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역사적으로 1인자와 2인자의 관계는 묘하다.궁합이 잘 맞아 태평성대를 함께 이끈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나라를 일으키든, 혁명을 하든 큰 뜻을 향해 의기투합했지만 목적을 이루고 나선 내부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이 벌어지곤 했다. 2인자는 권력에 대한 과욕 또는 집중 견제로 인해 비참한 말로를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2인자의 행보는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높은 자리지만 언제 어떻게 제거될지 모른다.사례는 많다. 여불위는 진시황을 도와 중국을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 명성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결국 모반을 두려워 한 진시황이 촉나라로 옮겨 살 것을 명했고 여불위는 ‘이러다가 끝내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독배를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역시 진나라의 재상 이사도 법가 사상의 철학을 제공, 진시황의 천하통일 발판을 마련하면서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 그뿐만 아니라 진시황 사후 혼란기를 거쳐 진나라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실권을 행사했다. 천하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동문인 한비자까지 사약을 내려 죽게 했다. 하지만 환관 조고와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말년엔 모반죄로 허리를 잘리는 참형을 맞았다.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한신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천하통일을 이룬 뒤 역모죄로 몰리게 된 것이다. 한신은 유방 앞에서 “사람들이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먹고, 높이 나는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활도 거두어 치우고, 적국이 망하면 지혜로운 신하는 죽는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도 당연하지”라는 말을 남겼다. 이른바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한 것이다. 원을 몰아내고 명 왕조를 연 주원장은 ‘2인자’들을 철저하게 제거했다.성공한 2인자의 모델은 장량우리의 역사에서도 2인자의 운명이 이와 엇비슷한 사례가 많다. 조선 개국 일등 공신 정도전이 그랬다. 태종 이방원을 왕으로 만든 하륜, 정조 때의 홍국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현대 정치사에서도 자유당 시절 이기붕, 3공화국의 이후락, 5공화국의 장세동, 노태우 정부 시절의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김영삼 정권 때 김현철, 김대중 정권 때 권노갑 등도 ‘2인자의 운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2인자들의 운명이 좋지 않은 이유는 뭘까. 자기 힘을 절제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한마디로 ‘자기 과신’ 때문이다. 성공에 도취돼 상황이 달라진 것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면서 나도 잘하면 1인자가 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반대로 철저하게 자기 힘을 빼면서 권력을 과감히 던진 경우도 있다. 한신은 자기 힘을 과시하다 희생양이 됐지만 장량은 자기 몸을 한껏 낮췄다. 그러면서도 내부 경쟁자들을 우군으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그는 역사적으로 가장 뛰어난 1인자의 참모이자 권력의 2인자가 됐다는 소리를 듣는다. 모범적인 1, 2인자의 유형을 만들어 낸 다른 사례도 많다. 멀게는 삼국지의 유비와 제갈량, 조조와 순욱·곽가 등이 있다. 역사학자들은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총리도 꼽는다.8월 말과 9월 초 단행된 청와대 참모진 개편과 개각으로 집권 중반기 이명박 정부의 진용이 새로 짜여졌다. 권력의 이동이 확연하다. 집권 초 2인자 그룹이었던 이상득 의원을 비롯한 원로들이 퇴조를 맞았다. 신진 세력들이 내각에 중용되고 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총리 자리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발탁된 게 백미를 이룬다. 청와대에선 윤진식 정책실장의 중용이 눈에 띈다.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크게 공헌한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컴백은 아직 가시화되고 있지 않아 앞으로 이들이 현 정부를 이끄는 2인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이명박 정부가 성공적 정권이 될 수 있느냐 여부는 이들의 어깨에 달린 것이다. 특히 ‘이종교배’라는 얘기까지 듣는 정운찬 총리 내정자의 착근 여부가 관건이다. 이 대통령이 어떤 용인술을 보이느냐에 따라 ‘유비와 제갈량’의 모범적 유형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바람직한 1, 2인자 관계 설정은 국정의 효율성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당연한 지적이다.홍영식·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