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학맥 원조’ 서강학파
1960년대 국내 대학 교수의 대부분은 일본이나 유럽에서 유학한 이들로 강단의 교편을 주로 잡았다. 하지만 1960년에 설립된 서강대는 타 대학에 비해 설립이 늦었고 미국 위스콘신 관구장인 레오 번스를 주축으로 설립된 까닭에 미국에서 수학한 교수들이 대부분이었다.이에 따라 학풍은 자연스레 연세대 고려대를 중심으로 일본 혹은 유럽식 학문이 형성됐고, 신생 서강대에는 미국식 학파가 태동하고 있었다. 서강대 김경환 교수가 발표한 ‘서강학파가 한국의 경제학 발전에 미친 영향’ 연구에 따르면 서강대 경제학과는 미국 유학 1세대 가운데 3분의 1을 교수진으로 영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1965년 당시 국내 대학 경제학과 교수 가운데 미국 박사 학위 취득자는 서강대 3명, 연세대 2명이 전부였다. 미국 유학파 경제학자들은 서강대를 중심으로 집결했다.그러던 1969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수학한 남덕우 서강대 교수가 전격적으로 재무장관에 발탁되면서 그를 중심으로 한 서강학파가 태어났다. 그리고 1970년대 압축성장 시대를 거치며 서강학파는 정부 요직에 속속 진출하면서 한국의 경제정책 수립과 집행에 주요 영향력을 발휘했다. 남 전 총리는 그의 저서 ‘서강 경제학의 의미와 역할’에서 ‘서강학파라는 말은 미국에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배우고 직간접으로 정부 정책에 영향을 끼친 신진 경제학자들을 대표적으로 지칭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고 서강학파를 정의하고 있다. 서강학파가 하나의 학풍이라기보다 서강대 교수 출신의 관료를 통칭해 붙여진 이름이라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강학파가 주장하는 목소리는 한가지로 철저한 성장이었다.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모델을 토대로 대기업 및 중화학공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펼쳤으며 수출지상주의, 신성장 후분배 등을 통한 압축 성장을 추구했다.대표적인 인물로는 남 전 총리를 비롯해 김만제 이승윤 신병현 전 부총리,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성용 전 금융개혁위원장 등이 있다. 서강학파에는 서강대 출신이 거의 없었다. 남 전 총리는 국민대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나머지 인물도 서울대나 해외 대학 출신이다. 하지만 서강대 교수라는 구심점을 갖고 있었다.1970년대 초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차례로 러브콜을 받은 남덕우 이승윤 김만제 서강대 교수는 서강학파의 3대 거두로 불린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중화학공업 육성 등이 이들의 주요 작품이었다. 이들의 활약으로 당시 연 10%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중동 건설 붐에 힘입어 수출 1000억 달러, 국민소득 1000달러 등의 역동적인 성장을 경험했다.서강대 시장경제연구소의 초대 소장인 김광두 교수는 서강학파에 대해 “1970년대 정치는 독재적이었지만 국내 경제질서만큼은 서강학파를 중심으로 시장경제가 강하게 추구됐다”며 “내외 자원을 극대화해 잘살기 위해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한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에 따라 정부로부터 환율 및 세금 등에서 인센티브를 얻은 기업들은 ‘수출 활동’에 주력할 수 있었다.이승윤 김만제 라인은 이후 제5공화국, 제6공화국의 경제팀을 이끌며 지속적으로 경제성장 정책을 펼쳤고 고속 성장과 국제수지 흑자라는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하지만 서강학파의 이러한 주장과 성장 위주 경제정책에 따른 역효과도 있었다. 수출 위주의 경제 집중으로 내수 활동이 소외돼 중소기업들이 성장하지 못했다. 그리고 도시·농촌 간 수입 격차, 호남 지역 개발 소외 등이 지적됐다. 김 교수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당시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은 비교우위론에 의한 것이었다. 양자택일에서 더 나은 방향을 고른 선택의 문제였다”고 평가했다.그리고 1997년 직면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서강학파의 활약은 막을 내리게 된다. 당시 금융개혁위원회에 김병주 서강대 교수가 부위원장을 맡아 지난 30여 년간의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에 대수술을 펼치며 서강학파가 종언을 맞았다.지난 2006년 서강대 시장경제연구소는 경제정책의 사령탑이었던 서강학파의 계보를 잇는다는 취지 아래 설립됐다. 서강대 시장경제연구소는 ‘반시장 경제정책의 확산을 막고 서강학파의 경제발전 이론을 재평가’한다는 목표를 뚜렷이 했다. 설립 후 3주년을 맞은 시장경제연구소는 서강대 교수 27명과 외부 연구원 20여 명을 포함해 50여 명의 연구 인력이 주로 부동산, 금융, 대기업 관련 정책에 대한 시장 친화적 요소를 평가하고 있다. 1년에 4번 정책 토론회를 통해 경제 현안에 대한 자료집을 발간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서강학파의 명성에 비해 특별한 활약상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경제연구소의 김홍균 부소장은 “연구 결과를 공식적으로 정부에 보고하는 루트는 없다”고 밝혔다.서강대 출신 경제인 200여 명이 모이던 ‘서강경제인포럼’도 2000년대 초반에는 활기를 띠었으나 현재는 많이 퇴색된 상태다. 시장경제연구소는 현재 한국 경제가 성장에서 안정과 분배로 초점이 전환되고 있는 만큼 ‘성장 잠재력이 훼손되지 않으면서 지속 가능한 분배와 복지’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경제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하던 서강학파는 사라졌지만 서강대 경영, 경제학과 1980년대 학번들은 주요 증권사를 중심으로 자본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10대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중 여럿이 서강대 출신이다. 삼성증권의 김학주, SK증권의 전우종, 대신증권의 김영익 등 쟁쟁한 서강대 출신 리서치센터장이 포진하고 있다. 특히 이코노미스트나 채권 분야에서 서강대 출신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시장경제연구소의 김 부소장은 “무엇으로 학파의 기준을 잡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국내에서는 학문적 성향보다 경제 네트워크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경제계 인맥과 학맥에 대해 설명했다.그래도 시장경제를 더욱 확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공산국가지만 우리보다 더 시장경제에 가깝다. 노무현 정부 이후 소외계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단지 ‘나눠주기’식이었다. 우리 연구소는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소외계층에게 직업교육과 기회를 제공하는 ‘지속 가능한 분배’를 주장하고 있다. 복지에 너무 주력하면 성장의 힘이 빠질 수 있다.이명박 대통령은 기업 투자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쇠고기 파동과 국제금융 위기라는 2가지 요인 때문에 본래 생각보다 다른 각도로 가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 설비 투자를 주장하다간 정치적 존립도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친서민 정책의 내용이 무엇이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내년 예산에 어떤 항목이 반영되는지 따져봐야 하지만 경제 소외계층에 대해 성장과 양립할 수 있는 교육 투자, 직업훈련, 공교육 육성 등의 복지에 힘이 실려야 한다.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특정 학맥이 특정 정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 교수가 강의와 연구의 본분을 다하지 않고 정치인을 만나고 다닌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하지만 사회과학에서 경제·정치·행정 등 사회현상을 가르치려면 현실과 이론을 접목해야 한다.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에게 정책적 제안이나 현상에 대한 평론 등 도움을 주는 것은 지식인의 사회 기여라고 봐야 한다.학파는 학교를 위주로 모이는 것보다 학회를 중심으로 형성돼야 한다. 과거에 학파 간 주장의 구별이 뚜렷했던 것에 비해 요즘은 대부분 미국형 자유시장경제로 학풍이 비슷해졌다. 국내 경제에 대해 색깔을 달리하는 학파가 경쟁하고 대립하면서 발전을 이룰 수 있다.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