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국장이 남긴 ‘비하인드 스토리’

여의도 생생 토크

지난 8월 23일 영결식으로 마무리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 국장은 유례없는 몇 가지 기록을 남겼다. 전직 대통령 장례식으로는 처음 치러진 국장(國葬)이었고 영결식 참석자도 사상 최대 규모(정부 공식 초청자 2만4000명)였다.북한 특사조문단이 남한 전직 대통령의 국장에 참석하기 위해 특별기로 날아온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장의위원회 구성 인원(2371명)도 역대 가장 많은 숫자였다. 그야말로 사상 최대가 아닌 것이 없을 만큼 여러모로 역사적 기록을 남긴 국장이었다. 그러나 장례 이후에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장-국민장’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다. 앞으로도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놓고 국장이 관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논쟁이었다.우리나라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은 그 대상을 전·현직 대통령과 국가·사회에 현저한 공헌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다.현직 대통령은 국장,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부인·국회의장·국무총리는 국민장이 관례다. 정부 수립 후 국장은 재임 중 서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거한 현직 대통령이 아닌데도 국장으로 치러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DJ 장례식이 국장으로 결정된 데는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박지원 의원의 노력이 컸다. DJ 서거 직후 전화로 청와대에 통보한 박 의원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병실이 수습되자 곧바로 청와대로 달려가 맹형규 정무수석을 만났다.이 자리에서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위상에 걸맞게 국장으로 치르자”고 요구했다.하지만 장례 절차 협의의 주무 책임자인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전직 대통령을 국장으로 치른 전례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1시간가량 이어진 협의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자 박 의원은 버럭 화를 내면서 “그냥 가족장으로 치를 테니 정부가 신경 쓰지 말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이런 정황을 보고 받은 이명박 대통령이 “가족의 뜻을 최대한 존중하라”고 지시하면서 유례없는 전직 대통령의 국장이 치러지게 된 것이다. 장례 이후 정부에선 더 이상의 논란을 막기 위해 국장과 국민장을 통합해 국가장으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이번 국장에서 특히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북한이 파견한 특사조문단이었다. 박 의원 등 상주 측에서는 특사조문단 접대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이 과정에서 자칫하면 남북한 간 갈등의 ‘불씨’가 될 뻔했던 것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낸 조화였다.북한 특사조문단은 국회 분향소에 도착한 뒤 김 위원장의 조화가 내려질 때까지 차에서 기다릴 만큼 조화를 소중히 다뤘다. 따라서 일부 반북 단체 등에 의해 조화가 훼손될 경우 남북 정부 간 마찰이 일어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사태의 민감성을 감안했던지 박 의원 측은 김 위원장의 조화를 영결식 전날 동교동으로 몰래 옮겼다.경찰의 경호 속에 몇몇 사람들이 은밀히 조화를 옮기는 것을 보고 이런 사실을 모르는 일부 자원봉사자들은 “정부가 김정일 조화를 탈취하려고 한다”고 항의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불과 석 달 만에 두 전직 대통령이 잇따라 서거하면서 국민들의 상심이 크다. 지난 5월 29일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또한 사상 최대 규모였다. 당시 경남 진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분향소 등 전국 309개 분향소의 추모객을 되짚어 보면 약 500만 명이 다녀갔다.김수환 추기경의 추모객(40여만 명)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모객(200만 명),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이 치러진 6일 동안 전국 182곳 분향소를 다녀간 70여만 명을 월등히 뛰어넘는 숫자다.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추모객들의 구성이 확연히 달랐다는 사실이다.한 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는 화이트칼라, 어린아이를 안은 주부 등 주로 젊은 층이 많이 찾아왔고 반면 DJ 국장에선 40대 이상의 기성세대, 특히 저소득층 서민들과 중·장년층이 많이 조문했다”고 말했다.이준혁·한국경제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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