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에 지칠 때 ‘순수’가 뜬다

현실원칙 ④

이 주의 명작안철수,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안철수 열풍이 거세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후 온라인을 후끈 달구고 있다. 어떤 누리꾼(네티즌)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한 인간에게 매력을 느끼기는 처음”이라며 ‘인간 안철수’에 환호하고 있다. 안철수의 매력은 ‘순수에 대한 열정’이라는 말로 대변된다.안철수는 백신 개발자, 안철수연구소 창업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또한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로도 명성이 높다.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김영사 펴냄)’이란 책에는 순수가 실종된 우리 시대에 그가 살아가는 방정식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그는 글쓰기에서도 순수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이해타산으로 글을 써서는 안 되며 글에는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개인적인 이해타산이 포함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글은 ‘역사의식’을 갖고 써야 한다. 또 다른 원칙은 내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다.그의 순수에 대한 열정은 “원칙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지킬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말로 요약된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과감히 버리고 원칙에 충실하면 당장은 손해인 듯 보이지만 결국 그것이 옳은 결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때론 용기가 필요하다. 더구나 상황이 어려울 때 원칙을 지키는 것은 상당히 용기가 필요하다. 안철수연구소에는 안철수의 친구뿐만 아니라 친척이 단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원칙은 작은 소신을 지키는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원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든든한 지원자다. 그와는 반대로 위선적인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적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왜곡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숨겨진 의도가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10년 후를 생각하며 살아가려고 한다.안철수는 의대 교수에서 최고경영자(CEO), 그리고 카이스트 석좌교수로 세 번에 걸쳐 변신을 했다. 더욱이 안정적이고 보장된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에 나섰다. 그는 “요즘처럼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보자면 아마 자신처럼 비효율적인 삶을 산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세 번이나 다른 길을 갈 때마다 그동안 해 온 공부를 모두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14년 동안 배웠던 의학은 하나도 쓰지 못하고 있고, 12년 동안 몰두했던 백신 프로그램 연구도 접었다. 또 CEO 자리도 그만뒀다. 그는 그러나 “대학 때 무의촌에서 봉사했을 때의 마음가짐, 새벽마다 일어나 공부했던 열정이 녹아 지금의 안철수가 됐다”고 말한다. “의과대학에서 배운 지식은 지금의 나에게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 몸에 익힌 열심히 살아가는 태도와 끊임없이 공부하는 습관은 지식보다 훨씬 값진 것이 되었다.그는 “아무리 성취감과 보람 있는 일이라도 열정을 가질 수 없다면 계속해서 그 일을 하기 힘들며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는 더더욱 어렵다”고 강조한다. 그가 변신을 거듭할 때마다 그의 에너지가 되어 준 것은 바로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열정’이었다고 한다. 재미있게 일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다는 것은 오랫동안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는 것과 직결된다.앤더슨 에릭슨 박사(심리학)의 이른바 ‘10년 법칙(the 10-year rule)’이 있다. 10년 법칙이란 어떤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성과와 성취에 도달하려면 최소 10년 정도는 집중적인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10년 동안 집중 반복해 열정적으로 몰입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어느 분야에서 최고수가 되려면 10년간의 집중적인 투자가 있어야 하며 그 이후에 큰 변화가 온다.(앤더슨 에릭슨)안철수는 이른바 ‘10년 법칙’으로 성공 신화를 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대학원 공부와 의대 교수로 있으면서 7년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연구에 몰두했다. 독서광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그에게 7년은 아마도 10년을 압축해 놓은 기간보다 더 긴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는 안철수연구소를 창업한 지 10년 만인 2005년에 CEO에서 물러나면서 또 한 번 변신에 나섰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MBA과정을 거쳐 2008년 카이스트 석좌교수로 변신했다. 일반인들이 성공 신화를 이루기 위해서 10년 법칙이 적용된다면 3번의 성공 신화를 이룬 그에게는 이제 그 기간이 3년 정도로 단축된 것은 아닐는지. 배려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시간 지키기와 인사하기라고 생각한다.안철수의 성공 신화는 시간 관리에 있다. 그는 시간 관리 능력을 자신의 특기로 내세울 정도로 시간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다. 자신의 수강생들이 몇 분 지각해도 꼼꼼하게 성적에 반영할 정도다. 시간 지키기가 바로 타인에 대한 배려의 출발이자 자기 관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직의 동료들에 대한 배려 중에서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으면서도 효과가 가장 큰 것이 시간 지키기라고 강조한다.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런 외부의 도움이 없어도,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스스로의 의지와 동기 부여, 자기 관리를 통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그는 “자기 계발을 하는데 조직의 도움이 없다거나 일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불평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며 “중요한 것은 외부 여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지”라고 강조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장수’는 현대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전략적 사고 없이 무조건 열심히만 하는 관리자’로 볼 수 있다.그는 ‘손자병법’에 나오는 ‘실패하는 장수의 다섯 가지 유형’에서 무엇보다 관리자는 열심히 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일의 우선순위, 중요도 등을 고려하는 전략적 사고가 필수적이라고 분석한다. 출근을 일찍 하는 것만으로, 퇴근을 늦게 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끔 동료들 가운데 이런 유형들이 있다면 경계해야 할 이들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게 결코 안전하지 않다. 안심하고 가는데 그게 제일 위험하다. 사람들이 좋지 않다고 하는 곳에 가는 게 위험하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곳이 더 안전하다.”(필자와의 인터뷰 중에서)안철수는 그 예로 자신이 본 사례를 든다. MBA 동기들 중에는 파이낸스 분야를 가장 많이 전공했다. 그런데 금융 위기로 가장 많이 해고된 사람들이 바로 파이낸스 분야 전문가들이다. 주식시장도 동네 할머니가 주식을 살 때가 가장 위험한 때다. 우리 사회도 사람들은 여전히 많이 몰리는 곳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다.그는 세 번의 변신으로 과거의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모두 헛된 것이 아니라면서 중요한 것은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생활 태도라고 조언한다. 그는 “앞으로 더 큰 의미 있는 일이 있으면 다시 네 번째 도전에 나설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도전하는 분야는 결코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안전한 길은 아닐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 앞에서는 과거를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안철수는 1997년 안철수연구소를 외국의 한 보안 업체가 1000만 달러에 사겠다고 나섰을 때 단호히 거절했다. 당시 매출이 10억 원에 불과했지만 ‘영혼이 있는 기업’으로 만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힘들게 개발한 백신프로그램(V3 Lite)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쉽게 실행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닐 것이다. 그의 책 제목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수’와 ‘순수에 대한 열정’이 아닐까. q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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