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3년차 증후군에 쐐기박는 대통령

청와대 통신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3년차를 맞는 새해 초 유난히 자신감에 차 있다. 신년 일정에서부터 이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새해 첫날인 1월 1일에 국무회의를 비상 소집했고 새해 업무 첫날인 4일에 신년 연설을 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1월 1일 국무회의는 전례가 없다. 신년 연설도 역대 정권은 대부분 1월 중순쯤에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는 게 이 대통령의 판단이다. 새해 부처 업무 보고를 지난해 연말로 당긴 것과 같은 맥락이다.신년 연설을 보면 지난해와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지난해 신년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위기’를 무려 29차례나 언급했다. 글로벌 경제·금융 위기의 파고가 몰아칠 때였다. 긴박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비상’이라는 말도 수차례 등장했다.반면 올해 연설에선 이런 비장한 상황을 느낄 수 없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14차례, 변화 13차례를 각각 말했고 자신감, 글로벌, 국운 융성, 꿈, 선진, 국격 등의 용어도 골고루 사용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경제 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자신감이 그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이 대통령은 실제 연설에서 “2009년 우리가 얻은 것은 자신감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원전 수출 협상이 체결되던 날 부르튼 입술 사이로 ‘대한민국 국운이 열리고 있구나’라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위대한 변화를 우리는 반드시 이뤄낼 것, 자신감이 더욱 충만해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 등의 발언들을 쏟아냈다.‘집권 3년차 증후군’이 없을 것이라는 점도 연초부터 부쩍 강조하고 있다. ‘집권 3년차 증후군’이란 정권을 잡은 지 3년차에 접어들면 내부의 도덕적 해이와 부패로 인해 레임덕에 빠지는 현상을 뜻한다. 권력의 맛을 알게 되면서 핵심부에서 경계심이 흐트러지고 기강 해이, 인사 잡음이 일어난 게 역대 정권의 예다. 이 대통령이 지난 연말부터 기강 다잡기 발언을 한 것은 이 같은 정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최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청와대 직원은 다른 공직자에게 모범이 돼야 하고 그래서 공직 기강을 바로잡으라고 특별 지시까지 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집권 3년차 “레임덕은 없다”는 점을 집중 강조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장 시절을 자주 언급했다.서울시장 퇴임일인 2006년 6월 30일 직원들이 오전에 퇴임식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지만 이 대통령은 이를 취소하고 오후 퇴근 시간까지 업무를 본 후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청사를 걸어 나왔다는 얘기다.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들과 1월 5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집권 3년차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레임덕이다’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취임 첫날과 마찬가지의 각오로 임기 마지막 날까지 임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이 대통령은 “일하려고 마음먹고 왔고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거듭 밝혔다. 또 “국가의 기초를 바로잡고 나가겠다. 대단한 일을 성취하기보다 사회 각 분야의 기초를 닦아 놓고 선진화해 놓으면 다음 정권이 와서 일할 때 그래도 조금 일하기 쉽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임기 마지막 날까지 국정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올해에도 국정 운영의 속도전이 예상되는 대목이다.이 대통령의 이 같은 자신감은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유치에 이어 지난 연말 UAE 원전 수주가 그 원동력이다.특히 원전 수주 과정에서 이 대통령 스스로 주역이 됐다는데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 대통령이 프랑스로 다 넘어갔던 UAE 원전 수주를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자와 여섯 차례 전화 담판을 통해 우리 쪽으로 가져오게 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기업 최고경영자(CEO) 시절 갈고닦았던 중동 국가들과의 ‘협상의 기술’이 통했다는 게 참모들의 견해다. 그렇지만 집권 3년차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연초부터 세종시 문제가 큰 걸림돌이다. 정부 대안 발표 후 야당은 두 번째 치더라도 이에 반대해 온 박근혜 전 대표의 마음을 어떻게 돌려놓느냐가 발등의 불이다. 6월 지방선거 결과도 국정 운영에 탄력을 받을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분수령이다. 이 대통령의 ‘협상의 기술’이 국내 정치에도 통할지가 초미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홍영식 한국경제 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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