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사막 ④
·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난 지 22년이 됐지만 아직도 이 땅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과 ‘아침이슬’이 울려 퍼진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고 유행가가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1980년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한길사 펴냄)’를 꺼내든다. 역사에서 해답을 구할 수 있을까. 조급해진 마음에 책장을 넘기는데, 순간 소름이 돋는다. 그러므로 남이를 죽인 것은 유자광이 아니고, 그때 사회에 있었던 불안의 공기, 서로 의심하고 시기하는 공기다. 그리고 그것은 필시 세조에서 시작된 일일 것이다.(중략) 터무니없이 생사람을 많이 죽인 세조 이후의 살기 많고 음모와 무고가 성히 유행하던 거기서부터 나온 것일 것이다.우리 역사를 보면 고려 예종 때 윤관 장군, 세조 때 남이 장군, 인조 때 임경업 장군은 적이 아닌 우리 내부의 모함에 의해 타살됐다. 기득권 세력들은 될수록 현상 유지를 원하거나 자기네의 지위를 잃지 않으려고 한다. 공적을 시기하는 정적들은 나라를 구한 공신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함석헌은 기득권 세력들에 의한 ‘공신 토벌’이라고 명명한다.“조정 신하들은 전부가 동맹파업해 며칠이 되어도 출근하는 놈이 없었다. 나라 도둑 토벌에는 그렇게도 약했던 사람들이 공신 토벌에는 어찌도 그리 강하냐?” 이는 이순신 장군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이순신은 자신의 바람막이가 되어준 서애 류성룡이 조정에서 탄핵당해 물러나는 날에 전사(1598년 11월 19일)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그런데 함석헌은 남이를 죽인 것은 유자광이 아니며 서로 의심하고 시기하는 역사의 공기라고 강조한다. 조카를 죽이고 왕권을 빼앗은 세조의 살인 정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 의심하고 시기하는 역사의 공기는 가시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불렀을지도 모른다. 주몽이란 활 잘 쏜다는 뜻이지만 그 주몽이 동명성왕이 된 것은 활만 잘 쏘아서 된 것은 아니다. 활을 잘 쏜다면 몇 사람이나 잡을까? 위대하려면 민중 전체를 잡아야 한다.민중을 잡는 것은 정신이요, 뜻이다. 민중은 뜻을 찾는 것이다. 이는 이즈음의 정국을 살펴보면 피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뜻이 있는 것을 보면 민중은 몸도 마음도 다 바친다. 민중은 위대해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위대함을 한 번 보면 절대 숭배한다. 주몽이 위대한 것은 민중에게 뜻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구려가 위대한 것은 그 민중이 위대한 국민적 이상에 가슴이 부풀고 타올랐기 때문이다. 나라를 통일하는 것은 칼도 아니고 법도 아니다. 민심을 하나로 하는 것은 어떤 위대한 국민적 이상을 주는 일이다. 사람이 가슴속에 한 조각 이상을 품고, 거기에 가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을 때까지는 산 사람이고, 그 이상이 한 번 죽어 놓으면 살았어도 산송장이다.역사를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싸움으로 본다면 이성계의 반란은 현실주의의 승리였고 이후 우리의 역사에는 사대주의와 노예근성이 활개를 쳤다. 조선은 이소사대(以小事大: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일)가 국책으로 결정됐고 스스로 소국, 소민이 됐다. 함석헌은 북벌에 나선 최영을 죽인 이성계의 반란을 “우리 역사의 키가 아주 결정적으로 고난의 바다에 놓인 날”이라고 평가한다. 이해타산의 구구한 논리가 우리의 스승이 되어버리고 사대(事大)의 더러운 정치철학이 아주 우리의 임금이 되어버렸다.현실적으로 따지고 보면 이성계의 전쟁 반대가 당시 사회 실정에 맞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성계가 내세운 이소역대(以小逆大), 즉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도 이치에 있는 말이다. 여름에 전쟁하면 백성이 더 많이 고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원정 간 사이에 왜구가 틈을 타 쳐들어올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모든 것을 다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성계의 반란으로 우리 민족의 이상이 죽고 악착같은 현실이 이긴 것이 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함석헌은 이성계의 반란이 ‘그나마 남았던 우리 혼의 날개를 자른 큰 사건’이라면서 이렇게 한탄한다. 송도 성 밖 길가에서 백발의 최 장군 머리가 떨어질 때, 그대들은 벼락소리 나며 한국 역사의 4000년 큰 탑이 와르르 하고 무너지는 소리를 못 들었는가? 죽은 것은 최영이 아니라 한얼 아닌가?함석헌은 “국민적 이상이 죽은 다음 있을 것은 내란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최영의 이상주의(북벌)가 이성계의 현실주의(사대)에 덜미를 잡혀 만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반도에 묶여 국민적 이상을 더 이상 펼 수 없기 때문에 조선시대는 서로 물고 물리는 싸움(당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쟁의 근본 원인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쪽짜리 삼국통일로 인해)원래 크던 한국 민족의 살림이 이때부터 작아지기 시작하였고, 원래 넓던 한국의 마음이 이때부터 좁아지기 시작하였으며, 원래 높던 민족의 기개가 이때부터 낮아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이로 인해 사대주의를 떨치고 북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공적을 세운 이들은 모두 정적들에 의해 ‘토벌’되는 수난을 당했다는 것이다. 주류인 사대파들에 의해 남이 장군과 임경업 장군 등이 역사에서 퇴장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사대파의 득세로 민족적으로는 ‘자기’를 잃어버리게 됐다. 외세를 끌어들인 반쪽짜리 삼국통일과 만주를 호령했던 고구려의 패망, 이성계의 사대적 현실주의의 승리로 이상을 좇는 자아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자아를 잃어버렸다는 일, 자기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는 이 일이 백 가지 병, 백 가지 폐해의 근본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나를 잊었기 때문에 이상이 없고 자유가 없다. 민족적 큰 이상이 없기 때문에 대동단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고구려 패망으로부터 우리 역사는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했고 순후하고 청명했던 민족성마저 비박해지고 혼탁해졌다면서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탄식한다. 본성이 착한 민족이 사랑의 기아를 느끼게 되었고, 의협심 많던 사람들이 질투가 그 천성을 이루게 되었다. 비열해지고, 교활해지고, 음험해지고, 나약해졌으니 하나님은 장차 이 민족을 어떻게 할 것인가?함석헌은 역사는 게으름뱅이를 위해 기다리는 법이 없고, 그보다 원수를 갚는 법이라고 역설한다.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화를 입는다는 것이다. 임진왜란을 맞았지만 이후에도 대비하지 않아 정묘호란을 맞았고 여전히 방비하지 않아 또다시 병자호란을 맞았다. 이게 ‘역사의 복수’라는 것이다. 고난은 인생을 깊게 만든다. 고난은 인생을 위대하게 만든다.이 책을 읽으면 때로 우리 역사는 구제 불능이라는 패배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함석헌은 인류 역사는 고난의 역사이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며 ‘고난에 뜻이 있다’는 말로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집안일이 잘될 때는 괜찮지만 일이 잘못돼 파산의 비운을 당하게 되면 가족 사이에도 서로 싸움이 생긴다. 그때야말로 화합해야만 할 것이건만 싸운다. 그리하여 망하게 된다.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집안일이 잘못되자 서로 네 탓만 하고 싸움만 일삼고 있지는 않은지.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이순신은 영의정인 서애 류성룡이 조정에서 탄핵을 받고 물러난 날에 전사했다. 그 역시 서애처럼 ‘공신 토벌’을 예상하지 않았을까.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