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 판매와 금융 선진화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는 산업 전반에 많은 후유증을 불러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금융 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아 투자 손실을 초래한 불완전 판매에 대한 대비책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더욱이 방카슈랑스에 이어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으로 무한 경쟁에 내몰린 금융회사로서는 금융 당국의 제재는 물론 투자자들로부터의 압력에도 대비해야 한다.안정적이지만 수익성이 낮은 기존 소매금융의 틀에서 벗어나 고수익 금융 상품을 더욱 공격적으로 판매해야 하는 마당에 환 헤지 상품인 키코(KIKO) 가입으로 손실을 본 기업들의 소송을 목격한 우리 금융회사들에는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투자자 보호, 제도 준수의 과제가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금융회사 역시 자발적으로 미스터리쇼퍼(암행 감찰)등의 자구책을 펼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고객 만족도 조사 기법으로 출발한 이러한 요법들이 근본적인 대처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와 가까이에 있는 홍콩 금융 당국의 불완전 판매에 대한 대처는 참고할 만하다. 홍콩 당국은 고수익 안정 채권으로 소개돼 선풍적으로 판매됐던 미니본드(MiniBond)가 리먼브러더스의 파생 상품에 노출돼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히자 즉각적으로 투자자 보호에 나섰다. 이와 함께 창구에서의 대면 및 비대면 판매에 대한 오디오 녹음과 소매금융과 투자은행(IB) 부문에서의 정보 공유 금지 등의 조치를 취했다.미니본드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은퇴자, 주부 등 파생 상품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홍콩 정부는 이들에 대해 은행이 일정 정도 이상의 손실을 배상할 것과 창구에서 이뤄지는 판매 과정을 녹음해 데이터로 저장한 뒤 감사에 대비해 놓을 것을 은행들에 권고했다. 오디오 녹음은 법제화가 아닌 권고로 제안됐지만 현재 대부분의 홍콩 금융회사들이 정부의 권고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전통적으로 은행 편에 서왔던 홍콩 금융 당국이 불완전 판매에 대해 일반 투자자의 편에 서서 과감한 조치를 취하고 또 은행이 정부의 권고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은 불완전 판매가 신뢰성을 근간으로 하는 금융 산업에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창구에서의 오디오 녹음을 감사용이 아니라 비용 절감 측면에서 홍콩의 은행들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불완전 판매는 상품을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고 홍콩 금융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불완전 판매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충분히 설명하면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이 지점마다 고비용 전문가들을 두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창구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실시간 녹취한 후 중앙에서 분석하고 투자자의 성향 및 정보를 즉각 담당자의 모니터에 전달해 주면 불완전 판매 논란은 한결 줄어들 수 있다. 이는 또 투자자에 대한 보다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상품 판매가 이뤄지도록 하자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우리도 이를 소비자 분쟁에 대비한 증거 확보 차원을 넘어 녹취·저장된 데이터를 정밀한 고객 모니터링 및 유용한 분석 도구로 이용해야 한다. 단순히 창구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녹취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를 지능적으로 분석하고 추후 인덱스화해 다른 금융 상품을 판매할 때 데이터로 활용하는 지능형 시스템은 앞으로 금융회사들엔 필수적인 장치로 확산될 전망이다.가까운 홍콩의 사례를 참고삼아 불완전 판매 방지에 대한 해법을 다방면으로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즉, 지난 20년간 축적된 정보기술(IT)과 최근 도입되고 있는 기업 통신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금융 선진화 방안을 모색해 볼 때다. 양승하어바이어코리아 사장약력: 1957년생. 82년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2002년 한국IBM 대형시스템사업본부 상무. 2004년 정보통신부 산하 소프트웨어진흥원 오픈소스센터 소장. 어바이어코리아 사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