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인상에 비난 빗발…‘못 참겠다’

불붙은 카드사 - 소비자 전쟁

미국 워싱턴 주 체니에 사는 크리스틴 씨는 최근 소비자보호 관련 인터넷 사이트인 컨슈머어페어닷컴(consumeraffair. com)에 이런 글을 올렸다.“지난해 말 갑자기 체이스맨해튼 은행이 제 플래티넘 카드의 대출이자를 연 12%에서 24%로 올렸어요. 아무런 통보도 없이. 저는 그동안 제가 연체 한 번 하지 않은 우량 고객(good customer)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자를 올려도 되는 건가요.”중동부 노스캐롤라이나 주 더램에서 제과점을 경영하는 크리스토퍼 모스 씨도 비슷한 사연을 올렸다. 그는 얼마 전 카드사로부터 온 우편을 보고 짜증이 났다고 한다. 그동안 무료로 받아보던 카드 명세서를 앞으로는 업무 추진비(processing fee) 1달러씩을 내야 보내 주겠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미국이 새해 벽두부터 카드 문제로 들끓고 있다. 신용카드(직불카드 포함)를 발급하는 은행과 카드사들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이자를 올리고 새로운 수수료를 부과하는 행태를 참을 수 없다는 내용이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다. = 이런 상황은 지난해 5월 말 신용카드 개혁법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일명 ‘Credit CARD법(the Credit Card Accountability, Responsibility and Disclosure Act)’으로 불리는 이 법은 카드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카드사들은 2007년 말 경제 위기 발발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자 이를 회원 수수료율 인상과 카드 이용 한도 축소, 이자율 인상 등으로 보전하려고 했다. 이에 대해 오바마 정부는 “1000억 달러 이상의 국민 혈세로 살아남은 대형 은행들과 카드 전업사들이 다시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려고 한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이 법안은 신용카드사들이 카드 발급 후 6개월 동안 이자와 수수료를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카드 이자 규제가 부활한 것은 1978년 이후 32년 만이다.법안은 또 카드사가 이자율 등 중요 내용을 변경할 경우 최소 45일 전에 고객에게 통보할 것과, 매달 최소 21일의 상환 기한을 갖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법안은 기존 회원에 대해서는 60일 이상 연체하지 않았을 경우엔 카드사가 임의로 대출이자를 인상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상환 기한이 공휴일이나 일요일이 포함됐을 때는 직후 영업일 오후 5시까지만 갚으면 연체로 간주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도 포함됐다.그동안 문제가 됐던 과도한 직불카드 한도 초과 인출 수수료(overdraft fee) 문제와 관련해서는 신용카드사들이 직불카드를 발급할 때 반드시 회원들로부터 “초과 인출 서비스를 받겠느냐”는 동의를 받도록 의무화했다.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곧바로 시행되지 않았다. 법안의 일부는 지난해 8월 시행됐지만 대부분의 중요한 법안은 오는 2월 22일에야 시행에 들어간다. 은행들은 이 틈을 십분 활용했다. 매출 감소를 미리 보전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법 시행 전에 먼저 시작했다. = 은행들은 특히 직불카드 한도 초과 인출 수수료 수입이 크게 주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오는 2월 새 법이 발효되면 카드 발급 시 초과 인출 서비스를 받지 않겠다고 할 경우 초과 인출 가능성이 없어지고, 이는 곧 은행으로서는 수입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은행들은 지난 한 해에만 이런 수입으로 38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10년 전보다 두 배가 넘는 돈이고, 은행 수입 중 가장 규모가 큰 단일 항목이다.은행들이 가장 먼저 손댄 것이 수수료와 대출이자율이다. 카드 대출이자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최소 20%씩 오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수수료의 경우 그동안 무료로 제공됐던 계좌 조회 서비스나 휴면계좌 관리 등이 유료로 전환됐거나 전환이 검토되고 있다.신용카드 대출은 ‘고정금리(fixed interest rate)’에서 ‘변동금리(variable interest rate)’로 재빠르게 바꿨다. 카드 변동금리는 프라임레이트(prime rate: 최우대 단기 대출금리)를 따라 움직인다. 이 프라임레이트는 최근 3.25%선으로 사상 최저 수준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자율은 오를 일만 남았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 이런 은행들의 발 빠른(?) 대처로 카드 사용자들의 고통이 가중됐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개혁법은 시행되지도 않았는데 미리 선수를 친 카드사들이 각종 카드 수수료와 이자 부담을 미리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이 때문에 일부 언론은 “정부의 섣부른 시장 개입으로는 이런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자 및 수수료 통제 등의 졸속 조치를 비판하기도 한다.아무튼 새로운 신용카드 개혁법이 시행되면 소비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지만 불편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수익 구조에 큰 변화를 겪게 되는 은행이나 카드 발급자들이 보다 보수적인 경영에 나설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카드 이자 인상 추세와 관련, 높은 이자율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적극적으로 신용카드 회사와 싸우는 게 좋다는 권고다. 이들은 미국에서 카드사와 싸우는 고객은 전체의 5% 미만에 불과하며, 이 때문에 은행이나 카드 전업사들은 따지는 고객들과는 어느 정도 타협할 의향이 있다고 뀌띔한다.이자율 협상 외에 일반인들이 취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다른 카드사들의 조건을 제시하며 기존 카드사의 경쟁심을 유발하는 것이다. 즉, 뱅크레이트닷컴(bankrate. com), 카드레이팅닷컴(cardratings.com) 등 인터넷 사이트들에 올라와 있는 조건들을 기반으로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권고다.전문가들은 이번 카드 개혁법으로 신용카드 부채를 다른 카드사로 옮기는 계정이전(balance transfer)은 한층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에서는 신용카드 신청 시 다른 회사 카드 빚을 가지고 오면 적어도 6개월, 길게는 1년 반까지 그 옮겨온 빚에 대한 이자를 면제해 주는 제도(balance transfer)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서비스 자체가 사라지거나 수수료가 크게 오르게 된다는 설명이다.은행이나 카드 전업사들의 경우는 큰 타격이 예상된다. 블룸버그통신은 특히 연체 이자 수입과 지불카드 한도 초과 인출 수수료 수입 비중이 큰 뱅크오브아메리카·JP모건채이스은행 등이 대표적으로 악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미국의 카드 전업사인 디스커버파이낸설서비스의 경우는 지난해 11월 끝난 3분기 실적이 전 분기 대비 0.5%포인트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 관계자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큰 영향은 신용카드 개혁법이었다”며 “다른 업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신용카드 개혁법은 유통 업계에도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은행들이 카드를 예전처럼 쉽게 발급해 주지 않거나 결제 한도를 까다롭게 따지면서 소비자들의 카드 지출이 줄 것이기 때문이다.채플힐(미 노스캐롤라이나 주)= 박수진 한국경제 기자 notwom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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