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캠퍼스 ‘붐’…편의시설 ‘놀라워라’

대학가의 또 다른 진화

9월 1일 길고 길었던 여름방학이 끝난 이화여대는 수많은 학생들로 붐비고 있었다. 여름방학으로 사뭇 한산했던 정문 부근은 학생들의 발걸음으로 활기찼고 덕분에 2호선 이대역 출구에서 내려오는 언덕길의 저편은 끝자락의 여름을 밝은 분위기로 장식하고 있었다.이화여대의 분위기는 2008년 크게 바뀌었다. 몇 년간 계속되던 공사가 끝나고 새로운 분위기의 캠퍼스로 변화했다. 캠퍼스 입구의 대리석 보도는 산뜻한 대학 이미지를 만들었고 입구 좌측에 자리한 잔디 운동장은 발전된 체육 공간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지난해 완공한 ECC(Ewha Campus Center)다.지하 6층, 지상 1층 총면적 6만8657.24㎡ 규모로 한국 대학 중 최대의 지하 캠퍼스를 자랑하는 ECC는 2008년 오픈한 후 대학가뿐만 아니라 건축계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세계적 건축가인 도미니크 페로가 디자인한 ECC는 ‘캠퍼스 밸리’라는 주제로 도심 캠퍼스의 지리적 장점을 살려 도시와 조화를 이루는 공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마치 모세가 갈라 놓은 홍해를 연상시키는 ECC는 운동장으로 쓰던 땅을 반으로 쪼개 가운데에 밸리라고 불리는 거대한 인공 계곡을 두고 양쪽에 지하 건물을 배치한 형식이다. 밸리는 보행로와 광장, 캠퍼스 입구 등으로 활용된다. 이 밸리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 벽면에 건물이 들어갔다. 일반 건축물처럼 외형이 눈에 띄지 않아 보는 이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한다.안에 들어서면 ‘과연 이곳이 지하인가’의심하게 된다. 인공 계곡 쪽의 벽면은 통풍과 채광에 용이하도록 유리로 돼 있어 마치 고층 빌딩의 어느 한 층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지하’라는 이미지가 주는 폐쇄적인 인상을 받을 수 없도록 밝고 시원한 느낌이다.쾌적한 환경으로 ECC는 대학 강의실로 활용해도 무리가 없다. ECC의 지하 1층부터 3층까지는 강의실, 세미나실 및 신문사, 방송국 등 미디어센터와 국제교류처, 학생서비스센터 등 학사 관련 사무실들이 들어서 있다.여러 편의 공간들도 학생에게 제공되고 있다. 곳곳에 소파와 테이블은 물론이고 수면실도 갖추고 있어 학업에 지친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돋보인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지하 4층에 자리한 시설들이다.교문을 등지고 보아 계곡 왼쪽에 열려 있는 게이트로 들어가자 은행이 있다. 은행 옆에는 휴대전화 대리점이 자리하고 있다.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휴대전화를 사거나 바꿀 수 있고 수납이나 기타 서비스 관련 업무를 볼 수 있다.ECC에는 영화관도 있다. 이곳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는 규모 측면에서는 크다고 볼 수 없지만 예술적으로 수준 높은 영화들을 상영해 학생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모모 하우스 옆에는 다이어트 푸드로 유명한 카페 닥터로빈이 있다. 커피 맛에 까다롭고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여학생들이 주 고객이어서인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저녁을 먹기에는 어정쩡한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하고 있는 학생들도 종종 눈에 들어왔다. ECC에는 닥터로빈을 비롯해 다양한 푸드 코트 스타일 식당도 있다. 이곳에서 만난 우에노 에리(통역번역대학원 1년) 씨는 “굳이 교문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다양한 종류의 먹을거리를 맛볼 수 있어 매우 편리하다”고 말했다.사실 이러한 지하 캠퍼스의 원형은 지난 2002년 완공한 고려대 중앙광장이다. 고려대와 코엑스를 합성해 일명 ‘고엑스’라고 불리기도 하는 고려대 중앙광장은 당초 카페와 PC방 등 외부 업체들의 입점을 두고 면학 분위기를 해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지하 편의동 조성 후 학생들의 이용도가 높고 학교 이미지 개선에도 일조한 것으로 판단되며 국내 대학 편의 시설의 고급화·첨단화를 주도, 이화여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들이 벤치마킹에 나섰다.서강대는 8월 25일 내외국인을 위한 기숙 시설인 곤자가 국제 학사와 함께 지하 캠퍼스인 곤자가플라자의 준공식을 가졌다. 2006년 9월 착공해 만 23개월 만에 준공된 곤자가플라자는 지하 3층, 지상 1층의 건물로 지하 2층과 지하 3층은 600여 대가 들어갈 수 있는 주차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고 지하 1층은 학생 편의 시설이 들어섰다.홍대~신촌~이대앞으로 이어지는 대학 상권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어 다소 불편했던 서강대생들도 곤자가플라자가 준공되며 굳이 학교 외부로 나가지 않아도 학교 안에서 편하게 대학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또한 곤자가플라자는 학교가 건설비를 부담하지 않고 모두 민자 유치 사업(BTO)으로 건립된 것으로 앞으로 20년간 민간 사업자가 운영을 맡지만 임대 수익 등에서 초과 수익이 생길 경우 대학으로 귀속돼 학교의 수익성도 높일 수 있다.성남에 있는 경원대도 경원전문대와의 통합을 기념해 1000여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총면적 6만9343㎡에 지상 7층, 지하 4층의 초대형 지하 캠퍼스인 ‘비전타워’를 건설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현재 65%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는 비전타워는 서울공항이 인접한 때문에 45m의 고도 제한 규정에 적용돼 지하 캠퍼스를 건설할 수밖에 없었다.경원대 역시 다른 대학의 지하 캠퍼스와 마찬가지로 학생들 생활에 필요한 편의점, 커피숍, 옷가게, 아이스크림 가게 등이 입주 예정돼 있으며 체육관, 전자도서관, 강의실, 컨벤션 센터 등의 시설도 갖춰 다목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현재 설계 마무리 단계에 있는 한국외국어대도 협소한 캠퍼스 공간의 효율적인 활용과 차 없는 캠퍼스 구축, 녹지 조성을 통한 학내 환경 개선을 목표로 종합체육관 겸 강당, 피트니스센터, 탁구장 등 복지시설과 세미나룸, 도서실 등이 들어서는 지하 캠퍼스를 건설할 예정이다. 성균관대는 ‘비전2020’ 계획에 지하 캠퍼스 건설을 포함할 예정이며 연세대는 현재 공사 중인 송도 캠퍼스가 마무리되는 대로 정문과 본관을 잇는 백양로의 지하 공간을 개발할 계획이다.양충모·객원기자 gaddj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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