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Yes’ 정치 ‘No’…속내 ‘부글부글’

도전받는 소수민족 정책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천하 분열이 오래되면 반드시 다시 합쳐지고, 합쳐지면 다시 나눠진다).’ ‘삼국지연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지난 7월 5일 중국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발생한 위구르족의 민족 차별 반대 유혈 시위는 중국을 통치하는 공산당의 최대 두려움인 분열이 현실적 문제로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156명의 생명을 앗아간 유혈 사태가 발생한 신장위구르자치구 수도 우루무치에선 위구르족과 한족 간 민족 분규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위구르 사태로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이 또다시 정면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55개 소수민족이라는 분열의 불씨가 또다시 지펴질지, 통일과 혼란으로 점철된 중국의 역사가 올해로 건국 60주년을 맞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반복될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은 13억 인구의 8%에 불과하지만 전체 면적의 64%에 걸쳐 살고 있다. 넓은 지역과 낮은 인구밀도, 교통 불편 등으로 개발이 늦어 경제와 문화 등이 상대적으로 낙후되면서 소수민족의 박탈감은 갈수록 심해지고 이들의 시위와 유혈 진압은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 1990년 이후 유혈 사태만 20여 차례나 벌어졌다.특히 티베트와 신장 네이멍구 등 소수민족 거주지 대부분이 국경 지대여서 유사시 외국 세력의 암묵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소수민족 자치구역은 2만2000km에 달하는 중국의 육지 국경선 가운데 90%인 1만9000km를 차지한다. 조선족과 몽골족, 러시아족 등 34개 소수민족이 이웃 국가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변경 지대에서 살고 있다.중국이 가장 부담스럽게 여기는 소수민족은 위구르족과 티베트족(장족)이다. 위구르족은 이웃 이슬람 국가들의 지원으로 무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더욱이 위구르족의 독립 움직임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위구르족은 아랍인과 같은 외모는 물론 종교 문화 언어 등 모든 면에서 한족과 이질적이며 1759년 청나라 지배를 받기 시작한 이후 42차례에 걸쳐 독립운동을 벌였고 1865년에는 봉기로 잠시 독립을 이루기도 했다. 국공내전(國共內戰:항일전쟁 후 중국 재건을 둘러싸고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벌어진 국내 전쟁)의 틈을 타 1933~34년, 1943~49년 독립국가인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을 건립했으나 1949년 완전한 중국의 지배 체제에 편입된 위구르족들은 이후에도 무장 분리 독립운동 단체인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이 주도하는 독립운동을 벌여 왔다.위구르족의 분리 독립운동과 함께 티베트 문제 역시 난제라고 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공식 건국한 이듬해인 1950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이 진주, 강제 합병한 이후 티베트의 독립 요구는 끊이지 않았다. 티베트자치구에서는 지난해에도 대규모 유혈 시위가 터지는 등 해마다 크고 작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위구르와 티베트의 분리 독립 움직임에 느슨하게 대처할 경우 자칫 다른 소수민족들의 독립 욕구를 자극하게 돼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을 우려한다.소수민족과 한족 간 분쟁이 국경 지대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올해 초 베이징과 맞닿아 있는 허베이성에서는 수천 명에 이르는 한족과 회족(무슬림)이 충돌했다. 충돌은 정월 대보름을 맞아 성 내 뉴진좡 회족 자치현에서 회족과 한족 아이들이 폭죽을 터뜨리는 과정에 발생했다. 아이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고, 어른들이 합세하면서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민족 정책은 문화적 민족주의는 허용하되 정치적 민족주의는 불허한다는 것이다. 당나라 시절 군사적 수단과 정치적 압력을 이용해 변방을 통제하고 경제적·물질적 이익을 제공하는 ‘당근과 채찍’ 정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전문가 존 리는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한족 중에는 변방을 제압함으로써 중국의 영광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관영 신화통신이 위구르 사태 직후 내놓은 논평을 통해 중화민족의 부흥을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로 민족 단합을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중국은 형식적으로는 소수민족에게 자치권을 부여하고 있다. 1984년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에서 소수민족 지역 자치법을 통과시킨 중국은 5개 자치구와 30개 자치주, 120개 자치현 및 1100여 개의 민족향을 두고 있다. 소수민족 우대 정책도 적지 않다. 최근 충칭시의 한 한족 지방 공무원이 자신의 딸을 투자(土家)족으로 바꿔 베이징대에 입학을 신청했다가 들통 나 합격이 취소됐다. 충칭시는 민족을 위조해 입학원서를 낸 31명의 입학을 취소했다. 대학 입시 만점이 750점인데 소수민족에게는 20점을 가산해 주는 우대 정책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중국에서 소수민족은 또 ‘한 가구 한 자녀’ 출생 제한을 받지 않는다. 허저(赫哲)족 등 극소수인 소수민족은 출산 장려금을 받는다. 소수민족은 각 단위의 당서기는 못되지만 자치구 주석, 자치주 주장, 자치 현장 등을 맡는다. 인민대표대회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구 인구수도 소수민족은 적다. 17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2987명 중 소수민족은 411명으로 13.8%다. 이는 전체 인구 중 소수민족의 9.4%(2005년 기준)보다 높다.하지만 소수민족 거주지역의 부(富)를 한족이 차지하고 지방권력 진출 기회도 상대적으로 제한되면서 중앙정부에 대한 불만은 갈수록 확대되는 모습이다. 배리 사우트만 홍콩과기대 교수는 “신장 지역 내 주요 국영기업에서는 위구르인들에게 채용 자격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일반 회사 임금 역시 한족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신장의 위구르족들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더듬거리는 중국어로 “상당수의 위구르인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중국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며 “우리는 중국인이 아닌 이방인으로 고립돼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중국은 1980년대부터 티베트와 신장위구르자치구로 한족을 대대적으로 이주시키는 변경 안정화 정책을 시행했다. 시간을 두고 소수민족을 한족으로 동화시키겠다는 의도였지만 결과적으로 자치구 내 소수민족과 한족 간 불화를 키우는 격이 됐다.소수민족 자치구와 자치주의 행정수반을 해당 지역 소수민족으로 임용하는 등의 유화책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조직의 부(副)는 돼도 정(正)은 못 된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또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중국 중앙정부의 동화 정책으로 뤄바(珞巴)족의 경우 그 수가 3000명에 그치는 등 5개 민족이 1만 명 이하의 인구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만주족을 비롯해 자기 민족의 언어를 잃어버린 민족도 늘어가고 있다.◇ 1953년 중국의 제1차 인구센서스 때 등록된 민족 명칭은 무려 400여 개에 달했다. 이후 중국은 언어·지역·경제·문화의 공유 여부인 과학적 특징과 민족 단위로 존재하려는 의지 등 두 가지 기준에 입각해 민족 식별 작업을 펼쳤다. 1979년 윈난성에 사는 지눠(基諾)족이 단일민족으로 확인되면서 모두 55개의 소수민족이 확정됐다. 그러나 아직도 중국엔 73만여 명의 미식별 민족이 남아 있다. 가장 최근 이뤄진 2000년의 제5차 인구센서스를 보면 12억4261만 명의 전체 인구 중 소수민족은 1억449만 명으로 8.41%를 차지했다. 가장 많은 소수민족은 좡(壯)족으로 약 1618만 명, 2위는 만주족으로 약 1078만 명, 이어 먀오(苗)→위구르→투자(土家)족 순으로 연결되며 조선족은 약 192만 명으로 13위다. 가장 적은 뤄바(珞巴)족은 2965명에 불과하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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