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은 ‘세부 사항’ 힘에서 나온다

창업 에세이

창업 전문가로서 상당한 가능성을 가진 식품 제조 회사인 A사가 추진하는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매장을 찾아가 보고는 다소 실망했다. 제조에는 역량이 있었지만 식품 제조업과 외식업을 운영하는 데는 사뭇 다른 역량이 필요한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부족한 게 많았기 때문이다.가장 먼저 음식 맛이 안정되지 않았다. 맛의 깊이는 고객의 재방문을 유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그 업체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본사에는 맛을 책임지고 끌어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맛을 개발하고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불철주야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데, 가끔 한 번씩 맛을 바꾸고 실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외식업에 대한 세부적인 지식이 부족한 것은 실제 매장의 낮은 매출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회사 내에 그런 상세한 노하우를 보유한 인력이 없었다. A사는 세부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를 추가로 영입하지 않고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 보였다.프랜차이즈 본사의 3요소는 표준화 단순화 전문화다. 먼저 전문성이 있고 그 다음에 단순화 표준화가 따른다. 전문성은 세부 사항의 힘이다. 어떤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얼마나 세부성에 강한지 아닌지의 차이다.수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하니까 덩달아 창업하는 사람이 많지만 세부 사항의 힘에서는 천차만별이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인기를 얻으면서 많은 기업들이 이 분야에 새로 진입하고 있지만 전문성을 갖추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다.얼마 전 BBQ치킨&비어의 전장오 사장을 만났다. BBQ치킨&비어는 기존의 BBQ가 술을 팔지 않는 휴게 음식업이라는 점에 착안, BBQ 브랜드를 주점 영역으로 확장한 것으로 치킨에 호프를 결합한 모델이다. 현재 가맹점이 70여 개가 있는데 내가 보기에 BBQ치킨&비어는 생맥주를 판매한다는 점을 빼고 도대체 기존의 BBQ와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궁금했다. 아무리 브랜드를 확장한 사업 모델이지만 휴게 음식업인 치킨점과 치킨호프는 엄연히 고객층과 사업 영역이 다르므로 뭔가 자기만의 개성과 특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필자의 질문에 대한 전 사장의 대답은 이랬다. 마케팅 측면에서 특별한 차별적 요소는 말하기 힘들지만 점포의 매출을 더 많이 올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준비를 많이 했고 지금도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가령 기존 BBQ와 치킨&비어는 메뉴 구성이 많이 다르다고 한다. BBQ는 프라이드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지만 치킨&비어는 호프점이라는 걸 감안, 전 메뉴가 골고루 판매되도록 하고 10시 이후 치킨이 부담스러운 고객들을 위해 가벼운 안주도 다양하게 갖추고 있었다. 또 기존의 8쪽짜리 치킨을 생맥주와 함께 먹기 좋도록 18쪽으로 조각냈으며, 버블 키퍼를 도입해 생맥주를 따를 때 낭비되는 거품을 줄여 원가를 절감했다. 또 두벌 구이 방식을 도입해 치킨이 더 바삭바삭하도록 했고 고객이 주문하면 빠르게 서빙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 가변형 테이블로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게 했고, 주방 조리 시스템을 단순화해 1일 150만 원 매출까지는 주방 인력 1.5인만으로 소화할 수 있게 했다. 생맥주와 관련해 미생물이 생기는 것을 막고 잔을 닦는 세척기를 이용해 잔에 불순물을 없애 맥주 맛을 개선했다. 그리고 4박 5일의 가맹점주 교육에서는 실무 능력을 키워주는 것은 물론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책임감 등에 대해 강조함으로써 가맹점주들이 생계형 창업자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 책임감 있는 기업가 마인드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물론 이 외에도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더 많은 세부 사항이 필요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특별한 마케팅 전략도 필요하지만 업종 특성에 맞는 세부성이 강할수록 기본에 더 강해진다고 할 수 있다.클리닝 업계에서 강력한 세부성으로 성공한 브랜드가 ‘크리니트’라는 회사다.이 회사의 오훈 사장은 원자력발전소 연구원 출신이다. 그가 원자력발전소 근무 당시 만든 매뉴얼은 지금도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큼 세부성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3D 업종으로 꼽히는 청소 분야에 뛰어들어 수십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키워낸 비결은 바로 세부 사항의 힘이다.이 회사의 매뉴얼과 제안서는 중요한 항목들에 대한 관리 지침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어, 누구든지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클리닝에 대한 교육 역시 분야별로 표준화가 잘 돼 있어 누구든지 한 번 입소하면 전문가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크리니트의 가맹점주 중에는 그깟 청소는 나 혼자 배워도 잘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가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노하우의 벽에 부딪쳐 가맹점으로 가입한 케이스가 많다. 그런 점주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청소가 그렇게 어렵고 전문성이 필요한 줄 몰랐다’는 말이다.감자탕 프랜차이즈인 ‘이바돔’은 몇 년 전 가맹점 사업을 중단하다시피하고 기본을 바로 잡았다. 외식업의 생명은 맛인데 언제 어디서든 전 가맹점이 동일한 맛을 내는, 맛에 대한 표준화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식자재 낭비를 줄이기 위해 모든 용기를 계량화하고 통일했으며 전 점포에 표준화된 조리 방법을 부착하고 식재료 입출고 현황을 기록하게 했다.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가맹점의 맛이 이전과 달리 크게 개선됐으며 이는 매출 성과로 반영됐다. 직영점 직원을 비롯해 가맹점주 교육을 통해 거창한 마케팅 구호 대신 매장에서 일어나는 사소하기 그지없는 일을 표준화하고 대응 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실시했다. 물론 그런 노력을 기울여도 모든 게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공들인 만큼 성과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많은 것이 좋아졌다. 가맹점 매출이 올랐으며 매출이 늘자 추가로 점포를 개설하는 가맹주들이 불어났고, 신규 가맹점 개설도 늘었다.대기업이 운영하는 한 중대형 슈퍼마켓에서 작은 아이디어 실천 운동을 벌였다. 첫 번째 아이디어의 실천은 주변에 떨어진 휴지 줍기였다.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매장이 깨끗해지면서 일부러 청소를 할 필요도 없고 고객들이나 점원들의 표정도 훨씬 밝아졌다고 한다.1990년 당시 썩어가는 사과로 묘사되던 뉴욕의 강력 범죄율을 줄이기 위해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시장과 윌리엄 브래턴 뉴욕경찰청장은 지하철 무단 승차, 무단 방뇨 등 경범죄에 대해 강력하게 단속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강력범들을 그냥 두고 엉뚱한 일을 한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경범죄를 단속하면서 강력 범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경쟁이 치열한 자영업에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막상 창업한 후 현장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보면 작은 것부터 제대로 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명품과 명품 아닌 것의 차이는 사소한 실수라도 허용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쓰고 완벽을 지향하면 명품이 되는 것이고, 사소한 것쯤 대충 내버려 두면 싸구려 제품이 되는 것이다.수많은 가맹점을 책임져야 하는 프랜차이즈 본사는 가맹점 매출 증대를 위해 더 많은 세부적인 개선 방안을 찾아내야 할 것이고 매장에서도 조리 방법이나 순서 등 매뉴얼의 준수를 비롯해 매장 청결, 미세하게 변화는 시장 동향의 체크 등 더욱 세부사항에 관심을 가지고 개선해야 할 것이다.과학의 내용은 인과관계의 분석이고 과학의 목적은 원하는 목표 달성을 외부의 힘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통제해 보자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분석한다는 것은 블랙박스 안의 덩어리를 잘게 쪼개서 내가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큰 것을 바랄수록 지금 내 곁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확실히 장악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이 세부 사항의 힘이다.이경희·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 www.changup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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