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탈루 소득 차단과 국세청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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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이 내놓는 빈도 높은 메뉴 중 하나가 음성 탈루 소득의 차단이다. 과세 대상이 되지 않는 경제의 사각지대, 지하경제라고도 하고 비공식 경제라고도 하는, 촘촘한 세법망을 피해가는 지능형 탈세 유형을 파악해 정당한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다짐이다. 청장이 바뀌거나 새해 업무 계획을 세울 때면 거의 예외 없이 들어가는 각오다. 그러나 쉽지 않은 과제다. 경제가 복잡해지면서 탈세의 방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치밀해지는 까닭이다.국세청이 2010년 정책 목표로 다시 한 번 이 메뉴를 내놓았다. 이번엔 각오가 좀 달라 보인다. 올해를 ‘과세 사각지대에 있는 숨은 세원을 양성화하는 원년’으로 선포하고 탈루 소득을 막는데 국세 행정을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우리 사회 곳곳의 음지 소득이 양성화되면서 공평 과세가 실현되고 재정수입이 확충되는데 도움이 돼야 한다는 것은 지당하다. 다만 연초에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라는 식으로 국세청 간부들이 모인 회의에서의 일회성 다짐은 넘어서야 한다. 탈루 방지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고 국세 행정의 근간으로 뿌리내릴 때까지 해를 넘겨서라도 지속적인 관심사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각오가 여러 차례 반복됐다는 점을 기억하는 납세자들이 적지 않다.건전한 경제발전을 좀먹는 음성 탈루 소득 문제는 새로운 일이 아닐뿐더러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국세청은 당장 유흥업소 등 현금 거래 업종, 부동산 개발업, 분양 대행업과 같은 신종 탈루 행위, 서류상 회사를 악용한 역외 탈세를 올 한 해 중점 관리 대상으로 정했지만 이쪽만도 아니다.각 분야 ‘사’(士)자 돌림의 전문 자격자들이 그렇고 사회적으로 존중의 대상이 되어야 할 병원·의료업도 그런 대상이다. 국세청은 각 지방국세청에 정보 수집 전담팀을 신설해 이들 업종과 음식·숙박업에 대한 정보 수집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는데, 이 같은 고소득 업종에도 예외 지대가 많다고 보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다.이런저런 사각지대를 없애자면 전담팀을 만들어 현장의 정보 수집을 강화하고 조사국 역량을 총동원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분석 시스템을 잘 갖추고 활용하는 것이다. 2000년 들어 한때 국세청은 신용카드 결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각도로 많은 공을 들였다. 신용카드 업계의 업무 확대 기류와 맞물리면서 카드 사용이 급속도로 늘었다. 카드 결제는 일상화됐다. 그 결과 부가세 징수는 획기적으로 개선됐는데 이런 것이 시스템으로 과세의 사각지대를 없앤 대표적인 사례다. 싱가포르 같은 곳에서는 일찍부터 전자거래·전자신고·전자납부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국세청 직원들은 자료 분석에 주력해 공평 과세와 투명한 세정에서 성과를 거뒀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연말부터 국세청이 새로 시행에 들어간 소득·지출 분석 시스템, 자료상 조기 경보 시스템, 법인 정보 및 국제 거래 세원 분석 시스템과 같은 과세 인프라가 제대로 정착되고 실효를 거둘지도 주목된다.금융감독원이 가진 기업 관련 자료라든가 금융거래망과 연계된 전산 분석 시스템은 한번 제대로 정착되면 효과가 날 것이다. 이런 전산 분석 체계가 공평 과세 인프라로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 자체로 첨단 기법이기도 하지만 세무 직원들의 재량권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되기도 하는 까닭이다.탈루 소득을 없애겠다고 의욕만 내세운다고 잘된다는 보장도 없다. 지속적으로 시스템을 정비하고 꾸준히 보강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원칙은 분명히 해나가되, 너무 지나친 현장 조사로 겨우 회복세를 보이는 실물경제에 찬물을 끼얹어서도 곤란하다. 국세청도 이 점은 딜레마로 느낄 것이다. 이를 보완하는 방법이 있다. 납세자의 권익 보호를 더욱 확충하고 성실 납세자, 특히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가는 방안이다.국세청의 시스템 발달은 또 하나의 딜레마를 던진다. 온라인 전산망과 제도가 완벽해져 갈수록 개인들과 사업자들은 ‘빅 브라더’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걱정도 될 만하다. 나의 존재가 맑은 어항 속 물고기처럼 낱낱이 드러나는 세상은 누구도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그 길로 들어섰다. 당신의 금융거래를 금융 전산망과 국가 기관의 성능 좋은 컴퓨터가 모두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허원순 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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