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된 ‘박리다매’…돌파구 안보여

호주 와인 산업의 자충수

“호주 와인 산업은 터지기 직전 상태의 거품과 같다.”(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최고의 성공 사례로 찬사를 한 몸에 받던 호주 와인 산업이 하루아침에 암울한 미래상에 직면하게 됐다. 2000년대 들어 수출에 주력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함께 세계 4대 와인 생산국의 반열에 올랐던 호주 와인 업계가 ‘저가 와인’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위기에 직면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최근 보도했다.호주산 와인은 지난 1999년부터 2007년 사이에 해외 수출량이 무려 3배나 증가하며 세계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영국 시장에선 ‘공습’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선전했다. 2004년 영국 시장에서 ‘슈퍼마켓에서 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전통의 와인 강자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제치고 와인 최다 판매 국가가 된 것.그러나 더 많은 양의 와인을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박리다매’ 정책은 곧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호주산=저가’라는 인식이 굳어지면서 지난해 수출된 호주 와인은 10년 전에 비해 25%가량 저렴한 가격에 거래됐고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로는 와인 업계가 지속 불가능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여기에 더 저렴한 와인을 공급하는 저가 업체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고 소비자들의 입맛도 계속 변덕스럽게 변하면서 호주 와인에 대한 충성도를 담보하지 못하는 등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 이 같은 악재를 반영하듯 지난해 호주 와인 수출량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9% 감소했다.현재 호주산 와인의 최대 시장인 영국의 경우 수입량의 85%가량이 슈퍼마켓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지난 10년간 영국으로의 수출량은 2배 이상 증가했으나 리터당 가격은 1999년 4호주달러 36센트에서 지난 3월 2달러95센트로 크게 떨어졌다. 주력 시장인 영국 시장에서 대형 유통업자들이 칠레와 남아프리카, 아르헨티나산 저가 와인들과 경쟁시키며 가격 인하 압박을 강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미국 시장에서도 동시에 고전하고 있다. 2007년 피크 때에 비해 올해 미국 시장에서 호주산 와인은 시장점유율 측면에선 4%, 매출액 측면에선 25%나 급감했다.호주 와인 제조업자 제레미 올리버는 “업계는 현재 위기를 맞고 있다”며 “공기를 병에 담아 판매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낮은 가격으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호주의 주요 와인 생산 지역에 가뭄이 지속되면서 와인 생산에도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칠레 등 경쟁국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인건비도 ‘저가’ 유지의 걸림돌이 됐다. 달러화에 대한 호주 달러의 환율도 수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선진국 시장에서의 가격 인하 요구에 대응할 근본 체력마저 고갈되기 시작했다.여기에 1990년대 와인 업계의 황제 로버트 파커가 호주산 시라즈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격찬하면서 시라즈 품종을 위주로 와인 생산에 집중한 것도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들었다. 미국과 유럽의 소믈리에들로부터 “호주산은 시라즈 외에는 볼 게 없다”는 고정관념을 심어주게 되는 등 제품 다각화에도 실패한 것이다.문제는 호주 와이너리 관계자들이 무엇이 호주산 와인을 위기에 처하게 했고, 와인 산업의 근본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호주산 와인에 대한 저가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수술, 긍정적인 이미지부터 다시 만들자는 입장이고 다른 한편에선 차라리 아직 개척하지 못한 중국 등 아시아 시장 개척에 주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힘이 분산되고 있다. 아예 어느 정도 안정적인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고가 소량생산’ 방식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하자는 논의도 있다.1788년 영국 이민자들이 호주에 정착하면서 시작된 호주 와인 산업. 1980년대까지 거의 눈에 띄지 않다가 국제 와인 시장의 신데렐라가 된 호주산 와인이 다시 하녀로 전락할 위기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호주 와인 업계는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잠시 ‘반짝’했던 역사 속 에피소드로 기록될 것인가.김동욱·한국경제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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