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기술로 세계 주방용기 시장 ‘꿀꺽’

이기화 (주)케이티엘(KTL) 대표

불꽃이 없어 안전하고 열효율이 높아 순간 가열이 가능한 인덕션 레인지(IH:Induction Heating·전자유도가열조리기)는 차세대 조리 기구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자기장을 이용해 열을 발생하기 때문에 자력에 반응하는 철부분이 조리 용기 바닥에 삽입돼야 하는데 알루미늄과 철을 완벽하게 융합하는 기술이 없었다.세계 유명 주방 용기 업체들도 수년 동안 연구했지만 실패했던 이 기술을 국내 중소기업이 최초로 개발 성공해 세계시장에서 밀려오는 주문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 업체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주)케이티엘(KTL, 대표 이기화)로, 주방 용기의 선두주자인 독일과 일본 업체로부터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3D 업종의 하나로 국내에서 사양길을 걷고 있던 주물(鑄物) 업계에 KTL은 신기술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KTL의 이기화 대표는 지난 2001년 자신의 이름을 따 자동차 엔진용 금속 1차 벤더인 기화금속을 설립했다. 다음해 사명을 KTL로 변경했을 무렵, 일본에서 자기를 이용한 레인지를 개발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이 대표는 차세대 친환경 인덕션 레인지가 일반화되면 전용 조리 용기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금속 개발에 일가견이 있던 이 대표는 앞뒤를 재지 않고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인덕션 레인지용 용기의 문제점은 열전도율이 서로 다른 철과 알루미늄이 열을 만나면 수평을 유지하지 못하고 변형되는 것이 문제였다. 테팔, 헨켈, 휘슬러, 라고스티나, 아사히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 주방 용기 업체들도 5~6년간 개발해 왔지만 한계에 부딪쳐 성공하지 못한 기술이었다.이 대표도 홀로 작업장에서 밤을 지새우며 개발에 매달렸지만 물론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뭐든 1만 번을 해 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생각에 며칠을 한숨도 자지 않거나 계절을 잊은 채 수천 번의 다른 방법을 시도해 봤다. 이 대표는 “제가 당구를 1000 치는데 당구도 찍어치기(마세이) 기술을 배우기 위해 1만 번 시도했었죠”라며 웃었다.수개월간 개발에 매달린 이 대표에게 재정적 시련도 다가왔다. 무일푼이 된 이 대표는 당장 밥값조차 없었다. 그는 “배가 고파 신용카드로 갈비탕 한 그릇을 사먹을까 했지만 정말 다음 달에 카드 값을 갚을 방법이 없어 포기했다”며 식당에서 쫓겨나듯 나온 일화를 소개했다. 사업하는 그에게 신용은 생명과 같아 식당에서지만 이를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딱하게 본 식당 아주머니가 준 동전 몇 개로 컵라면을 사먹고 다시 개발에 몰두했다.그러던 어느 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까닭에 실수로 용기 바닥에 넣을 철판을 거꾸로 넣고 알루미늄 녹은 것을 부었는데 그가 그토록 기다려 왔던 작품이 탄생했다. 개발을 시작한 지 1년 반 만이었다. 이 대표는 “당시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몰랐다”고 말한다. 용기 바닥의 철과 알루미늄이 열을 만나도 변형되지 않고 수평을 유지해 성능과 내구성이 기존 제품에 비해 월등했다. 독특한 철·알루미늄 금형도 이 대표가 개발 도중 환풍기를 쳐다보며 발상한 것이라고 한다.기술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연필과 제도 기구만 들고 달려든 까닭에 양산을 위한 매뉴얼도 만들어 놓지 않았고 프레스를 살 자금도 전혀 없었다.‘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일본 아사히경금속사에 개발한 제품 샘플을 보내자 ‘한 달에 1개든 2개든 생산하는 대로 납품하라’는 통보가 날아왔다. 그리고 은행이나 친인척도 빌려주기를 외면한 기계 구입비용을 이 대표의 한 친구가 아무 조건 없이 2000만 원을 줘 해결할 수 있었다. 어렵게 구입한 기계 설비로 아사히 측에 반제품 형태로 납품을 시작했다. 7~8년 동안 이 연구를 해 왔던 아사히 측은 곧바로 프레스를 만들어 똑같이 시도해 봐도 같은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이 대표가 제품을 처리하는 마지막 공정이 한 가지 더 있는데 이는 이 대표 외에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사히 측은 KTL에서 받은 반제품을 위한 코팅과 조립 공정만 남기고 주물 라인은 철거해 개발을 포기했다. 그리고 이 대표와 아사히의 와쿠라 요시하루 대표는 KTL이 어려웠던 시절부터 서로 돈독한 평생 신뢰 관계를 구축해 놓고 있다.그리고 올해 6월 일본 최대 홈쇼핑사인 니코가 주최한 납품업체 시연회에서 수많은 경쟁을 뚫고 KTL의 인덕션 레인지용 완제품인 자체 브랜드 ‘그린쿡’이 당당히 1등을 거머쥐었다. 니코 측은 곧바로 1만5000개(1억5000만 원 상당)를 발주했다. 그린쿡의 성능이 일본 현지 방송에 나가자 SK그룹 계열사인 SK재팬(토가도)과 일본 내 유통업계 1위인 이온(AEON)그룹이 일본 내 판매를 제안했다.일본과 마찬가지로 인덕션 레인지가 일반화된 중국에서도 주문이 들어와 있으며 향후 중국 홈쇼핑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독일 주방 용기 업체로부터도 지난 4년간 상담 끝에 주문을 받았다.KTL은 올해 매출을 100억 원으로 잡고 있다. 1개월 기준으로 생산 능력은 15만~20만 개(매출 15억~20억 원어치)로 매년 100% 이상 성장세에 있다. 이 대표는 “세계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월 50만 개 생산 라인을 구축해야 한다”며 “생산 능력만 갖추면 내년 매출은 연 500억~600억 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KTL은 해외 주문만도 벅차 아직 국내 판매는 생각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는 인덕션 레인지가 일반화되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인덕션 레인지가 곧 일반화될 것이고 테이블에서 직접 조리하는 업소가 많아 큰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KTL은 인덕션 레인지도 직접 개발해 수명이 짧은 중국제를 넘어 일제 수준의 성능을 보유한 우수한 제품을 출시했다. 국내 특허를 얻고 국내 콘도 및 아파트 납품을 위한 양산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인덕션 레인지가 일부 홈쇼핑을 통해 유통되고 있지만 상당수가 고가다.이 대표는 사람이 성공의 관건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직원 중 여러 가지 이유로 퇴직하는 이를 절대 그대로 보내지 않는다. 어떤 수를 쓰든 붙잡아 놓으려고 한다.이 대표는 “현재 직원들은 아마 평생 같이 갈 것이고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이익도 같이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KTL이 이들의 노후까지 책임진다는 게 이 대표의 구상이다. 주물업은 수작업이 많고 일이 고되기 때문에 직원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이 대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계산이 빠른 경영인보다 무디고 끈기 있는 기술인, 고객이든 거래처든 신뢰가 곧은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게 이 대표의 꿈이다. 이 대표는 CEO임에도 불구하고 섭씨 700도 이상의 알루미늄 녹인 쇳물로 뜨거운 공장을 누비고 다니고 지게차를 직접 운행하며 세계적 업체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약력: 1961년생. 80년 충남 서령고 졸업. 87년 한영금속 개발과장. 93년 정우금속 금형부장. 2001년 케이티엘(전 기화금속) 대표이사(현).인덕션 레인지: 자기장으로 열을 내는 인덕션 레인지는 불꽃이 없어 화재의 위험이 없고 그릇만 가열하기 때문에 대기 중에 열을 빼앗기지 않아 열효율이 높다. 순간 가열로 가스레인지보다 5분의 1 수준으로 빨리 가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에 반응할 수 있는 IH용 전용 용기를 사용해야 한다.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는 국가 정책상 설치를 의무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보일러, 압력밥솥 등에도 이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회사 개요〉본사: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진목리주생산품: 인덕션 레인지 및 IH 전용 주방 용기매출: 52억 원(2009년 상반기)주 거래처:일본 아사히경금속, SK재팬, AEON, 독일 Joscf Schltc-Ufer KG, 중국 낙원상가 등종업원: 70명포천 = 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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