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관련 집단소송 해법 찾기

코스닥 상장법인 진성티이씨가 지난 4월 기업 구조조정 및 사모 투자 펀드 전문 회사인 서울인베스트로부터 통화 옵션 상품인 ‘키코’ 관련 외환 손실을 숨기고 분기 실적을 허위로 공시함으로써 주주들에게 입힌 총 800억 원의 피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당했다.이로써 2005년 1월부터 시행된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이 사문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설마 하던 증권관련집단소송의 공포가 가시화된 것이다.증권관련집단소송이란 내부자거래, 주가 조작, 허위 공시 및 분식회계 등으로 특정 기업의 다수 투자자에게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제기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이다.이 소송의 특징은 대표 당사자가 소송을 제기하면 피해자인 다수의 투자자들이 특별히 제외를 요청하지 않는 한 승소의 이익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년간의 논란 끝에 2004년 말에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이 제정돼 2005년 1월부터 자산 2조 원 이상의 대기업부터 시행됐고 분식회계관련집단소송은 2년간의 유예를 거쳐 2007년부터 시행됐다.집단소송제도는 원래 미국에서 시행된 제도로, 증권 관련 분야뿐만 아니라 제품으로 인한 피해 등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제도다. 그중에서 증권 분야의 집단소송이 약 50%에 달하고 있다. 증권 관련집단소송은 주로 주가 하락으로 인해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이 제기하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나 증권시장의 부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통계치를 보면 미국의 경우 벤처 및 닷컴 관련 거품이 붕괴되면서 2001년에 498건의 소송이 제기돼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주식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2006년에는 119건으로 크게 줄었다가 2008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발생하면서 227건으로 증가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집단소송제도는 힘없는 소액 주주와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순기능이 있는 반면 그 폐해도 만만치 않다. 집단소송의 남소로 인한 기업의 비용 증가, 기업 활동의 위축 및 경쟁력 감소, 그리고 원고 측 변호사의 막대한 수임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피해자 보상 등이 그것이다.미국은 2002년에서 2004년에 합의된 집단소송의 90% 이상의 경우 총 손해배상액의 20~40%가 변호사 비용으로 지급됐다고 한다. 62억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월드컴 집단소송에서는 변호사 비용이 무려 3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진성티이씨에 제기된 집단소송이 한 번의 우발적인 사건으로 끝날지, 아니면 줄소송의 시발점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이 소송이 전형적인 증권관련집단소송 사건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2008년에 미국에서 발생한 증권 관련 집단소송에서 그 원인(복수)을 적시한 경우를 보면 사업보고서의 허위 공시 및 기재가 94%, 회계기준 위반이 44%로 내부자거래 23%보다 훨씬 많다. 거액의 외화 손실을 제때 공시하지 않은 진성티이씨의 경우도 사업보고서 공시 위반에 해당한다.집단소송으로 인해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기업에 중장비 부품을 납품하던 탄탄한 중소기업체가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됐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집단소송의 원인 제공자는 공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기업과 그 경영진이라는 것이다. 손실로 인한 시장의 부정적인 반응이 두려워 그 사실을 제때 공시하지 않음으로써 회사가 물어 줄 손실이 천문학적으로 커질 수 있다.우리 기업들이 명심해야 할 불문율은 공시 여부에 대한 판단이 모호한 경우 ‘무조건 공시하라’는 것이다. 약력: 1953년생. 미국 UC 버클리대 경영학 박사. 뉴욕대 스턴 경영대 조교수. 금융감독위원회 비상임위원 및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역임. 금융중심지추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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