융통화위원장을 맡도록 되어 있던 것을 개정해 경제 부처 장관을 위원에서 배제하고 한국은행 총재가 위원장직을 맡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경제 관료들이 한은의 독립을 보장하면서도 아주 작은 빌미를 남겨둔 것이 열석발언권 조항인 것이다.어쨌든 정부로서는 두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됐다. 경기에 대한 정부의 판단을 통화 당국에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또 정부가 금리 정책의 결정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봄으로써 관련 정보를 더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이득이다.박신영 한국경제 기자 nyusos@hankyung.com : 한국은행법 91조에 따라 재정부 차관이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 위원(7명)들과 나란히 앉아 발언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단 의결권은 없다. 과거 열석발언권 행사는 1998년 4월 9일,1999년 1월 7일과 1월 28일,6월 3일 등 4차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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