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달라 ‘비명’…오바마 정부 ‘신음’

풀리지 않는 골칫거리 ‘고용’

“공짜로 일해 주겠다고 해도 관심을 보이는 데가 없어요.”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시에 사는 토니 바(46) 씨는 요즘 속이 말이 아니다. 한마디로 잿더미다. 지난해 말 크라이슬러사에서 나오면서 동료 2명과 함께 컨설팅 회사를 차렸는데, 1년이 다 돼 가도록 돈을 받은 일감이라고는 단 한 건 뿐이었다.꽤 두둑히 명예퇴직 수당을 받은 덕에 아직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지만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일없이 사무실 나가는 게 힘들어 요즘에는 닥치는 대로 일을 자청한다. 최근 겨우 찾은 것이 시간당 30달러짜리 파트타임 일이다.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1주일에 5일, 하루에 한 시간씩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친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아내와 번갈아 하던 세 아이 등·하교 픽업이나 영화관 데려가기 등을 모두 맡았다.명문 대학을 나와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봉 10만9000달러(약 1억3000만 원)를 받았던 이 엔지니어는 이제 이런저런 허드렛일에 지쳐서 공짜로라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아다니고 있다.그에 비해 데이비드 턴킨슨 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2008년만 하더라도 크라이슬러에서 제품 개발 담당 관리자로 연봉 11만 달러(약 1억3200만 원)를 받았던 그는 근 열 달간을 놀다가 이번 여름에야 풀타임 일거리를 재수 좋게(?) 잡았다.미시간 주 로체스터힐 시에 있는 스토니크룩 고등학교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바닥 청소를 하는 것이 그의 새로운 일이다. 주 5일 근무에 시간당 15.05달러, 연봉 3만1000달러를 받는다.“전 직장과 비교할 처지인가요. 그저 안정적인 직장을 얻었다는 것에 행복할 따름입니다.”미국이 일자리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9월 초 발표된 지난 8월 실업률이 9.7%다. 지역별로 편차는 있지만 미국의 고용 상황은 26년 만에 최악이다.이 가운데 미시간 주의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이 지역에서 지난 1년 동안 사라진 일자리 수는 무려 9만2555개. 이 때문에 지난 8월 실업률은 15.2%로 치솟았다. 전년 동기 실업률은 8.6%였다. 가히 폭발적인 증가세나 다름없다.네바다(13.2%)와 로드아일랜드(12.8%), 캘리포니아(12.2%), 오리건(12.5%) 등이 12∼13%의 실업률로 미시간을 뒤쫓고 있지만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미시간 안의 디트로이트 시는 실업률이 17.7%에 달한다. 일할 수 있는 경제인구 6명당 1명은 실업자란 얘기다.이 같은 미시간의 실제 고용 상황은 수치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전언이다. 실업률은 일할 수 있는 사람 중 그나마 그럴듯한 일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비율을 의미한다.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 직장을 알아보면서 잠깐 파트타임으로 일하거나, 아예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사람들은 실업률 통계에서 빠진다. 언론들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이런 범주 안에 들어가는 사람까지 합할 경우 미시간 주의 실업률은 25%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캘리포니아의 경우는 공식적인 실업률 수치가 12.2%이지만 실제 실업률은 40%에 달할 것이라는 비공식 수치가 보도되고 있다).미시간이 이처럼 실업률이 높은 것은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자동차 업체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제너럴모터스(GM)의 본사는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시 중심가에 있다. 크라이슬러 본사는 GM 본사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다. 또 서쪽으로 30분 거리에 포드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이들 빅3는 미국 내 근로자의 3%를 고용하고 있는 거대 사업장이다. 이들이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지난 1년간 미국 전체에서 사라진 일자리의 20%가 이들 회사에서 발생했다.자동차 제조업이 타격을 입으면서 미시간에서는 처음으로 도·소매업 종사자가 제조업 종사자 수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미 언론들은 이 같은 현상을 고용 통계가 집계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보도했다.고용 불안은 사회적으로도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대량 해고에 따른 소득세 세입 감소, 주택 가격 하락에 따른 재산세 세입 감소 등으로 미시간 남동부 지자체들은 이미 채무 불이행 상황에 직면해 있다. 주 정부 역시 이들을 구제할 능력이 없고 워싱턴도 손을 든 상태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이런 지역에서는 경찰이나 소방 업무까지 타격을 입고 있으며 이사할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생활비가 적게 드는 시 외곽으로 빠져 나가면서 도심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문제는 이런 상황이 단시간에 끝나기 힘들다는 데 있다. 경제지표들은 호전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고용 상황은 앞으로 2010∼2011년까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월 20일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경기 침체 때문에 발생한 실업 사태가 반전되려면 경기 회복의 초기가 아닌 말기에 가서야 가능하다” 며 “향후 수개월 동안 실업률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또 “올해 말에는 경기 회복과 함께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믿고 있다”면서도 “이는 인구 증가율이나 올해 초 발생한 대규모 고용 손실에 비하면 미흡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자연적인 인구 증가율에 보조를 맞추려면 매달 15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앞으로 경기 회복이 가시화되더라도 당분간은 월평균 5만 개의 일자리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올해 초 매월 평균 7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을 감안했을 때 기존에 발생한 실업자들에게까지 돌아갈 일자리가 다시 만들어지기엔 당분간 일자리 수준이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는 설명이다.오바마는 9월 22일 CBS 방송 레터맨쇼에도 참석해 “(경제가) 하루아침에 회복되지는 않는다”며 “실업률이 적어도 향후 1년 동안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오바마는 지난 1월 미 국회에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stimulus package)을 제출하면서 내년 말까지 35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거나 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비판적 경제 전문가들은 이 같은 약속이 너무 장밋빛이고, 어떤 일자리가 경기 부양책의 도움으로 보전됐다고 했을 때 이를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있다.한마디로 이번 경기 부양책은 고용 효과도 작을 뿐만 아니라 그 효과를 측정하기도 힘든데 쓸데없는 돈만 쓴다는 것이다.오바마 행정부는 경기 부양책을 국회에 제출할 당시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 그동안 11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보전하는 효과를 냈으며 앞으로 일자리 창출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최근 일자리 감소세가 둔화되고 있고, 각종 경기선행지수나 도·소매판매지수 등 일부 경제지표들이 뚜렷하게 호전되는 기미를 보이는 것도 이 같은 낙관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그러나 오바마가 인정했듯이 앞으로 그에게 경제 분야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그럴듯한(decent)’ 일자리를 만들어 미국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만약 이 같은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건강보험 개혁’까지 무위로 돌아갈 경우 오바마는 정치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것이 미국 정·재계와 언론의 대체적인 관측이다.지난 1992년 클린턴은 대선 캠페인 문구로 ‘It’s the economy, Stupid!(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를 내걸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짧은 문구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급소’나 다름없었던 과다한 전쟁비용 문제와 공급주의 경제학의 실패로 야기된 불황 문제를 건드려 부시를 재기 불능으로 만들었다.오바마 반대 진영에서 최근 ‘It’s the job, Stupid!(바보야, 일자리가 먼저야)’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일자리 창출 문제가 재선을 준비하는 오바마에게 얼마나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이슈가 될 수 있는지를 말해 준다.박수진·한국경제 기자 notwom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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