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과 ‘신뢰’로 사신 80년

386, 486, 2030, 7080 등등등…. 요즈음엔 숫자를 이용해 사회적 세대 구분이 이뤄지기도 한다. 1931년생인 아버지 세대는 그러면 무엇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봤다. 영화 소재로 많이 사용된 일제강점기, 광복, 6·25전쟁, 근대화와 민주화, 세계화 등 수많은 역사의 질곡을 거쳐 온 바로 그 세대들 말이다. 그래서 팔순이 머지않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기 전에 숫자를 적어 보았다.아버지는 저녁 식사 때마다 반주를 즐겨하셨다. 고등학교를 부산에서 마치고 서울로 유학 온 필자는 방학마다 부산 집으로 내려갔다. 아버지는 저녁 반주로 소주 한 병을 하시면서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하지만 필자가 회사에 들어가고 결혼하면서, 특히 무던히도 바빴던 애널리스트 생활로 인해 부산 고향집에 내려가는 빈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필자가 20대, 30대, 40대로 향해갈 때마다 아버지의 반주 실력(?)도 세월의 흐름과 반비례했다. 필자의 대학 시절 아버지의 주량은 소주 한두 병은 거뜬하셨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소주 한 병이 반 병으로 변했다. 이후 소주는 맥주로 가벼워졌고 최근에는 소주 한두 잔에 만족하시는 정도다.반주를 즐겨하시던 아버지는 요즈음 필자에게 이르기를 “얘야 늙어서도 친구들과 소주 한잔하려면 조금씩 마셔라”고 하신다. 마치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오늘보다는 내일을 생각하라는 말씀이었다.항상 오늘을 성실하게 생활하시는 아버지는 지금도 매일 아침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철저한 건강관리는 팔순이 가까운 연세에도 적은 양이나마 반주를 즐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필자도 1주일에 3~4일은 운동으로 건강을 돌보려고 한다. 이렇듯 아버지의 생활이 나의 생활 습관으로 전이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더 강하게 말이다.사실 아버지는 건강을 유지하는 성실성을 당신의 사업에서도 적용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 전자 부품 사업을 시작하셨다. 아버지는 팔순에 가까운 지금도 사업장에 나가셔서 지난 세월의 경험을 공유하신다.누구에게도 치우침 없이 고객과 부품 거래처 등에 일관되게 성실하게 대한 것이 지금까지 전자 부품 제조업을 유지할 수 있게 한 것 같다. 30여 년을 동일한 원재료 구매처를 이용하고 있으며 고객도 동일한 기업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아버지 특유의 신뢰와 성실성의 결과로 보인다.사실 작년 불어 닥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우리 세대에게는 100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위기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는 물론 6·25전쟁을 전후해 생사를 넘나들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당신에게는 정말로 ‘위기도 아닌 위기’였던 듯하다. 그 때문에 아버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긍정적인 사고와 그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강조하신다.며칠 전에도 아버지는 필자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다. 첫 번째는 건강이다. 몸이 강건해야 어려운 일을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두 번째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라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감을 가져야만 하고자 하는 일들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끝으로 성실하게 지속적으로 일을 하라는 것이다. 성실성이야말로 신뢰를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하셨다. 아버지는 여전히 필자가 미더워 보이지 않는가 보다. 걱정하시는 아버지가 있어 필자는 든든하다.예전과 다르지만 아버지가 여전히 부산 집에 계신 것만으로도 든든해지는 요즈음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생활, 그리고 아버지의 조언을 필자도 더욱 따르려고 하고 있다. 아버지를 보면서 두 딸의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참으로 무거운 느낌이 든다. 과연 나는 아버지만큼 할 수 있을까. 민후식·템피스투자자문 운용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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