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버블 뺄 ‘인증제’ 시급하다

진단 - 녹색산업 정책의 현주소

지난 6월 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09 대한민국 창업대전’에서 뜨거운 핵심 이슈는 ‘그린’이었다. 각 벤처기업들은 친환경, 천연, 이산화탄소 배출 제로, 에너지 고효율 등의 단어를 강조하며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흐르고 있는 ‘녹색 조류(潮流)’에 따라가고 있음을 내세웠다. 심지어 변기, 주택 단열재, 일회용 용기마저 신개념 녹색 기술이라고 홍보하고 있었다. 이러한 벤처기업들뿐만 아니라 발전소, 댐·수질처리장 건설, 전기선 제조 등과 같은 전통산업마저 녹색의 가면을 쓰면서 무엇이 진정한 녹색산업이고 녹색 성장인지 개념도 모호해지고 있다.MB 정부가 녹색 성장을 부르짖으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잇따른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한편 녹색 경제가 유행하자 너도나도 녹색을 표방하며 녹색 바람이 과열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녹색산업의 붐을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보며 투자자들이 몰리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녹색 성장 비전 발표 이후 금융 공기업을 중심으로 녹색 여신 우대와 보증 확대를 추진하고 있고 민간 금융회사들도 녹색 여·수신과 녹색 테마 펀드를 내놓고 있다. 국내 시중은행들은 단기 부동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녹색예금’, ‘녹색적금’ 등을 경쟁적으로 선보였고, 새로운 금융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상반기에 3조 원의 자금이 모였다.그러나 녹색산업은 불확실성이 크고 투자 회임 기간이 장기라는 특성 때문에 단기간에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우리는 이미 정보기술(IT) 버블을 경험한 바 있다. 지난 1999년부터 2000년 상반기 IT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 세계 주식시장은 1999년 한 해 동안 기록적인 상승세를 기록했고 2000년이 되자 결국 증시는 과열로 붕괴되기도 했다. 현재의 녹색산업 붐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그린 기술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풍력 테마주들이 전성기를 맞고 있음에도 실적이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최근 1개월간 주가가 지속적으로 폭락, 최대 40%까지 떨어지면서 그린 버블의 경고가 한층 설득력을 얻고 있다.반면 현재의 녹색 버블은 과거 IT 버블 때 실체가 없는 IT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던 것에 비해 녹색 기술은 이미 알려진 것들이 대부분이므로 차이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이러한 우려는 미국에서도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한 지능형 전력망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관련 지원 정책을 발표한 후, 이 분야는 벤처 투자자들이 가장 매력을 느끼는 투자처가 됐다. 미국 내 상당한 시중 자금이 이 분야에 몰리자 투자 회사인 익스펜션캐피털파트너 소속 다이애나 프로퍼 캐피털리스트는 “벤처자금, 기업자금, 정부 재원 할 것 없이 스마트 그리드 분야에 돈이 몰리고 있는 상황으로 인해 자금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될 것이 걱정된다”며 “그린 버블의 위험성은 현실로 다가왔다”고 CNET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한국 정부는 녹색산업에 대한 붐의 조짐이 거세지자 ‘녹색인증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노대래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녹색 투자 과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적절한 투자 대상의 저변을 확대하는 방안을 함께 마련하겠다”고 공표했다. 기술·프로젝트·기업에 있어 녹색 분야에 속하는지 여부를 명확히 하고 인증을 받은 대상에 한해 지원하겠다는 의도다.금융위는 지난 7월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 보고 자료에서 녹색 기업과 녹색 프로젝트에 대한 보증 규모를 올해 2조8000억 원에서 2013년에는 7조 원까지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녹색산업 지원을 위해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녹색 기업이 발행하는 증권에 주로 투자하는 녹색 펀드를 설립하는 한편 녹색 장기 예금과 녹색 채권 발행도 추진하기로 했다.하지만 아직 녹색 기술에 대한 정확한 정의도 설립되지 않은 상태이며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지식경제부 환경부가 모두 관여하고 있어 담당 부처도 명확히 구분돼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부처들이 관련 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면서 혼선과 중복 투자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녹색 성장을 총괄 조정하기 위해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가 올해 2월 설립됐다. 하지만 녹색성장기본법의 국회 통과가 늦어져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녹색성장위원회는 설립 이후 녹색 기술의 정의를 내리고 인증제 기준을 설립하기 위해 본격적 논의를 시작했지만 현재는 지경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로 그 권한이 이양돼 손을 놓고 있다고 관계자는 밝혔다.인증제와 관련해 녹색성장위원회 녹색기술산업팀의 노영호 사무관은 “녹색 기술, 녹색 기업과 관련한 투자를 활성화하고 이를 위한 공통된 기준을 만들기 위해 검토하고 있다”며 “녹색 기술을 판별하기 위해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되고 있는데 시중의 벤처기업의 기술보다 높은 기준이면 진입 장벽이 될 수 있고, 반대로 기준이 낮으면 그린 버블을 검증하는 기능이 약화되기 때문에 기술의 적정선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예를 들어 태양광 기술의 경우 에너지 효율을 기준으로 일정 % 이상일 경우 녹색 기술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인증을 받으면 세제 지원을 비롯한 금융 지원 등 정부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기 때문에 인증의 전문성과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오는 9월까지 녹색인증과 관련해 세부적인 논의를 마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인증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녹색성장기본법에 근거 규정을 삽입할 예정이다.녹색 기술 벤처기업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고 옥석을 가릴 녹색기술 인증과 그에 따른 정부의 벤처 지원이 시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녹색성장기본법의 국회 통과가 늦어져 녹색산업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회에서 계류 중인 녹색성장기본법이 통과돼야 구체적인 시행령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녹색 제품 인증과 관련해 아직까지도 환경 공해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제품이란 포괄적 정의만 있고 이를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충남 아산의 순천향대학 산학협동관에 자리를 잡은 벤처기업 미래에너지기술(주)은 태양광 추적 장치를 개발해 올해 초부터 납품에 들어갔다. 미래에너지기술은 태양의 움직임을 센서로 감지해 발전판이 자동으로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시스템을 고안, 발전량을 최대 50%나 늘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재생에너지 기술과 관련한 정부 과제로 시작돼 지난 3년간 3억 원의 예산으로 태어났고 충북 음성과 전남 순창의 태양광발전기에 적용되면서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벤처기업으로 등록됐고 신기술로 인정받아 발전, 원자력 기술 경진대회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지만 정부가 최근 지속적으로 발표하는 녹색 기술 지원책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미래에너지기술의 홍진우 대표는 “실제로 우리와 같이 신생 벤처 등 소기업이 정부 지원에 진입하기 힘들다”며 “실질적 기술 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적이나 매출의 기준으로 지원 자격을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성토한다. 즉, 정부의 녹색 성장에 부합하는 기술을 개발해도 관련 규정이나 제도가 현실을 미처 뒤따르지 못해 정상적인 투자나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녹색기업인증제는 이러한 현실과 거리가 있는 기준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많은 녹색 기술 벤처기업의 바람이다.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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