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두 번이나 무산…내년께 ‘윤곽’

‘말 많았던’ 외환은행 M&A

최근 농협이 외환은행 인수·합병(M&A)에 관심을 보이면서 그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외환은행의 ‘새 주인 찾기 게임’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현재 농협을 비롯해 외환은행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알려진 곳은 산업은행, KB금융, 하나금융 등으로 국내 금융시장의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망라돼 있다. 여기에 국내 산업자본 진출설, 해외 자본 인수설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매물로서 외환은행은 장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외환시장에서 높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기업에 강한 은행이라는 이점이 있다. 해외 네트워크가 비교적 좋고 자체적인 카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것도 메리트로 꼽힌다.박정현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외환은행의 원화 자산 부문의 점유율이 4.3%에 불과한 반면 외화 부문은 9.2%, 외환시장에서의 거래 규모는 45%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외환은행의 M&A 가치는 외화 부문의 경쟁력에 있다”고 강조했다.물론 M&A를 하려는 입장에서는 걸리는 부분도 있다. 기업에 강한 은행이라는 명성이 적잖이 무너진 상태다. 외환시장이 자율화되기 이전 외환은행이 시장을 독점했기 때문에 국내 기업의 수출입 업무에서 큰 역할을 해 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외환은행이 그간 ‘말이 많았던 은행’이라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전문가는 “해외 자본 유출 논란 등 국민적 정서를 거스를 수 있어 정부도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할 것”이라며 “특히 정부 자본이 들어가 있는 금융회사가 조금이라도 ‘비싸게 샀다’라는 지적이 나온다면 후폭풍이 우려된다”고 내다봤다.그렇다면 외환은행의 M&A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오너가 팔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은행은 일반 기업과 달리 여러 제약 요건으로 인해 그 누구도 쉽게 살 수 없는 물건이다. 하지만 50.1%의 지분을 갖고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론스타는 신흥 시장에 주로 투자하는 외국계 사모 투자 펀드다. 금융 위기로 인해 현재 신흥 시장의 자산들은 폭락해 있는 상태다.따라서 이미 외환은행에 투자한 2조1548억 원 가운데 90% 가까이 되는 1조8810억 원을 블록세일과 배당으로 회수한 론스타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합치면 5조 원대에 이르는 지분을 최대한 빨리 처분해 값이 떨어진 또 다른 신흥 시장에 투자할 필요성이 생겼다. 이와 함께 그간 KB금융, HSBC와의 매각 계약이 두 번이나 무산되며 체면을 구긴 론스타는 비교적 친기업 성향의 현 정부 내에 매각을 마무리해야 하는 게 무난한 선택일 수 있다.또 일부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최근 부임한 래리 클레인 행장의 이력에도 주목하고 있다. 래리 클레인 행장은 캐피털원파이낸셜 대표와 CVC캐피털파트너스 고문을 역임해 온 M&A 전문가로 통한다. 특히 래리 클레인 행장이 최근 단행한 조직 개편 역시 외견상으로는 조직 간의 시너지 극대화를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보이지만 결국 외환은행의 상품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결단이라는 분석도 있다.올 초부터 외환은행의 주가는 큰 폭으로 뛰었다. 지난 3월 6일 5150원에 불과했던 외환은행 주가는 7월 15일 1만450원까지 두 배가 넘게 올랐다. 특히 일부 일간지에서 농협이 외환은행 인수의 유력한 후보자라고 기사를 낸 7월 6일 이틀 뒤인 8일에는 연중 최고치인 1만850원까지 치솟았다.당시 보도에 따르면 정부와 당정, 농림수산식품상임위원회에서 청와대에 농협 신용(금융)·경제(농축산물 유통) 분리에 합의하는 조건하에 외환은행 인수를 통한 신용 사업 부문의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의견 일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에서는 신·경 분리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김석동 농협경제연구소장(전 재정경제부 차관)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까지 곁들여 졌다.하지만 이 같은 보도의 ‘가능성’에 대해 대부분의 시장 전문가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 이유로는 먼저 농협은 ‘은행’이 아니라 ‘농민조합’이라는 점이다. 한화증권 박정현 애널리스트는 “농협의 주요 자금원은 지방 농민”이라며 “기업과 외환에 강점을 지닌 외환은행이 농협으로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대상이긴 하지만 농협의 설립 취지와 어긋나기에 ‘정당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즉, 농협의 자산운용업이나 증권업 진출은 정부가 자기자본으로 운영하는 것이기에 허가를 해 줬지만 농민조합이 시중은행을 인수하는 것은 조직의 문제일 뿐 신용과 경제 부문 분리의 ‘당근’으로 은행을 인수하게 놔둘 경우 정부가 큰 부담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실제로 이 보도 이후 지역 단위 농협에서는 큰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은행 인수 시 경제 부문에 비해 금융 부문이 지나치게 커지는데 이 경우 농민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혜택이 생기냐는 게 주된 논리다.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지금까지 감사만 받던 농협이 과연 금감원의 까다로운 감독을 받아가며 은행을 운영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도 의문스럽다”며 “오는 2011년 새로운 국제 회계기준이 도입되면 농협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3%포인트 정도 떨어져 이를 다시 확충하는데도 5조 원가량이 들어가야 한다”며 실현 가능성을 일축했다.이런 점을 감안할 때 많은 전문가들은 산업은행과 KB금융을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자로 보고 있다. 먼저 민영화를 앞두고 있는 산업은행은 소매금융 부문의 매출이 거의 전무하다. 이 때문에 외환은행을 인수해 소매금융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리다. 실제로 오는 10월 산은지주사와 한국정책금융공사(KPBC)로 분리될 예정인 산은은 지난 5월 산은지주사를 세계적인 투자은행으로 키우려면 시중은행과 합병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한 전문가는 “론스타는 되도록 가격을 높여 받는 것과 함께 ‘부드럽게’ 우리나라 시장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할 것”이라면서 “HSBC로의 매각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정부였다는 점에서 결국 정부의 의지를 대변하는 산업은행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근 정부가 농협과 산은에 은행 M&A와 관련해 ‘입조심’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결국 괜히 외환은행의 몸값을 올리지 말라는 신호였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물론 산업은행으로서도 외환은행 인수는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 앞서 잠깐 언급한 대로 외환은행을 둘러싼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해외 자본 유출 논란’은 태풍의 핵이 될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또한 산은은 ‘민영화 일정도 바쁘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박정현 애널리스트는 “산은의 경우 일단 민영화 플랜이 확정된 후에나 M&A가 가능할 것”이라며 “오히려 산은의 경우 또 다른 정부 소유 은행인 우리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를 보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즉, 논란이 있는 외환은행보다 규모는 물론 시너지 효과가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되는 ‘초특급 매물’인 우리은행과의 합병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KB금융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형편이다. 먼저 소매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국민은행은 그 위상에 비해 기업금융과 외환 업무에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외환 업무의 경우 국내 메이저급 은행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어 외환은행 인수 시 큰 시너지가 있다. 아울러 KB금융의 숙원 중 하나인 해외 진출도 외환은행 지점망을 통해 비교적 쉽게 추진할 수 있다.이 때문에 실제로 이미 KB금융은 지난 2006년 외환은행 인수를 눈앞에 뒀던 적도 있었지만 막판에 무산된 바 있다.또 최근 이뤄진 1조 원대의 증자 역시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이뤄진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물론 애초 2조 원대 증자를 꾀했던 KB금융의 증자 금액이 1조 원으로 반 토막나면서 취약 부분인 증권과 보험 부문의 M&A 쪽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1조 원의 증자는 5조 원대로 예상되는 외환은행 경영권 인수를 위해 충분한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KB금융의 2분기 예상 이익을 감안하면 KB금융의 자회사 출자 한도는 3조5000억 원까지 점프한다. 여기에 올해 하반기 순이익 전망치는 6500억 원에 달해 출자 한도가 4조5000억 원까지 올라간다. 또 일부 자사주를 팔면 출자 한도를 더욱 키울 수 있다.최정욱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KB금융은 자산 기준으로 우리금융에 뒤처져 있다”며 “‘규모의 경제’를 이뤄 비용을 절감하고 부동의 1위를 탈환하기 위해서는 외환은행 인수가 절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최 애널리스트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업계 전문가들은 자금력이나 은행 인수의 정당성 등 여러 가지 이유는 물론 ‘인수에 별 무리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KB금융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추세다.이 외에도 해외 사모 펀드(PEF)설, 하나금융 및 최근 하나금융의 카드 부문과 지분 제휴한 SK의 공동 인수설, 산업자본 인수설 등 여러 가지 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 모두 현실화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다.일단 해외 PEF의 경우 국제 금융 위기의 여파로 인해 자금 조달에 문제가 있을뿐더러 론스타가 ‘데인’ 바 있는 한국의 은행 인수에 큰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때문에 최근 론스타가 몇몇 해외의 투자자와 접촉했다는 보도 역시 아직 ‘공식적’으로 외환은행의 매각을 언급한 바 없는 론스타가 시장에 어떤 ‘시그널’을 보낸 게 아니냐는 의혹이 크다.그렇다면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해외 자본은 국내에 일정 정도의 은행 영업 기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경우 인수 여력이 있는 곳은 HSBC 정도다. 이 때문에 7월 16일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마이클 게이건 영국 HSBC 그룹 최고경영자가 단독 면담을 가지면서 불거진 HSBC 재인수설도 등장한 것이다.하나금융의 경우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한 단계 점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다. 최정욱 애널리스트는 “하나금융의 경우 최소 2조 원 이상 증자해야 하는데 이 경우 국민은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주주 가치의 훼손이 염려된다”며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는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또 산업자본 인수설 역시 아무리 금융업에 대한 산업자본의 지분 매입 제한이 상향 조정된다고 하더라도 가능성이 낮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박정현 애널리스트는 “현재 국회서 논의되는 것처럼 금융지주에 대한 산업자본의 지분 참여가 10%까지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지분으로는 경영권을 행사하기 힘들다”며 “만약 한 대기업이 은행의 대주주가 된다면 자신의 재무 정보를 다 볼 수 있는 이 은행에 다른 대기업이 거래하려고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이 때문에 산업자본이 외환은행 인수전에 뛰어든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지분 참여’ 수준일 것이며 그렇다면 외환은행보다 훨씬 메리트가 있어 보이는 우리은행이나 산업은행의 지분에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결국 외환은행 인수전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은행 산업 재편론’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즉, 론스타의 의지는 물론 민영화를 목전에 둔 산업은행 우리은행 기업은행 우체국금융부문 등의 향방, 정부의 정치적 선택, 국민 정서,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참여 확대 여부 등 다양한 변수들의 조합이 최대한의 이상적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만 외환은행 매각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점이다.조병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환은행 매각의 윤곽은 “적어도 내년 초는 돼야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라며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아직 정확한 분석을 내기엔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취재= 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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