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아파트도 층마다 가격 ‘천차만별’

아파트 일조권의 가치

만약 내가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 앞에 갑자기 우리 아파트 건물보다 3배 더 높은 빌딩이 들어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변화는 집값 폭락일 것이다. 앞 베란다 조망이 건물에 가려 답답하고 햇빛이 잘 들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빌딩 건축이 문제가 없다면 현실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조권 피해를 보상받는 일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건설 회사에 얼마나 요구해야 할까.몇 년 전 여의도에서 이와 유사한 일조권 피해 소송이 있었다. 기존 한양아파트(12층) 건너편 상업지구에 35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섬으로써 한양아파트 거주자의 일조권을 침해했고 그 결과 집값이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었다. 법원은 소유주 83명에게 각각 60만~3000여만 원씩 총 12억97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현실적으로 햇빛이 잘 들지 않은 집의 가치가 현격히 떨어지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같은 아파트라도 10층이 1층보다 훨씬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열층이 더 비싼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일조권 때문이다. 하지만 일조권이 아파트 가치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인 점은 명백하지만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법원에서는 무분별한 일조권 소송을 방지하기 위해 동짓날을 기준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사이에 연속해서 2시간 이상 햇빛을 받지 못하거나, 그 외 기간을 포함해 오전 8시에서 오후 4시 사이에 4시간 정도 햇빛이 들지 않는 경우에만 일조권 피해 소송을 낼 수 있도록 기준을 정했지만 이러한 기준은 과학적 근거에 따라 설정된 것이 아니라 이 정도면 적당하겠다는 통상적인 생각을 반영한 것 같다.일조권을 계산할 수 있는 한 가지 현실적인 방법은 아파트 시장에 반영된 가격을 비교해 보는 것인데, 예를 들어 똑같은 건물의 아파트에서 1층과 10층의 가격이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일조권의 가치가 반영된 결과로 간주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가격 차이만큼을 아파트 일조권의 가치로 인정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생각은 다수의 소비자 판단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일조권을 산정하는 현실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이런 가정에 기초해 일조권의 가치를 산정하기 위해 층이 다른 아파트의 가격을 테스트해 보았다. 조건이 동일한 아파트를 층만 다르게 설정해 판매해 보았더니 1층을 구매할 확률은 13%, 5층을 구매할 확률은 46%, 10층을 구매할 확률은 41%로 나타났다. 여기서 가격은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층마다 2000만 원 차등을 두었다.이 의미는 1층 아파트가 비록 가격은 5층보다 2000만 원, 그리고 10층보다는 무려 4000만 원이 더 저렴하다고 할지라도 소비자는 1층 아파트의 가치를 5층, 10층보다 더 낮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해석해 보면 5층의 시세가 3억7200만 원이라면 1층은 3억5200만 원보다 더 싸야 팔릴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5층과 10층은 1250만 원 정도 차이가 났을 때 비슷한 점유율을 보이는 것으로 봐서 소비자는 10층은 5층과 가격차이는 1250만 원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러한 차이를 우리는 일조권의 가치로 간주 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만 원 정도 더 비싸다면 5층이나 10층 아파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우리는 왜 강남 아파트가 10억 원이 넘는지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는 없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10억 원이어도 사겠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이 바로 그 아파트의 가치인 것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집값 폭락을 걱정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무엇이 변했을까. 아파트가 변한 게 아니라 사람의 가치 기준이 변한 것이다. 일조권 또한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가치판단을 반영하는 것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설득력은 있을 것이다.황경남·컨슈머초이스( thechoice.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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