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돌려줘야’…국보급은 시침 ‘뚝’

불붙은 약탈 문화재 반환 논쟁

최근 세계 각국이 약탈 문화재 반환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 중이다. 일부 국가 간엔 순조롭게 유물 반환이 이뤄지고 있는 반면 일각에선 국가 간 자존심 대결 양상으로 번지며 마찰음을 내고 있다. 널리 알려진 파르테논신전의 엘긴마블(Elgin marbles)과 중국 원명원의 12지신 두상에서부터 이름 모를 조그만 도자기 파편까지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의 소유권을 놓고 세계 각지에서 끊임없는 힘겨루기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AF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부는 약탈 혹은 도난당했다가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으로부터 최근 돌려받은 유물 14점을 7월 2일 공개했다.클리블랜드 미술관은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문화부와의 협상에서 다른 유물의 장기 대여 및 향후 공동 전시를 조건으로 유물 반환에 동의했었다. 이날 공개된 유물은 고대에서부터 중세까지의 이탈리아 지역 문명을 보여주는 희귀품들이다. 기원전 9∼8세기 사르데냐 지방의 궁수(弓手) 청동상과 1960년대 시에나 인근 교회에서 도난당한 14세기의 행렬용 도금 십자가, 기원전 6세기 에트루리아인의 은팔찌 한 쌍, 기원전 5∼4세기 이탈리아 남부 지방의 도자기 등이 포함됐다.로마제국과 르네상스의 발현지인 이탈리아는 도난 혹은 약탈당한 뒤 해외로 팔려나간 유물의 반환 운동을 꾸준히 벌여 왔었다. 앞서 협상을 통해 캘리포니아의 J 폴 게티 미술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으로부터도 유물을 돌려받은 바 있다.미국은 호주 원주민(아보리진)의 유물도 호주에 돌려줬다. 호주 일간 디 오스트레일리안은 최근 “미국이 원주민들의 종교의식에 사용된 유물을 반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시애틀 예술박물관이 고대 중앙 호주 아보리진(Aborigine) 남성들이 신성의식에 사용한 뼛조각 ‘추링가(Tjurunga)’를 호주 국립박물관에 전격 반환하기로 결정했다는 것. 박물관은 1971년부터 추링가를 소장해 왔지만 단 한차례도 일반에 공개한 적이 없었다.◇그러나 이 같은 ‘부드러운’ 문화재 반환 움직임은 각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국보급 문화재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원래 그리스 파르테논신전을 장식했고, 현재는 영국 대영박물관의 대표 유물인 엘긴마블이 대표적인 사례.엘긴마블의 원소유권을 주장하는 그리스는 지난 6월 총 1억8200만 달러(2300억 원)를 들여 파르테논신전 관련 유물 전시관인 ‘아크로폴리스 뮤지엄’을 개관하면서 영국이 약탈해 간 파르테논신전의 조각상들을 반환하라고 재차 요구하고 나섰다.영국이 “그리스가 제대로 된 보존 시설이 없는 만큼 인류 문화의 보고를 보존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데 대해 최첨단 현대식 박물관을 갖추고 영국의 주장을 일축하고 나선 것.엘긴마블은 200년 전 그리스가 터키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그리스 주재 영국 공사였던 엘긴 경(卿)이 영국으로 밀반출한 100여 점의 파르테논신전 내부 조각상을 말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등 고대 그리스 조형 미술의 정수(精髓)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평가받고 있다.그리스의 유물 반환 정면 공세에 대영박물관 측은 “대영박물관에 전시해야 전체 세계 문명의 맥락에서 이 유물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며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그리스가 조각상의 영국 소유권을 인정하는 조건에서 장기 임대만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이에 앞서 올 초에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제2차 아편전쟁(1856~1860년) 직후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장인 원명원을 파괴하고 약탈해 간 청동 12지신상 중 쥐머리와 토끼머리 청동상이 파리 크리스티 경매에 나와 논란을 빚었다. 중국 원명원관리처는 “약탈해 간 중국 문화재를 경매하는 것에 반대한다”면서 “문화재들을 모두 중국에 반환하라”고 강력히 항의하며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다.한편 일본에선 후루야 게이지 중의원을 비롯해 자민당 의원들이 ‘해외 미술품 공개촉진 법안’을 상정했다. 이 법안은 해외 미술품이 일본에 대출돼 전시되는 도중 소장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실질적인 소유권’을 주장, 강제적으로 되찾으려는 사태를 미리 막는다는 명분이지만 일본이 약탈한 미술품의 보호를 보장받으려는 의도로 분석된다.김동욱·한국경제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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