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0선 ‘대세’…‘환율’ 주목해야

4분기 주식시장 움직일 ‘다섯 가지’ 변수

코스피(KOSPI)지수가 1700을 놓고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줄기차게 한국 주식을 사들이던 외국인들은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기관은 꾸준히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 이와 반대로 개인들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며 ‘매수’를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내 주식시장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일까. 주식시장 전문가들은 이 방향성을 좌우할 ‘펀드 런’, ‘FTSE’, ‘환율’, ‘출구전략’, ‘주도주’ 등 다섯 가지의 변수들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가 9월 2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월 22일 기준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9월 들어 순유출된 자금은 2조445억 원에 달한다. 월간 순유출 자금이 2조 원을 넘긴 것은 2007년 4월 2조8865억 원 이후 2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9월 들어 하루 평균 유출액이 1000억 원에 육박함에 따라 2007년 4월의 기록 경신까지 점쳐지는 상황이다.주식형 펀드의 자금 유출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나UBS자산운용 안드레아스 노이버 사장은 지난 9월 22일 기자간담회서 “향후 3~6개월간 펀드 런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진단했다.이처럼 환매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주가지수가 오르면서 원금 회복 단계에 접어든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환매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 자산관리 전문가는 “1600~1700 사이에 들어온 자금 5조7000억 원 중 9월 21일까지 3조4000억 원이 빠져나갔다”며 “2007년 7~8월에 1700~1800대에서 10조 원이 들어왔는데 최근 투자 원금을 회복하면서 이 자금들이 빠르게 유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코스피지수가 올해 목표 지수대에 도달하면서 차익 실현 욕구가 강해진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증권사 대부분의 올해 목표지수는 1750선 정도 수준이다. 이 때문에 올 초 펀드에 들어와 수익을 많이 낸 투자자들 사이에 환매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초 FTSE(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 준선진국지수에 편입돼 있던 국내 107개 기업이 선진국지수로 자리를 옮겼다.이 때문에 선진국지수 진입 이후 한국의 선진국지수 내 비중은 2.11%로 종전 준선진국지수 내 비중인 25.73%보다 크게 낮아진다. 하지만 두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 규모의 차이가 워낙 커 실제로 투자된 자금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실제로 FTSE지수를 따르는 전체 글로벌 펀드 규모는 3조 달러에 이른다. 이 중 선진지수를 추종하는 자금이 90~95%에 달한다. 이 결과 이머징 시장에서 떠날 때 이탈하는 자금과 선진시장 입성에 따른 유입 자금을 비교해 보면 한국 증시의 추가 자금 유입은 215억 달러(약 25조7000억 원)를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FTSE지수의 경우 주로 장기 투자를 하는 유럽계 펀드들이 벤치마크하는 지수이므로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 지수에 편입된 대형주 종목의 외국인 매수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집계에 따르면 9월 18일까지 순유입된 외국계 자금은 4조3213억 원이다. 이 중 70%에 해당하는 2조9899억 원이 영국계 자금이다. 올 7월까지 영국계 자금이 전체의 14% 정도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것이다.= 9월 24일 현재 기준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까 깨진 1195.7원을 기록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 하락은 단기적으로 외국인에게 환차익의 기회를 주므로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이와 관련, 최근 ‘달러 캐리 트레이드’란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캐리 트레이드란 저금리 통화를 차입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통화 자산에 투자해 차익을 내는 것으로 그간은 엔화가 가장 선호돼 왔다. 하지만 미국의 저금리, 풍부한 유동성, 달러화 약세로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산업은행은 이 달러 캐리 트레드 자금이 한국이 밀려들어오면서 올 4분기 원·달러 환율이 1170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문제는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의 특성상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 기업의 평가이익이 줄어들고 가격 경쟁력이 약해진다. 이 같은 기업 실적 악화는 곧 주가 하락을 의미한다.증권사들은 일단 엔화의 절상 속도까지 고려하면 1100원 중반까지는 환율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과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133원까지는 외국인 순매수가 지속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투자증권은 1180원대, KB투자증권은 1130원대, 유진투자증권은 1150원~1100원을 하반기 예상 환율로 내놓고 있다.박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수출 관련 기업들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원화의 절상 속도보다 엔화의 절상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상대적인 엔화 강세는 원화 강세에 따라 수출이 입을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 오히려 수출 증대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그러나 주가가 단기 급등한 만큼 기대 수익률이 낮아지면 달러 캐리 트레이드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도 악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종우 HMC 리서치센터장은 “아무리 투자할 돈이 있어도 기대 수익률이 낮아지면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출구전략’ 논의는 분명 증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23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모기지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내년 1분기까지 연장하되 매입 규모를 줄이는 한편 10월 말이 기한인 국채 매입 프로그램을 예정대로 종료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미국은 물론 국내 증시가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즉, 출구전략의 가능성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임정석 NH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작년 4분기 이후 급증한 유동성이 올해 4분기 이후에는 동일한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어 “출구전략에 대한 신중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점진적인 유동성 흡수가 필요한 시기”라며 “그 가능성이 제기되는 과정에서 자산시장에 직간접적인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1180선에서 시작한 코스피지수는 9개월 만에 1700대에 다다랐다. 코스피지수가 이처럼 숨 가쁘게 달려올 수 있었던 이유를 아주 간단히 정리하면 ‘외국인들’이 ‘IT와 자동차주’를 ‘무지막지하게’ 사들였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앞으로의 증시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당분간 외국인들도 ‘무지막지하게’ 사들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1700선을 넘나들며 단기적으로 오를 만큼 올랐다는 인식이 커진 가운데 급격하게 하락하는 원·달러 환율이 차익 실현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스피지수가 1.03% 하락하며 1700선이 무너진 9월 24일 외국인들은 시장에 1000억 원어치의 주식을 내다 팔았다.반면 외국인들이 시장에서 급격히 빠져 나갈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국내 증시의 매력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기업 실적 조사 기관인 톰슨 IBES에 따르면 한국의 12개월 예상 주가수익률(PER)은 11.6배로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선진시장 평균인 14.8배보다 22.0% 낮다. 또 신흥 시장과 비교해도 밸류에이션이 낮다. 신흥 시장의 평균은 13.1배로, 한국은 신흥 시장 대비 11.6% 낮다.여기까지는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증시를 견인할 종목에 대해선 의견이 살짝 갈린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환율의 변수로만 보자면 그간의 주도주에게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환율이 고점 대비 25% 떨어졌기 때문에 고환율로 인한 수익도 그만큼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간 소외됐던 내수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곽중보 하나대투증권 연구원도 “환율은 추가적인 하락 가능성이 높다”며 “전기가스, 음식료 등 환율 하락에 우호적인 업종들이 수출주들의 휴지기에 순환매 대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밝혔다.하지만 당분간은 그동안 주도주의 흐름이 계속될 것이라는 게 대세다. 조윤남 대신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주도주 추세는 변함없이 간다”며 “내년 4월까지 국내 증시를 이끌어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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