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같다면 호주산이 미국산 이긴다

뚜렷하게 구분되는 쇠고기 시장

이명박 정부 들어 일어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을 든다면 그것은 아마도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일 것이다. 인간 광우병이 몇 년의 잠복기를 거쳐 발생하는 만큼 미국 쇠고기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광우병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 현시점에서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아직도 미국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풀리지 않은 문제에 대해 개개인은 자신의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습득하려는 경향이 있다.광우병 자체는 과학의 영역이지만 그 위험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심리적 영역이다. 사실이 명확하지 않을 때 소비자는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저렴한 미국 쇠고기를 구매할 것이고,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몇 년이 지나면 병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국 쇠고기가 아무리 싸다고 할지라도 먹지 않을 것이다. 식품은 안전성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가격이나 품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지금은 농심라면이 라면 시장의 부동의 1위이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라면 시장의 1위는 삼양라면이었다. 그러던 것이 언론에 유지라면 기사 사건으로 한순간에 순위가 바뀌게 됐다. 유지라면이 정말 해로운지 여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사법적 과학적 판단이 내려졌지만 소비자의 인식까지 바꿀 수는 없었다. 그 이후 삼양라면은 다시 1위를 회복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었다.한편 맥주 시장에서는 OB맥주가 1위였지만 페놀 방류 사건으로 일순간 순위가 역전돼 지금까지 OB맥주는 1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OB맥주의 맛과 향은 그 이전과 이후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변한 게 있다면 그것은 소비자가 OB맥주에 대한 인식이다.한 사건은 과학적 증거가 없는 잘못된 언론 보도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고, 한 사건은 명확한 피해가 있었던 사건이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은 상품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피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 여부와 상관없이 한 번 형성된 소비자의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이번에는 가정주부를 대상으로 한우와 수입 쇠고기에 대한 구매 행동을 측정해 봤다. 가정주부가 미국 쇠고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견을 물어도 알 수 있지만,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구매 행동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테스트 결과 불고기용을 기준으로 한우는 600g 기준 1만8500원에, 호주산과 미국산은 1만3000원에 판매한다면 한우를 구입하겠다는 비율은 51%, 호주산은 47%, 미국산은 2%로 나타났다.즉, 호주산과 미국산의 가격이 같다면 미국산을 구매할 소비자는 2%밖에 안 된다는 의미다. 소비자는 가격이 같다면 호주산을 미국산보다 월등히 더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광우병에 대한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소비자들의 생각은 호주산과 미국산을 동등하게 비교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한우는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판매량이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한우에 대한 고객의 충성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쇠고기를 구매할 때 가격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절반 가까이 된다는 의미다. 한우 가격이 인상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는 미국 쇠고기를 구입하기 보다는 호주산 쇠고기를 선택하는 것으로 봐서 여전히 미국산에 대한 불안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한편 가격이 저렴하다면 호주산 쇠고기를 구매하겠다는 고객층도 절반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가격을 할인함에 따라 호주산 쇠고기 소비량은 43%에서 48%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가격이 할인되더라도 크게 증가하지 않은 이유는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한우를 구매하던 소비자가 호주산을 구매하지는 않기 때문이다.즉, 쇠고기 시장은 한우 시장과 수입 쇠고기 시장이 명확하게 구분돼 있어 한쪽 시장에서의 가격 할인이 다른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쪽 소비자는 한우라는 원산지를, 다른 쪽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을 기준으로 쇠고기를 구매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인식이 행동을 결정한다. 하지만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역으로 행동을 통해서다.황경남·컨슈머초이스( thechoice.kr) 대표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