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 한 접시만한 게 또 있으랴

왕십리전어마을

가을에 맛의 풍류를 논하고 싶다면 역시 통통하니 살 오른 전어구이 한 마리쯤은 뜯어줘야 한다. 왜 하필 전어냐고 묻지 말자. 봄에 태어나 여름 동안의 성장기를 거쳐 가을이 되면 기름기 잘 오른 살맛이 특히 일품인지라 예부터 가을 별미로 이름 좀 날린 생선이 바로 전어다. 심지어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도 ‘기름이 많고 달콤하다’고 적혀 있을 정도다.‘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갔던 며느리도 다시 돌아온다’와 같이 너무나 유명한 속담까지 딸린 생선이다 보니 전어 생김새는 몰라도 가을 전어 이름 한 번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의 30%가 가을 별미라고 하면 전어부터 떠올린다고 하니 이쯤 되면 가을철 전어 한 접시 먹지 않고 넘어가면 섭섭할 정도다.서울에서 제대로 된 전어 맛을 즐기고 싶다면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전어 맛집으로 명성을 갈고닦아 온 ‘왕십리전어마을’을 주목하자. 이곳의 전어는 모두 남해에서 직송해 온 것으로 다른 집에 비해 훨씬 통통한 몸매에 비린 맛도 덜하고 훨씬 더 고소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진작부터 전어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지라 특히 8월 하순부터 10월 초·중순에 이르는 가을 시즌만 되면 취재하려는 언론과 진짜배기 전어 맛을 보러 찾아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그 명성에 비해 가게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고 이렇다 할 인테리어랄 것도 없는 그저 평범한 횟집이지만 전어 맛 하나만으로도 고급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집이다.대부분의 전어 전문점에서 전어는 일반적으로 회, 무침, 구이 메뉴로 나뉘는데 이 집도 마찬가지다. 회든, 구이든, 무침이든 그저 본인의 기호에 따라 골라 먹으면 된다.그중에서도 뼈째로 두툼하게 썰어 탱글탱글 입 안에서 씹히는 살맛을 음미할 수 있는 전어회는 깻잎에 싸서 된장에 찍어 먹으면 훨씬 더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이때 자칫 진한 깻잎 향에 전어 살맛이 가려질 수도 있으니 깻잎 반 장에 싸서 먹는 것이 포인트다. 미나리, 양파 등 신선한 야채를 푸짐하게 넣고 매콤달콤한 특제 양념에 고소한 맛을 더해주는 참기름 한 방울 톡 떨어뜨린 전어 무침 맛도 환상적이다.하지만 예부터 유명했던 가을 진미로서의 전어 맛을 보려면 역시 전어구이를 먹어봐야 한다. 내장을 따로 빼지 않고 통째로 그릴에 구워 노릇노릇하니 보기만 해도 군침이 나올 것 같은 전어구이는 뼈를 발라 살을 골라내지 않고 한 마리를 들고 머리부터 그대로 씹어 먹어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다.그러니 어느새 스산한 바람으로 더위의 흔적을 지워가는 가을밤, 괜히 삶의 고단함에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가을밤이면 싸한 소주 한잔에 우적우적 전어를 씹어가며 그 고단함을 지워보자. 맥주는 안 된다. 반드시 맑고 투명한, 그래서 더 가슴이 시릴 정도로 쓴 소주여야만 한다. 사나이의 뜨거운 눈물의 의미를 이해해 줄 친구나 동료와 함께라면 가을밤의 정취로 이만한 게 또 어디 있으랴.영업시간: 12:00~02:00 메뉴: 전어회무침 2만5000원, 전어회 2만 원, 전어구이(1접시 3마리) 2만 원 위치: 2호선 상왕십리역 2번 출구 70m 큰길 대로변 문의: (02)2292-6831김성주·객원기자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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