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보직에 ‘외부 인사’…구조조정 ‘채찍’

주목받는 GM의 개혁 실험

“새 술은 새 부대에.”미국 자동차 업체인 GM(General Motors)의 연말 인사(人事)가 미 정가와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대표적 공룡 기업인 이 회사가 최근 외부 인사의 고위직 영입과 깜짝 내부 발탁 인사를 통해 경영진을 갈아엎는 실험을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적자금 지원 후 공기업이 된 GM(별칭 Government Motors)이 이 같은 인사 실험을 통해 완전히 자립 가능한 회사로 거듭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이 회사가 최근 단행한 인사 중 가장 파격적인 것은 핵심 중 핵심으로 꼽히는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에 동종 업계도 아닌 정보기술(IT) 업계의 인사를 영입한 케이스다.GM의 이사회 의장 겸 임시 최고경영자(CEO)인 에드워드 휘태커는 2009년 12월 21일 “마이크로소프트(MS)의 CFO인 크리스 리델이 2010년부터 GM의 글로벌 재정과 회계 부문을 지휘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GM에서 CFO 자리(이사회 부의장 겸임)는 언제든지 사장(CEO)으로 승진할 수 있는 이른바 ‘꽃 보직’으로 통한다. 이 자리는 그동안 전통적으로 GM 내부 인사들이 독차지해 왔다. 지난해 12월 초 사장 자리에서 경질된 프리츠 핸더슨이나 그의 전임인 릭 웨고너도 모두 이 자리를 거쳐 사장에 올랐다. 더구나 현재 사장직을 겸임하고 있는 휘태커는 처음부터 새 사장을 뽑을 때까지만 자리를 맡기로 공언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새 CFO는 사장으로의 승진 인사 가능성이 있는 상태다.GM이 이런 ‘꽃 보직’에 예상을 뒤엎고 동종 업계도 아닌 IT 업계에서 인사를 스카우트했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재계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이런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 크리스 리델이란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리델은 지난 2005년 5월 세계 최대 목재 회사인 뉴질랜드의 인터내셔널페이퍼사에서 CFO로 일하다 MS로 전격 스카우트됐던 인물. 당시에도 세계 최대 IT 업체에 동종 업계 사람이 아닌 비경험자가 영입됐다고 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었다.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MS로 자리를 옮긴 후 4년 반 동안 적지 않은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MS 창립 후 34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MS는 경기 침체로 2009년 1분기 창립 이후 처음으로 매출 감소를 겪었다.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자 MS는 2009년 1월 전격적으로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1년 반 동안 약 5000명을 줄이겠다고 밝힌 것. MS 전체 직원 9만6000명의 5%가 넘는 대규모 구조조정이다. 리델이 총지휘한 이 구조조정 계획은 감원 외에 임금 동결, 해외 출장 경비 삭감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리델은 실패를 모르는 MS 조직 내에서 이런 파격적인 조치를 성공리에 단행했고, 이런 조치를 통해 연간 30억 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를 MS에 안겨줬다.MS는 2009년 11월 ‘손에 적지 않은 피를 묻힌’ 리델의 사임 계획을 발표했다. 발머는 당시 “리델이 CFO 자리를 뛰어넘는 기회를 갖기 위해 여러 경로로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리델이 MS에서의 경험을 발판으로 동종 업계 CEO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예상했지만 뜻하지 않게 미국 최대의 골칫거리이자 ‘쓰러져 가는 공룡’ GM에서 같은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비(非) 자동차 전문가가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인 GM의 CFO를 맡게 된 것은 의외였지만 그 자리에 외부 인사가 영입될 것이라는 것 자체는 진작부터 예상됐었다. 2009년 12월 1일자로 CEO가 된 휘태커가 GM의 관료주의적 조직 문화를 뒤흔드는 인사 실험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휘태커는 2009년 7월 GM이 공적자금을 받고 ‘뉴 GM’으로 새 출발할 때 외부 인사 영입 케이스로 이사회에 합류한 인물이다. 휘태커는 1963년 처음 설비 엔지니어로 사우스웨스턴 벨에 입사한 뒤 동종 업계에서 43년간 종사했으며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텍사스의 SBC커뮤니케이션스가 AT&T를 인수한 뒤 AT&T의 사명을 계승, 업계 최강자로 급부상하는데 주된 역할을 했다. 이 밖에 다수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켜 변화에서 생존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그는 이사회 의장으로 합류한 후 전임 핸더슨 사장과 GM 구조조정 문제를 둘러싸고 사사건건 부딪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2009년 11월 말 핸더슨을 전격 경질하고 그 자신이 임시 사장 자리에 오른 것.그는 핸더슨 사장의 경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질문도 받지 않고 이유에 대해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핸더슨의 경질 배경이 두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고 보도했다.첫째가 구조조정 문제다. 2009년 3월 릭 웨고너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은 핸더슨은 ‘시보레’, ‘캐딜락’, ‘뷰익’, ‘GMC’ 등 4개 브랜드만 남기고 ‘오펠’, ‘새턴’, ‘사브’, ‘허머’ 등의 나머지 브랜드들은 매각하거나 청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진척이 없었다. ‘새턴’ 매각 협상은 펜스키 자동차 그룹과 협상이 무산돼 결국 지난해 9월 공장 문을 닫았다. ‘사브’ 브랜드 역시 매각 협상이 사실상 결렬된 것으로 보인다.특히 핸더슨은 오펠의 처리 문제를 놓고 휘태커와 정면충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핸더슨은 GM의 유럽 법인인 오펠을 캐나다의 자동차 부품 업체인 마그나에 매각하려고 했지만 휘태커는 이에 반대했다. 휘태커는 오펠을 팔 경우 GM의 중소형차 개발 능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단기적인 재무 성과를 위해 성장 동력을 손상시키는 구조조정안을 인정할 수 없다고 안을 부결시켰다.두 번째는 25년간 GM에서 잔뼈가 굵은 핸더슨으로는 GM의 고질적인 관료주의적 조직 문화를 바꾸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GM은 미 정부가 지분의 60%를 가진 뉴GM으로 출범한 후에도 제대로 된 인사 개혁을 하지 않았다.= 그는 GM 북미사업부 사장에 엔지니어 출신의 마크 루스(46)를 전격 기용했다. 또 루스보다 한 살 많은 수전 도허티에게 북미지역 마케팅과 서비스·커뮤니케이션 부문을 맡겼다. 이어 캐딜락 총괄에 디자이너인 브라이언 네즈빗을 발탁했고 뷰익과 GMC 총괄에는 20년 경력의 브라이언 스위니를 기용했다. GM대우 신임 사장엔 GM유럽에서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을 담당한 현장 출신의 마이크 아카몬을 임명했다.대신 그는 골수 GM맨들은 차례로 내보냈다. ‘차기 사장’으로 여겨졌던 레이 영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중국 GM 해외사업부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했다. 사실상 경질 조치다. 또 전임 핸더슨이 임명했던 시보레 사장(브렌트 드와이)도 2010년 4월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의 후임으로는 45세의 제임스 캠벨이 내정돼 있는 상태다.GM의 최대주주인 미 연방정부는 이 같은 휘태커식 인사 개혁에 만족해하는 반응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자동차 부문 수석고문(top auto advisor)인 론 불룸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GM은 미 정부 관계자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으며 2010년 하반기쯤 증시로 돌아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GM이 2010년 6월까지는 미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67억 달러의 지원금을 모두 갚고, 7월께는 주식 공개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업계의 예상을 어느 정도 확인해 주는 발언이다. 이 같은 발언의 배경에는 휘태커가 주도하는 인사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미국인들은 GM호가 자동차 업계를 선도할 잠재력을 가진 새로운 GM(Great Motors)으로 변신하게 될 수 있을지 기대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더램(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박수진 한국경제 기자 notwom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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