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사모 펀드
국내 금융 업계에서 대개 사모 펀드(PEF:Private Equity Fund)를 담당하는 부서는 PE(Private Equity)팀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과거 PEF팀이 PF(Project Finance)팀과 발음상 ‘피이에프’와 ‘피에프’로 비슷하게 들려서 아예 PE팀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취재한 금융 업체들 대부분에서 PE팀이 PEF를 담당했다.국내 은행, 자산운용사, 증권사 등 금융 업체가 운용하는 사모 펀드는 현재 국내 등록된 84개 사모 펀드들 중 40여 개다. GP(General Partner:운용사)별 운용 규모별로 살펴보면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이 1조5180억 원(5개 펀드)으로 가장 많고, KTB투자증권이 1조32억 원(5개)+2795만 달러(1개)로 뒤를 잇고 있다. 그 뒤로 산업은행 9192억 원(5개), 우리투자증권 8475억 원(5개. 자회사 ‘우리PE’ 포함), 신한PE 7600억 원(2개) 순이다.국내 대형 금융사들의 사모 펀드는 흔히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본주의의 꽃’으로 언급되는 사모 펀드가 되기에는 걸음마 단계다. 일단 ‘블라인드 펀드(blind fund:투자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펀드. 공식 명칭은 아님)’가 일반적이다. 이럴 경우 형태는 사모 펀드지만 일반 뮤추얼 펀드와 성격상 다를 것이 없다. 다만 뮤추얼 펀드가 특정 기업 지분의 5% 이상을 매입하지 못하는 것에 비해 사모 펀드는 지배력 행사가 가능하다.1개의 단일 기업에 투자되는 ‘프로젝트 펀드(project fund:투자 대상이 특정된 펀드)’의 경우 국내 사모 펀드들이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보니 LP(Limited Partner:투자자) 모집이 여의치 않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트랙 레코드(track record:운용 실적)가 없기 때문”이라고 표현한다. 외국계 사모 펀드의 성공 사례로 보통 2001년 론스타(lone star)의 강남파이낸스센터(옛 스타타워) 투자가 꼽힌다. 론스타가 GP로 나선 사모 펀드는 페이퍼 컴퍼니인 스타홀딩스(벨기에 소재)를 설립한 뒤 국내 휴면 법인인 ‘씨엔제이트레이딩’을 매입했다. 서류상으로는 씨엔제이트레이딩이 스타타워를 현대산업개발로부터 6500여억 원에 매입한 것이다.(주)스타타워로 이름을 바꾼 씨엔제이트레이딩은 3년 뒤 싱가포르투자청에 9000억~1조 원에 스타타워를 매각했다. 3년 만에 약 3000억 원의 투자 이익을 낸 것이다. 건물 매입 당시 론스타의 사모 펀드에 LP가 투자한 금액은 약 1000억 원이다. 나머지는 금융회사 대출이다. 결국 이 사모 펀드의 이익률은 300%에 달한다.이 과정에서 사모 펀드는 ‘수도권 과밀지역에서 5년 이내 기업이 부동산을 매입할 경우 취득세 3배 부과’ 법조항을 피하기 위해 1996년부터 휴면 법인이었던 섬유 회사를 인수했다. 매각 때는 세금 회피를 위해 50.01%와 49.99%로 나눠서 매각했다. 부동산을 소유한 회사 지분 51% 이상을 매각할 경우 부동산 거래로 간주해 양도소득세를 매기는 법 때문이었다. 이후 서울시는 ‘지분 50% 초과’로 조항을 바꿨다.국내 사모 펀드들은 론스타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가능할까. 국내 금융회사 PE 담당자들은 “아직은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일단 국내 사모 펀드는 부동산 직접 매입 또는 부동산 매입을 목적으로 하는 주식거래를 할 수 없도록 제한된다. 금융 당국이 사모 펀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중소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도록 유도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자산을 매각할 경우는 가능하다. 또 외국의 투자 대상을 발굴하고 법망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해 대규모 투자 수익을 올린 사례가 없어 노하우가 부족하다.그래서 국내 금융업계 사모 펀드들은 대개 블라인드 펀드가 많고, 대부분 제조업 중심의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경우다. LP들은 대개 국민연금 사학연금 교원공제회 군인공제회 등의 연기금과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의 금융회사가 대부분이다. 미국 등 해외 사모펀드는 LP가 연기금 외에도 기업 연금, 정부의 연금, 금융회사, 대학 재단, 개인(wealth family) 등 다양하다. KTB투자증권 구자용 PE투자본부장(전무)은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KTB투자증권의 경우 연기금 25%, 금융회사 25%, 정부 25%, 자체 자금 15%, 기타 2금융권이 LP로 참여한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산업은행 PE실은 “국내 사모 펀드들은 대부분 연기금 아니면 금융회사다. 현재 구성된 국내 사모 펀드들을 보면 절반은 GP들의 자체 자금”이라고 답했다.해외에서는 록펠러 가문 등 ‘웰스 패밀리’로 불리는 개인이 LP로 나서는 것이 일반화돼 있지만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LP 30인 이하, 최소 출자 금액 개인 10억 원, 법인 20억 원이다 보니 웬만한 개인이 자금력을 갖고 GP를 선정해 사모 펀드를 결성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에 대해 LP 참여자가 많으면 의견 충돌로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5인 이내, 최소 출자금도 100억~200억 원으로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이렇게 개인의 사모 펀드 결성이 힘들다 보니 결국 정부나 연기금 등이 LP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큰손’만이 투자자로 나서다 보니 LP의 입김이 세고, 또 수수료를 높이지 못해 사모 펀드 발전이 더디다는 의견도 있다.투자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블라인드 펀드가 대부분이다 보니 투자자 모집에 곤란을 겪기도 한다. 산업은행이 지난해 9월 말과 올해 5월에 등록한 KDB밸류3호와 KDB턴어라운드는 투자자 유치가 되지 않아 앞서 등록한 사모 펀드들의 출자액인 3000억~4000억 원에 크게 못 미치는 946억 원에 그치고 있다.이에 비해 우리투자증권의 마르스 제1~4호는 프로젝트 펀드다. 마르스 제1호는 샘표식품, 마르스 제2호는 레이크사이드CC에 투자됐다. 투자처는 보통 비공개지만 상장사에 투자한 경우 공시를 통해 대주주가 드러나기 때문에 마르스 제1~2호의 경우는 잘 알려져 있다.한계도 있지만 반면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게 사모 펀드의 묘미다. 구 전무는 “외국계 사모 펀드는 빅딜(대형 거래)에만 관심이 있다며 전국 방방곡곡에 숨어 있는 작지만 알찬 투자처를 찾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금융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내 사모 펀드의 역량을 키워야 하며 그래야 해외 자금 조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