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등 찬사 받아…풀드 재기 모색

위기에 뜨고 진 월가 스타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유명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 사람들은 막 직장을 잃은 사람들일 뿐입니다.”2008년 9월 15일 월요일 아침. 뉴욕 경찰들은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오래된 투자은행의 파산 신청 소식을 듣고 몰려든 방송인들과 뉴요커들, 관광객들을 폴리스라인 밖으로 내몰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면서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158년의 역사를 종식하는 리먼브러더스 건물 앞은 TV 방송국에서 나온 카메라맨들과 뉴스 앵커들, 관광객들, 그리고 월가의 앞날과 자신의 일자리를 걱정하면서 만상에 젖은 뉴요커들, 개인 사물 박스를 들고 나오는 리먼브러더스 직원들이 서로 뒤엉키면서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전날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과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부터 은행의 운명을 전해 들은 리처드 풀드 최고경영자(CEO)는 괴로운 심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다.그로부터 1년. 리먼의 파산으로부터 촉발된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바꾸었을까. 또 파산 직전 이틀간(13일과 14일) 열렸던 월가 최고경영자 회의 때 리먼의 운명을 결정했던 월가와 미 정부의 주역들은 지금은 어떻게 돼 있을까.미 언론들은 리먼 파산 후 불어 닥친 광풍이 월스트리트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만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우선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던 수많은 투자은행들과 보험사들이 미 정부의 시장 개입을 통해 국유화 조치됐다. 경제 전문가들은 AIG 같은 거대 기업들이 언젠가는 민간 기업에 다시 팔리겠지만 지금은 그때가 언젠가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백만장자를 꿈꾸며 겁 없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을 누볐던 혈기방장(血氣方壯)한 젊은 뱅커들의 모습은 옛이야기가 됐다. 월가는 이제 청운의 꿈을 좇는 젊은이들의 활동 무대가 되기엔 퇴색한 ‘한물간 도박장’으로 인식되고 있다.미국인들의 관심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라는 부실 덩어리로 모래성을 쌓으며 수백만에서 수천만 달러의 고액 연봉을 받으며 떵떵거리고 살았던 월가 귀족 뱅커들의 근황에 쏠리고 있다.가장 큰 관심거리는 리먼 파산의 장본인인 리처드 풀드 회장이다. 풀드 회장은 1969년 리먼에 기업어음(CP) 중개인으로 입사해 ‘고릴라’라는 별명을 얻으며 월가에서도 가장 호전적이고 투쟁적인 기업 경영인으로 불렸던 인물. 그는 ‘내 생전에 절대 남 앞에서 무릎 꿇는 일은 없다(Never surrender)’는 식의 경영 철학으로 2008년 리먼이 위기에 빠졌을 때 모 기업으로부터 제기된 매각 협상을 거부했다. 파산을 면할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풀드 회장은 현재 재기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 맨해튼에 사무실을 빌려 금융 상품 중개와 관련한 자문사를 설립하려고 ‘때’를 노리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는 리먼의 주주들로부터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에 연관돼 있어 활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미국의 CNBC방송은 그의 지인의 말을 인용해 풀드가 계속 일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돈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풀드의 오른팔이었던 조지프 그레고리 전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월가로부터 멀리 떠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롱아일랜드 자택에서 맨해튼 사무실까지 헬리콥터로 출퇴근하는 등 사치스러운 생활로 유명했던 인물. 그러나 그 역시 리먼 파산으로 재정적 타격을 입은 후 본인 소유의 헬리콥터와 뉴욕 아파트를 모두 처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세금 전문 변호사에서 리먼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깜짝 발탁돼 ‘월가의 신데렐라’로 불리던 에린 캘런은 리먼 파산 직후 크레디트스위스은행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아직 정상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크레디트스위스 대변인은 그녀의 지인들의 말을 인용해 “캘런은 리먼 사태에 따른 심각한 스트레스 때문에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리먼의 파산을 결정했던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의 경우도 해피한 경우는 아니다. 골드만삭스에서 연봉 3700만 달러를 받다가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경제정책에 관한 한 전권을 약속받고 2006년 미 재무부 장관으로 입각한 폴슨은 현재 명예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CEO로서 시장경제에 대한 ‘나무랄 데 없는(impeccable)’ 신봉자로 여겨지던 그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미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장 개입을 주도하게 됐다. 또 시장 개입 과정에서 자신과 관련된 기업들을 집중 지원함으로써 선량한 시장 관리자로서의 의무도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은퇴 후 일리노이 주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새를 기르며 유유자적하고 싶어 했던 폴슨은 현재 명예 회복을 위해 자서전 집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저서는 내년 초 발간될 예정이다.리먼 대신 메릴린치를 인수했던 켄 루이스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회장도 폴슨 만큼이나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는 당초 리먼을 인수하라는 미 정부의 압력을 뿌리치고 골드만삭스에 버금가는 거대 투자은행을 만들겠다는 야심 속에 메릴린치를 인수했다. 그러나 메릴린치 인수 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실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BOA조차 정부 지원을 받지 않으면 연명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것. 루이스는 부실 덩어리를 인수한 책임을 물어 최근 회장(Chairman)직을 박탈당했다.리먼 구제 방안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던 모건스탠리의 존 맥 회장은 구제금융을 받고 가장 먼저 이를 갚은 주인공이 됐다. 그는 내년에 은퇴할 예정이다.버냉키 FRB 의장과 티머시 가이트너 현 재무장관은 선방한 케이스다. 버냉키는 지난 8월 25일(현지 시간) 휴가 중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으로부터 두 번째 임기를 보장받았다. 그의 임기는 내년 1월 31일이다.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 위기 대처 과정에서의 그가 적지 않은 실책을 범했지만 ‘경기 침체 2.0(Depression 2.0)’을 막는데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보고 있다.가이트너 장관은 폴슨의 자리를 이어받은 후 한때 탈세 문제로 곤경에 처했으나 오바마의 신임 아래 위기 극복 임무를 상당히 잘 수행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경제 위기 과정에서 가장 큰 기회를 잡은 사람으로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은행 CEO가 꼽히고 있다. 철저한 위험 관리로 서브프라임을 피해 나간 그는 위기의 와중에 워싱턴 뮤추얼과 베어스턴스를 인수해 JP모건을 미국 최고 금융회사로 끌어올렸다.그가 항상 잘나갔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한때 씨티그룹 샌포드 웨일의 후계자로 불렸으나 1998년 퇴출당한 후 시카고에서 뱅크원 CEO로 있으면서 절치부심했다.이때 오바마 및 그 측근들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됐고 그 배경으로 현재 미국 금융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대접받고 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의 그에 대한 신임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바마가 월가에서 믿고 따르는 금융인이 다이먼이라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얘기가 됐다.그런 사례가 또 있다. JP모건체이스는 최근 사상 처음으로 워싱턴에서 람 이매뉴얼 대통령 비서실장이 참석한 가운데 이사회를 가졌다. 이매뉴얼은 다이먼이 뱅크원 회장으로 있을 때 전화를 걸어 자신이 과거 클린턴 행정부에서 해고된 뒤 권력 핵심부에 들어가려고 어떻게 노력했는지 회고하면서 위로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다이먼은 한 달에 두 번씩 워싱턴을 방문하고 있으며 최근 수개월간 가이트너 재무장관과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만나고 이매뉴얼 비서실장과는 수시로 전화 또는 e메일로 의견을 교환하는 사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박수진·한국경제 기자 notwom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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