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 ‘시장’으로…기대·우려 교차

세계 1위 지표에 담긴 메시지

미국발 금융 위기는 중국을 축으로 한 세계 질서의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금융 위기 이듬해인 지난해 중국이 위기를 딛고 세계 1위에 오른 지표들이 이를 보여준다. 중국의 세계 1위 부상을 알리는 지표들은 중국의 힘과 함께 딜레마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중국의 명과 암, 그리고 외국 기업에 던지는 비즈니스 기회의 메시지를 짚어본다. = 우선 중국은 지난해 독일을 제치고 세계 최대 수출국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중국 상무부가 최근 추정했다. 글로벌무역정보센터(GTIS)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중국 수출은 9570억 달러로 같은 기간 독일의 9170억 달러를 앞질렀다. 이 기간 중국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4% 줄었는데 독일은 감소 폭이 27.4%로 더 컸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문가들을 인용, 2009년 11~12월까지 합산해도 중국의 1위가 확실하다고 추정했다. 특히 중국의 수출은 지난해 12월 전년 동기 대비 9.6%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등 1년여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상태다.중국의 세계 1위 수출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세계무역 체제에 본격 편입되기 시작한 중국이 8년 만에 거둔 성과다. 물론 여기엔 중국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현지 진출 외국 기업의 기여도 크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섰음을 확인해 주는 또 다른 사례인 셈이다.하지만 위기 속 중국의 세계 최대 수출국 부상 이면에는 글로벌 무역마찰이 자리하고 있다. 종산 중국 상무부 부부장(차관)은 지난해 중국의 해외시장 점유율이 9%로 전년의 8.86%보다 높아진 것으로 추정했다. 종 부부장은 올해에도 해외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안화 저평가 등 수출 지원책을 놓고 빈발하고 있는 중국발 무역마찰이 지속될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중국은 지난해에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입 규제를 당한 국가였다. 작년 말부터 새해 초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중국산 철강 제품에 대한 잇단 수입 규제 조치는 올해도 중국산에 대한 수입 규제가 이어질 것을 짐작하게 한다. =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도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도 나왔다. 중국의 자동차 판매 대수는 지난해 1300만 대를 넘어서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른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 2006년 일본을 추월해 세계 2위 자동차 시장이 된 지 3년 만이다. 미국이 지난해 연간 1040만 대의 자동차를 팔아 27년 만에 최악의 성적을 내고, 일본도 지난해 자동차 판매 대수가 2008년에 비해 9.3% 줄어든 460만9255대에 그쳐 1978년(468만1861대)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500만 대 밑으로 추락한 것과 대조된다. 중국이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선진국 기업들이 휩쓸다시피 한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중국 업체의 약진이 돋보인다. 중국 최대 자동차 업체인 상하이자동차가 지난해 순익을 무려 전년 대비 900% 이상 늘린 것으로 추정된 게 한 사례다. 상하이자동차의 2008년 순익은 6억5600만 위안(1115억 원)으로 이를 감안하면 상하이자동차의 지난해 순익은 60억 위안(1조2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상하이자동차는 지난해 272만 대를 팔았다. 전년보다 57.18% 증가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승용차는 160만 대로 57% 증가했다. 대부분 중국 내수로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이 상하이자동차 실적의 고공행진을 이끈 셈이다. 상하이자동차는 올해 자동차 판매 목표를 300만 대로 잡았다. ‘중국=생산, 미국=소비’라는 금융 위기 이전 글로벌 무역 질서의 패턴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이징자동차가 제너럴모터스(GM)의 스웨덴 자회사인 샤브자동차의 일부 기술을 사들이고, 지리자동차가 포드자동차의 스웨덴 자회사인 볼보를 인수하는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중장비 업체인 쓰촨텅중이 GM의 허머 브랜드 인수에 합의한 것도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부상을 보여준다. = 중국이 세계 최대 탄소가스 배출국이면서도 그린 산업의 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도 눈길을 끈다. 풍력발전용 터빈 시장이 미국을 앞질러 세계 최대 규모로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 것이다. 이미 지난해 상반기에 중국은 450만㎾급의 풍력터빈을 세워 같은 기간 400만㎾를 설치한 미국을 추월했다. 중국은 풍력 등 신에너지를 전력 송배전 업체들이 의무적으로 사주게 하는 법을 최근 마련하는 등 그린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의 그린 산업 부양 규모는 2180억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중국이 건설 중인 원자력발전소 용량도 24기 총 25.4GW급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게 이를 말해준다. 중국이 지난해 12월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1833km 길이의 세계 최장 천연 가스관을 개통하는 기록을 세운 것도 친환경적인 에너지 확충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 중국은 지난해 경제성장률도 8% 이상으로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덕분에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2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중국의 GDP는 8% 이상 늘어나 4조7500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 반면 일본의 GDP는 6.6% 마이너스 성장한 것으로 보여 4조6000억 달러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일본이 1968년 이후 40여 년간 지켜온 세계 2위 경제 대국 자리를 중국에 넘겨주게 된 것이다. 중국의 지난해 세계 경제성장 기여도는 50%를 넘어선 것으로 유엔이 최근 추정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겪은 세계를 위기에서 건져 올린 일등 공신이라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다. 글로벌 항공 산업이 글로벌 경기 침체와 신종플루로 최악의 성적을 냈지만 중국의 항공 산업이 좋은 실적을 낸 것도 위기 속에 부상하는 중국 경제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의 항공 산업은 지난해 118억 위안의 순익(1∼11월)을 내 세계 항공 산업 가운데 가장 좋은 실적을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홍콩을 포함한 중국 증시의 기업공개(IPO)도 세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중국의 IPO 고공행진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올해 중국 기업들의 IPO 규모가 지난해보다 72% 늘어난 3200억 위안(54조4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상하이증시에서 올 하반기 처음으로 외국 기업들의 상장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국의 IPO 폭탄은 거품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증시에 물량 압박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템플턴자산운용의 마크 모비우스 회장은 올해 중국을 포함한 이머징마켓의 IPO 규모가 처음으로 선진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하고 과도한 IPO에 따른 물량 부담으로 이머징마켓이 20% 하락 반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중국의 부동산 버블을 경고하는 지표도 나왔다. 차이나데일리는 베이징에서 한 부부가 100㎡ 규모의 중고 아파트를 구매하려면 49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해야 한다며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다고 추정했다.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최근 일부 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토지 공급과 재정 및 세제를 동원해 부동산 시장을 규제하겠다고 지적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미 중국 정부는 부동산 양도세 면제 대상을 구입 후 2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등 과열 억제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상하이와 광저우가 새해부터 90㎡ 이하의 소형 주택을 처음 구매하는 사람에게만 세제 해택을 부여하는 등의 과열 억제책을 내놓은데 이어 선전도 향후 3개월간 부동산 투기 단속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 같은 부동산 정책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새해 연휴에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주요 도시의 부동산 거래가 급감하는 등 조정 조짐이 나타나기도 했다. 위기 속에 중국이 만들어낸 세계 1위 지표들이 중국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함께 반영하고 있다.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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