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투자·인력 ‘3박자’…연 50억 매출

성공한 여성 농업인 김금희 머쉬하트 대표

“그저 가장 잘하는 게 버섯 재배였기 때문이죠.”김금희(38) 머쉬하트 대표는 국내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성공한 여성 농업인이다. 채 마흔 살도 안 되는 젊은 나이의 김 대표가 이끄는 머쉬하트는 연간 2000톤을 생산하는 최첨단 새송이버섯 생산 농장을 갖추고 있는 농업 기업이다. 국내 시장은 물론 미국 중국 싱가포르 등지에 수출하고 있는 머쉬하트의 올해 매출 목표는 50억 원. 2008년 매출액인 36억 원에 비해 40%가량이나 늘어난 수치다.“1990년에 연암축산원예전문대학(현 천안연암대학) 원예과에 들어갔어요. 아버지가 멀리 외지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집 가까이에 있는 학교에 들어간 거죠.”김 대표가 버섯 재배 기업을 세우게 된 건 단순히 ‘버섯’이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사실 어린 시절 자신이 농업에 뛰어들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다른 보통의 고등학생들처럼 인문계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목표였다.지금의 그를 만든 단초는 천안연암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됐다. 천안연암대학은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세운 학교다. 농업에 특히 관심이 많은 구 명예회장은 국내에서 거의 최초로 일본의 앞선 버섯 재배 기술을 들여와 연암대학에서 보다 깊은 연구를 진행하도록 했다고 한다.“저도 원예과에서 특용작물인 버섯을 공부하게 됐는데 아주 흥미롭더군요. 이후 학교 실험실에서 7년간 연구원으로 오직 버섯 키우는 일만 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은 버섯 키우는 일밖에 없어요.”김 대표가 연구실에서 보낸 7년은 그가 버섯을 재배하는 농업 최고경영자(CEO)로서 ‘원천 기술’을 체득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농사를 지으면서 해야 할 실패를 여기서 모두 경험했고 남들과 차별화된 영농 방법도 연구했다.“처음 버섯을 가지고 농사를 지으면서도 ‘사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연구의 연장이라고 생각했어요.”김 대표는 1998년 버섯 재배를 시작했다. 처음은 그동안 모은 돈과 대출금 약간을 가지고 학교 시설을 활용해 몇 바구니부터 시작했다. 생산지도 330㎡(100여 평)에 불과했다.“서른을 갓 넘긴 젊은 사람이 농사를 짓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었어요. 농촌에는 워낙 젊은 사람이 없거든요.”이후 그가 재배한 버섯들이 ‘질 좋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2001년 정식으로 사업등록증을 내고 ‘농업 기업’을 차렸다. 그게 바로 지금의 머쉬하트다.김 대표는 스스로 ‘운’도 많이 따랐다고 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건강에 대한 욕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건강식품인 버섯이 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버섯 재배 농가가 거의 없어 단가가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특히 새송이버섯은 재배 초기여서 별다른 경쟁 없이도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하지만 단지 운만으로 모든 이들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머쉬하트의 성공 원인은 학교 구석 실험실에서 시작해 오랜 기간 쌓아 온 김 대표의 버섯 재배 노하우, 그리고 김 대표의 끊임없는 재투자를 통해 이룩한 세계 최고 바이오 클린룸 생산 시설에 있다. 여기에 버섯 재배의 가능성을 믿고 따라준 직원들의 노력까지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머쉬하트의 생육실은 밖에서 보면 마치 반도체 공장이나 병원처럼 보인다. 실제로 대형 비닐하우스를 생각하고 김 대표를 찾아갔다가 한참을 헤매기도 했다. 첨단 기기를 생산하는 공장처럼 생긴 생육실 지붕에 크게 써 있는 머쉬하트라는 네 글자를 찾지 못했다면 헤매는 시간은 더 길어졌을 수도 있다. 또 생육실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도체 공장에서와 같이 위생복을 입어야 한다. 포장 과정이 이뤄지는 곳에서는 혹시 모를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말하는 것도 삼가야 할 정도다.김 대표의 버섯 재배법은 독특하다. 10여 년 동안 대학에서 배워 온 ‘액체종균배양’ 기술이 바로 반도체 공장 수준의 클린룸에서 구현된다. 톱밥·밀기울·대두피·비지·효모·옥수수 등을 섞어 배양액을 만든 뒤 고온 고압 살균 처리한다. 이곳에 버섯 종균을 심어 유리병에서 키워내는 것이다. 김 대표의 이 기술은 버섯 재배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배우러 온다고 한다.또 저온 재배법을 사용하고 있다. 보통 버섯은 섭씨 영상 16~18도에서 재배한다. 김 대표는 이것을 1~2도 낮췄다. 이렇게 온도가 낮아지면 성장 속도가 느려진다. 제품을 빨리 시장에 내다 팔아 빨리 수익을 내는 게 생산자로서는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김 대표가 느리게 자라게 만드는 이유는 조직이 단단해져 씹는 맛이 더 좋아지고 보관 기간을 늘릴 수 있어 유통 기간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또 유리병 하나에서 싹트는 여러 버섯들 중 단 두 개만을 남기고 모두 꺾어버린다. 김 대표는 이를 “일종의 가지치기”라며 “최근에는 이런 꺾어버린 버섯들도 스테이크의 부재료 등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됐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눈물을 머금고’ 모두 버렸다”고 설명했다. 좀 더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그래서 머쉬하트의 버섯은 다른 버섯보다 더 식감이 좋고 크기도 큼직하다. ‘명품’ 대접을 받는 이유다.“새송이버섯이 최근 유럽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아지고 있어요. 그들이 많이 먹는 양송이보다 식감이 훨씬 좋고 칼로 써는 음식 문화에 맞기 때문이죠. 특히 새송이는 와인과도 절묘한 궁합을 자랑해요.”2000년대 들어 새송이가 인기를 끌자 이를 생산하는 농가도 크게 늘어났다. 당연히 과잉생산돼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김 대표는 그 돌파구를 수출에서 찾았다. 때마침 양송이가 대부분이던 유럽 및 미국 시장에서 새송이가 조용히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김 대표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새송이버섯 기업들과 함께 공동 브랜드 법인인 ‘머쉬엠’을 설립해 공동 수출에 나서고 있다. 뉴질랜드의 유명한 공동 키위 브랜드 ‘제스프리’처럼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다.“우리 농업의 체질을 바꿔야 합니다. 농촌에 젊은이들이 없다고요? 농촌에 새로운 길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누가 권하지 않아도 젊고 똑똑한 인재들이 농촌으로 모여들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농민들이 명품을 만들어 더욱 큰 성공을 거둬야 합니다. 저도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해 농촌 기업인으로서 훌륭한 성공 사례가 됐으면 합니다.”김 대표는 더 큰 성공을 위해 더 열심히 뛸 각오다. 기업인이야 당연히 자신의 성공을 통해 부를 쌓는 게 목적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성공적인 농촌 기업인의 모델이 돼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대표는 앞으로 두세 가지 계획을 더 가지고 있다. 하나는 종균에서 포장·유통까지 수직적 생산 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마케팅을 더욱 강화는 것이다. 김 대표는 “과거에는 생산이 제일 중요했다”며 “하지만 이제는 마케팅이 더 강조되는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농사도 경영”이라며 “농민들이 좋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 여러 경영 활동을 통해 제품의 부가가치를 올리는 기업인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약력: 1971년 충남 천안 출생. 92년 천안연암대 졸업. 92년 연암대 버섯실험실 근무. 2004년 한경대 학사·석사. 호서대 식품영약학 박사과정. 2001년 머쉬하트 대표이사 사장(현). 2007년 농업회사 법인 ‘머쉬엠’ 대표이사 사장(현).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