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서브프라임 시대’ 어디로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세계경제를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끔찍한 악몽으로 몰아넣던 글로벌 위기가 다소 진정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회복 조짐은 기본적으로 반사 효과성 성격이 강하다. 금융 패닉으로 마비 지경에 빠졌던 전통적인 금융 중개 기능이 일부 복원되고 적기 재고 관리 시스템의 발전에 힘입은 무차별적인 재고 조정이 이제 재고 재비축 수요를 낳고 있는 데다 그간의 억제 수요가 회복세를 보이는데 따른 것이다. 그 배후에는 그동안 세계 각국의 경기 부양 노력과 유가 하락의 시차 효과가 작동하고 있다.그러나 점차 이러한 정책 효과가 소진되고 각종 기저 효과가 약발을 잃으면 세계경제는 다시 경기 재하강의 충격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아직은 세계경제의 정상화를 운운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또 금융 패닉은 진정됐을지 모르지만 금융권의 자산 상각 및 자본 확충 향방을 둘러싸고 여전히 불확실성이 큰 데다 신용카드나 상업용 모기지 등 새로운 영역에서 금융 불안이 재현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터널의 끝이 보일지 모르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고비나 시험이 많이 대기하고 있는 셈이다.사실 이번 위기는 지난 10여 년 이상 누적돼 온 과도한 레버리지와 같은 각종 불균형에 기반하고 있다. 이제 글로벌 유동성 붐의 붕괴로 인해 이러한 불균형에 대한 대대적인 청산 압력과 디레버리징이 본격화되고 있다. 글로벌 유동성 붐은 증시 버블 붕괴 이후 초저금리 정책 대응(‘맞불 작전’)과 글로벌 차원의 경상수지 불균형 혹은 저축·투자 불균형에 따른 것이다.이러한 유동성 붐이 현대 금융 혁신과 만나 낳은 ‘괴물’이 바로 서브프라임이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천덕꾸러기는 아니다. 오히려 저소득층이나 소수 계층의 주택 보유를 촉진하는 것은 물론 과거 주택 시장의 일반적인 관행, 즉 신용 할당 대신에 리스크에 기반한 가격 결정이라는 장점을 지닌 것도 사실이다. 금융 혁신의 발전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억제하는 데도 크게 공헌했다. 원래 돈이 많으면 물가가 오르게 마련이지만 금융 부문이 성장하며 그 압력을 대신 흡수한 것이다. 따라서 자산 인플레이션이 일반화됐다.‘골디락스(Goldilocks)’는 바로 이처럼 유동성 붐이 인플레이션 없는 자산 붐으로 이어지면서 실물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과정을 압축하는 표현이다. 보다 장기적으로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뚜렷한 특징으로 평가되는 ‘대완화(Great Moderation)’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물가 안정 기조하에서 거시경제적 변동성의 완화를 지칭한다. 그만큼 세상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금융시장이나 제반 경제활동은 순풍을 탈 수 있었다.포스트 서브프라임 시대 글로벌 경제 환경 변모의 핵심은 거시경제적 변동성의 부활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금융 패닉 과정에서 자산 디플레이션과 디레버리징이 가속화되면서 대공황과 같은 부채 디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됐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기 회복 조짐과 맞물려 각국 정부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 따른 잠재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쟁점화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유가 급등으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된 바 있다.그동안 세계경제의 주된 경향이었던 물가 안정 기조가 붕괴되면서 이제 인플레이션 리스크의 부활, 혹은 인플레이션 변동성의 심화가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한편 세계경제의 전반적인 축소 균형과 거시경제적 변동성의 심화 과정에서 자국의 이해를 우선시하는 각종 보호주의 리스크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또 반세기 이상 세계경제를 진두지휘해 온 미국의 신뢰성이 실추되면서 점차 국제경제 질서 재편 노력도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그 과정에서 경제가 아니라 정치가 오버슈팅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크다.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약력: 1968년 부산 출생. 91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94년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98년 와이즈인포넷 국제금융경제팀 팀장. 2007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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