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500대 민영기업 중 37% 배출

중국 주름잡는 저장상인의 파워

‘호수에 파도가 출렁이면 개어도 아름답고, 비가 내려도 기가 막히게 보기에 좋구나….’당송팔대가 중 한 명인 소동파가 항저우에서 관료 생활을 할 때 항저우 시내에 있는 호수인 시후(西湖)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다. 항저우는 저장성의 성도이자 과거 남송시대 중국의 수도다. 항저우는 비경으로만 유명한 게 아니다. 항저우를 중심으로 한 저장 출신들이 중국 경제를 주름잡고 있다.저장성에는 성도인 항저우(杭州)를 비롯해 세계 최대 도매시장으로 유명한 이우(義烏)가 있고 닝보(寧波) 원저우(溫州) 샤오싱(紹興) 등의 도시가 있다. 모두 상업과 공업의 중심지들이다. 저장성은 남한과 규모나 인구가 비슷하다. 면적은 10만1800㎢이고 인구는 5120만 명이다.“저장성을 표현하는 말로 ‘자원소성 경제대성(資源小省 經濟大省)’이란 말이 있다. 자원은 빈약하지만 경제는 강력하다는 말이다. 2008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087달러로 전국의 성 가운데 1위를 달린다. 시(市)급을 제외하고 성급에선 최고 부자다. 1978년 이후에 연평균 수입 증가율이 13.6%에 달한다”고 저장성 공상업연합회 정밍즈(鄭明治) 부회장은 밝힌다.중국 내 500대 민영기업 중 185개가 저장성에 있다. 전체의 37%에 달한다. 그중 항저우에만 81개가 몰려 있다. 저장성 내 민영기업은 52만 개다. 전체 공상기업(소기업 자영업자 포함)은 191만 개에 달한다.각종 시장이 4800개에 이른다. 특히 이우는 세계 최대 도매시장이다. 이우에는 400여만㎡ 부지에 6만여 개의 상점이 있고 이곳에 종사하는 종업원은 20여만 명에 이른다. 이곳에선 170만 종의 상품이 거래된다. ‘이우에 없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래되는 상품이 다양하다.“샤오싱과 샤오산 지역의 경우 전국의 화섬과 방직 제품의 3분의 1이 생산된다. 원저우는 의류 생산의 집산지이고 성저우는 중국 내 전체 넥타이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 항저우에는 세계 최대 B2B 업체인 알리바바의 본사가 있고 지리자동차 시지오티스 등 굵직한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 정 부회장은 설명한다.해외에서도 저상(浙商:저장성 출신 상인)이 활발히 뛰고 있다. 홍콩의 바오위강(包玉剛)과 샤오이푸(邵逸夫) 등을 비롯해 저장성 출신 상인 145만 명이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왜 저장성인가. 저장 상인의 대표적인 사례로 농민 출신 기업인인 판야상 야상그룹 회장을 들 수 있다. 그는 무학이다. 64세인데도 아직 글자를 모른다. 인사를 하면서 명함을 주고받지만 그는 받은 명함을 버린다. 글자를 모르니까 가지고 있어봤자 소용없는 것이다. 명함 대신 상대방이 사장이나 시장이면 엄지손가락을 그리고 옆에 휴대전화 번호를 적는다. 공안국에서 왔다 가면 총을 그린 뒤 휴대전화 번호를 적는다. 이런 식으로 사업을 하는 데도 연간 매출은 11억 위안(약 2000억 원)에 달한다.저우샤오광(周曉光) 신광그룹 회장도 비슷하다. 이우 출신의 여성 기업인인 저우 회장은 16세 때 중국 지도를 한 장 들고 전국 일주에 나섰다. 7년 만에 중국의 절반가량을 돌아다녔다. 무일푼으로 기차 밑바닥에서 자고 남들이 버린 사과를 먹고 지냈다. 역에 내린 후에는 자수(刺繡)를 놓은 후 팔아 또다시 기차를 타고 다녔다. 1978년에 간단한 유통 사업을 시작했다. 첫해 매출은 겨우 2만 위안 정도였다. 1995년에 직접 공장을 지어 액세서리 사업을 시작했다. 이 회사의 총자산은 현재 50억 위안(약 1조 원)에 이른다. 직원은 6000명에 달하며 70여 개국에 액세서리류를 수출한다. 얼마 전에는 세계적인 여가수 셀린 디온과 합작법인인 천사식품(飾品)을 만들었다.이들 기업인은 무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 저장성 기업인과 상인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무학의 농촌 출신이라는 점이다.“저장 기업인의 특징은 창의성, 강인함,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과 융통성”이라고 원자바오 총리는 밝힌 바 있다. 이를 정밍즈 부회장은 ‘4천(千)정신’으로 표현한다. ‘천(千)’자가 4번 들어가는 사자성어로 ‘천산만수(千山萬水:험난한 길을 수없이 다닌다)’, ‘천언만어(千言萬語:수많은 말로 설득한다)’, ‘천방백계(千方百計:많은 아이디어를 짜낸다)’, ‘천신만고(千辛萬苦:모든 어려움을 이겨낸다)’가 바로 그것이다.‘천산만수’의 대표적인 예가 저우 회장이라면 ‘천언만어’의 사례로는 정성타오(鄭勝濤) 샤오난기계 대표를 들 수 있다. 그는 인재를 영입하는데 ‘삼고초려’가 아니라 ‘칠고초려’의 정신으로 임했다. 고급 연구원과 전문가를 초빙하기 위해 집에 찾아가 일을 돕고 심부름도 해 주는 등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러나 도전 정신으로 열심히 한다고 해서 사업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그래서 ‘천언백계’가 나왔다. 100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는 것이다.그러나 이 모든 것 위에 ‘천신만고’가 있다.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를 극복하는 자세가 바로 천신만고의 정신이며 이게 저장 상인이 중국의 강자로 부상하게 된 가장 중요한 핵심 동력”이라고 정 부회장은 설명한다. 그는 이같이 고생을 극복하는 정신을 ‘양판(兩板)정신’이라고 한다. 낮에는 ‘사장(老板)’이지만 밤에는 ‘길에서 잠을 자는(睡地板)’ 정신이다.“이같이 근검절약하며 어려움을 극복한 정신이 바로 오늘날의 저상을 일궈냈다”고 마창락 박사(마음인재경영연구소 근무, 상하이 푸단대 국제관계학 박사)는 설명한다.항저우(중국)=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