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 난 제비집 경작업
동남아시아에서 ‘제비집’ 경작 사업이 붐을 이루고 있다.미국의 주간지 타임은 최근 중국에서 과거 황제가 즐겼다는 ‘제비집 요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 요리의 재료인 ‘먹을 수 있는 새 둥우리(edible birds’nests)’를 채취하는 사업이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서 급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비집’은 동남아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금사연(金絲燕)이라고 불리는 바다제비가 타액으로 만든 것이다. 제비집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딸려 고가에 거래되기 때문에 ‘백금’이나 ‘동방의 캐비어(철갑상어알)’라고 불린다. 태국 방콕에선 제비집 11온스(300g) 한 박스가 2600달러(약 325만 원)에 거래된다. 또 제비집이 1.1% 포함된 소위 ‘건강음료’는 한 병에 4달러에 팔리고 있다.제비집은 최근까지 주로 야생의 동굴 등에서 채취됐고 일부 부유층들 사이에서만 거래됐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제비집에 대한 중국인들의 수요가 늘어 빈 건물로 바다제비를 유인해 제비집을 짓게 하는 ‘제비집 경작’ 사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 사업에 필요한 것은 문이나 창문이 없고 구멍만 많은 다층 구조의 건물(일명 제비집 콘도)과 초음파 가습기, 새소리를 내는 기계, 말린 배설물 가루 등이다. ‘제비집 콘도’를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위치다. 짓기 전에 바다제비가 날아다니는 길목을 찾아야 한다. 4만 개가량의 제비집을 지을 수 있는 3층짜리 ‘제비집 콘도’를 짓는 데는 약 10만 달러(1억2000만 달러) 정도의 비용이 든다. 그 다음엔 ‘구애하는 새소리’를 내는 기계를 통해 바다제비를 유혹해야 한다. 가습기는 ‘콘도’ 내부를 바다제비들이 좋아하는 동굴처럼 축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말린 배설물 가루에서 나오는 탄화수소암모늄은 새로 지어진 제비집에서 오래된 제비집 같은 퀴퀴한 냄새를 나게 한다.이 사업의 최대 리스크는 ‘콘도’를 지어 놓아도 바다제비를 끌어들이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일단 바다제비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하면 한 달에 2∼4파운드의 제비집을 얻을 수 있다. 파운드당 500달러에 팔리기 때문에 최대 월 2000달러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셈이다.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지만 말레이시아 관영 뉴스 통신인 베르나마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에만 약 1만 개의 ‘제비집 콘도’가 있으며 매년 144톤, 약 1억6000만 달러어치의 제비집을 생산하고 있다. 2007년 한 민간 조사에 따르면 태국에는 600여 개의 ‘제비집 콘도’가 있고 6000만 달러 규모의 제비집을 생산하고 있다. 타임은 태국의 마을 곳곳에 ‘제비집 콘도’가 생겨나는 것을 감안할 때 지금은 규모가 훨씬 클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최대 제비집 공급국인 인도네시아는 생산 규모가 말레이시아와 태국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제비집 경작 사업이 붐을 타면서 관련 노하우 등을 담은 서적이 발간되는가 하면 ‘제비집 콘도’를 짓는 방법이나 장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블로그들도 생겨나고 있다.과거 야생 제비집 채취 사업은 막대한 자금과 정부 커넥션을 가진 소수 업자들의 전유물이었다. 태국에선 10개 남짓한 회사들이 태국만과 안다만해에 있는 170여 개 섬에서 제비집을 채취했다. 이들 섬은 사설 군대나 다름없는 무장인들에 의해 지켜지며 ‘독립국가’처럼 운영되고 있다. 파탈룽 지역 일부 섬에선 1990년대 초 14명의 제비집 도둑들이 총격으로 사살되는 사건도 벌어졌다. 태국 정부가 제비집 채취 사업의 투명한 운영을 위해 1997년 관련법을 제정했으나 담당 공무원들이 의문의 암살을 당하는 등 법 집행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이에 비해 경작업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업자들은 기승을 부리는 제비집 도둑을 막기 위해 콘크리트로 지어진 ‘제비집 콘도’ 옥상에 가시 철망이나 전기 펜스 등을 설치하고 있다.그동안 동남아시아 정부는 ‘제비집 콘도’ 관리에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자 말레이시아 산림 당국과 경찰은 지난해부터 사라왁 지역 불법 업체들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이 때문에 이 지역에선 관련 사업이 주춤한 상태다. 그렇지만 중국으로부터의 수요가 늘어나는 한 동남아의 제비집 경작업도 호황일 것이란 전망이다.박성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